아빠란?
비유컨대 부(父)는 자(慈)인 고로 자식에게 병이 있음을 보고 당시의 고(苦)를 돌보지 않고 후를 생각하는 고로 뜸을 뜨는 것과 같다.
어서 15쪽
이 글에서 아버지는 자식에게 병이 있음을 보고 그 고통을 돌보지 않고 나중을 생각해서 치료를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자녀가 아플 때 어머니는 자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동일시 현상이 일어나지만, 아버지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동양 문화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서 더 깊이 일어난다.
그래서 아버지는 정서적으로 타인이다.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타인. 그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사회성을 아버지와의 관계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이가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 혹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남학생이 여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여학생이 남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겹칠 때가 많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는 아이가 겪지 못하는 가정 외의 세계에 주로 머무는 대상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세상보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편하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감각이 예민하고 이성보다 직관이 더 발달해 있다. 아버지의 표정, 말투, 자세, 목소리와 같은 모습을 통해 세상이 흘러가는 흐름을 느끼고, 이를 통해 사회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문득문득 부모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가게에 가서 한 번도 사는 걸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아빠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고를 때, 혹은 아이의 입을 통해 부모가 하는 말을 듣게 될 때의 그 당황스러움과 놀라움. 뿐만 아니라 아이를 통해 부모인 나의 단점을 발견할 때의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은 때론 견디기 힘들어 아이에게 화를 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이는 그렇게 부모로부터 삶을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로서 자기 삶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빠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에 가족 안의 타인인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초기 경험이 중요하다. 아버지는 아이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안전한 신체놀이가 가능하다. 또한 아버지와의 놀이는 어머니와의 놀이에 비해 매우 불규칙해서 아이를 놀라게 하거나 갑자기 흥분하는 등의 정서의 진폭이 커서 자기감정과 생각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또한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엄마보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놀이가 이뤄지기 때문에 리더십을 크게 키워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저 멀리서 ‘놀기만 하면 공부는 언제 하느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 때가 되었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된다.
놀이는 타인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 상황과 타인을 이해해야만 즐겁게 놀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므로 추상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이 길러진다. 또한 장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른 인지의 동화, 조절, 평형이 놀이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놀이는 가장 안전하게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것은 최소화하고, 오히려 이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게 되므로 자존감 형성에도 도움이 되며 다양한 놀이의 변형을 시도하므로 창의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놀이의 장점은 로버트 루트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과 EBS ‘놀이의 반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아빠가 놀아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놀이가 좋은 까닭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까?
‘놀이의 반란’에서 두뇌 발달에 따른 놀이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0~24개월의 감각 운동기에는 탐색/반복 놀이를 추천하고 있다. 까꿍 놀이나 동물 흉내, 밀가루 반죽 놀이 등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때 손으로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두드려 보는 등의 오감을 충분히 활용하여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25~48개월 전조작기는 상상/체험놀이를 추천하고 있다. 자연을 직접 보여주는 체험활동이 중요하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야외 캠핑이 크게 확산되었다. 또 이불속을 동굴이라고 가정하고, 동굴 속에 사는 동물을 상상하여 놀이를 하는 등의 상상놀이, 아이가 스스로 조작이 가능한 퍼즐이나, 블록놀이, 신문지나 페트병 같은 폐품으로 장난감 만들기 놀이 등이 좋다고 한다.
48개월 이상 전조작기에서는 역할/협동놀이가 좋은데, 아이들 스스로 역할놀이를 통해 사회성, 상상력, 창의력, 판단력, 문제해결력을 자연스럽게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역할놀이에 직접 개입하거나 의도를 갖고 다가가면 아이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학습으로 다가가려는 부모의 의도를 파악하여 도파민 수치가 떨어지고,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높여서 동기와 관련된 부위인 해마를 위축시키고, 편도체를 자극하여 문제해결력과 관련이 있는 전두엽의 발달 기회를 빼앗게 된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아버지를 경멸(輕蔑)하고 어머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지옥(地獄)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나이다.
어서 1491쪽
놀이에 이어서 아버지를 통한 사회적 관계 학습에 대해서 살펴보자.
앞서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가사분담비율을 살펴보면 1999년 기준 아내는 하루 약 225분이고 남편은 11.2분으로 아내가 남편의 약 20배에 달한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14년에는 아내가 192분, 남편은 17분으로 여전히 아내가 남편의 약 11배 더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이를 아이들 시선에서 바라보자. 맞벌이하는 부모 중 어머니만 집안일을 주로 하는 모습을 보는 딸은 엄마가 안쓰러운 한편으로 아빠가 원망스럽다. 또 아들의 입장에서는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관습을 학습함으로써 어머니를 소홀히 여기게 된다. 따라서 남편들의 적극적인 가사노동은 아이들의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것 뿐 일까? 한 가지 더 있다. 아버지의 부모님, 어머니의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부모가 조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아이들은 자기 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학습하기 때문이다.
Ann S. Masten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의 Resilience(탄력성)을 키우는 데 있어서 3가지 요인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간단히 소개해보면 아동의 개인 내적인 요인, 가족 요인, 사회적 요인이 있다. 이 중에서 아빠의 역할은 바로 가족 요인을 탄탄하게 만드는 데 있다. 아버지가 바로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 그래서 이 글이 아빠의 역할을 통해 아이들의 Resilience(탄력성)를 높이는 가족 요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