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자기조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자기 가치 확인 이론의 관계
“젊은이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쾌락에 쉽게 빠져든다. 그들은 버릇없이 굴고 종종 기득권의 권위에 도전한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모에게 대들고 선생님을 괴롭힌다. 엄숙한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수다를 떨거나 킥킥거리며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 말은 누가 언제 했을까?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빌려 추정해 보건대 그 오래 전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도 사춘기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도 꼰대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꼰대가 아니었다. 아테네의 수많은 청년들이 그를 따랐고, 이에 위협을 느낀 권력에 의해 그는 죽음을 맞게 된다.
‘사춘기’하면 떠오르는 몇 몇 단어들이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 자아 정체성의 확립, 반항, 일탈...
그런데 이러한 낱말을 잘 들여다보면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먼저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변화와 관련된 이론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학 이론에 수도 없이 언급되는 장 피아제Jean Piaget. 그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만 11~12세 이후에는 형식적 조작기에 접어든다고 한다. 그럼 형식적 조작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새로운 상황에서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측을 바탕으로 상황 속에서 주어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이 이상적인 기준에 따라 자신과 타인의 주장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생기는 시기를 형식적 조작기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쉽게 말해서 타인의 삶을 자신이 사춘기 이전까지 배워온 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교육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c Erikson. 그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12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기를 자아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시기라고 한다. 이 때 자아 정체성은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다양한 맥락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하였다.
신경생리학자인 제이 지이드 Jay Giedd에 따르면 뇌의 발전과 전지가 2세 정도의 유아기에 서서히 끝났다가 11~12세에 다시 시작한다고 하였다. 사춘기에 돌입하는 이때 뇌세포 수상돌기가 과잉 생산되는 ‘발전’이 전전두엽 피질에서 절정에 도달하며 청소년기 내내 사용하지 않는 뉴런이 시들고 죽는 ‘전지(예:식물의 가지치기)’과정이 계속 일어나 변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 전전두엽 피질이 급격한 발전과 전지의 과정을 거치므로 그 본래의 충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청소년기 동안 정서조절관련 회로 중 하나가 미엘린화(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신경세포화) 과정이 진행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사춘기 아이들은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라서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자신과 타인의 주장을 비교 분석하는 평가를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대한 타인의 부적절한 반응을 일시적으로 기능이 멈춘 대뇌피질 대신에 편도체가 스트레스로 인식하고 이에 투쟁 혹은 회피(Fight or Flight)반응, 즉 대들거나(투쟁)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반응(회피)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짓는다면 먼저 무엇을 어떻게 할까? 먼저 잘 지은 집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집짓기와 관련된 책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 물어볼 것이다.
하물며 아이들 인생의 바탕이 되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자기 삶을 준비하기 위한 본능적 행위이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두 팔을 벌려 뛰어오던 아이가 어느새 팔짱을 끼고 엄마 아빠와 언쟁을 벌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 날이 있었다. 아이의 동작 하나 하나에 부모의 불안한 눈길과 무거운 한숨이 얹혀지고, 이를 지각한 아이는 그 간단한 계란말이를 포기하고 말았다.
사춘기 아이들이 어른들과 나누는 말과 행동은 자신의 자아정체성이 옳은지 그른지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행위다.
자신이 생각하고 취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판단은 이에 대응하는 부모나 교사의 삶을 통해 버려지거나 얻게 된다. 그래서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얼마나 믿고 지지해주는가. 그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통해 올바른 자아정체성의 형성은 출발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탄탄하게 구축하기 위해 자기 주변 사람들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끊임없이 평가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모르게...삶 속에서 항상...
엄마를 사랑하는 아빠의 집안일과 그런 아빠를 사랑하는 엄마의 따듯한 배려. 이웃을 배려하고, 자신의 직장을 최고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고하며 배움에는 나이 따위 상관없다고 말하며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청춘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계속 찾고 있다. 하잘 것 없는 사춘기 아이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 작은 아이들의 삶에 자기 인생을 거는 교사들을 보고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래서 공자가 15세에 지학(志學-배움에 뜻을 둔다.)는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바로 삶의 가치를 배우는데 뜻을 둔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따른 수많은 젊은 사춘기 아이들처럼 말이다.
‘사춘기’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질풍노도의 시기, 자아 정체성의 확립, 반항, 좌절, 일탈...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부딪치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각양각색의 삶에 어떻게 다가갈까?
이제 이들을 어떻게 도와갈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심리학에서는 역경이나 시련을 자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을 PTG(Post traumatic Growth)라고 부른다.이렇게 역경이나 시련을 자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 필요한 개인 내적인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인지적 자기조절과 정서적 자기조절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전전두엽 피질이 급격히 발전과 전지의 과정을 거치면서 충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약해진다. 편도체가 전면에 나서는 시기인 것이다. 따라서 기억, 학습, 동기에 영향을 주는 해마는 전전두엽 피질보다 편도체의 영향을 더 받게 되는데 이때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약물(술, 담배, 폭력적 성향의 게임 등)에 노출되면 정서조절 관련 회로가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에 충격을 받게 된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타인의 비언어적 신호를 왜곡(자신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경향)하여 투쟁 혹은 도피(Fight or Flight) 반응을 보이게 된다.
문제는 부적절한 반응 이후 아이들이 스스로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후회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마치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드니 디드로가 “자신을 공박하는 말에 압도되어버린 나처럼 예민한 사람은 일순간에 혼란에 빠지며 계단 아래까지 내려간 뒤에야 비로소 다시 선명한 생각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아이들은 바로 이 순간을 계속 떠올리며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의 반복은 아이들의 자아상을 왜곡시키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자아상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어 있다. 과연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자아상을 왜곡시키는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인 클로드 스틸 Claude Steele은 사람은 위협적일 수도 있는 상황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가장 깊이 간직하고 있는 가치관, 즉 자아의 최고 부분을 재확인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자기 가치 확인 이론 self-affirmation theory’이라고 불렀다. 이후에 데이비드 크레스웰 David Creswell과 데이비드 셔먼 David Sherman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상기한 사람이 TSST(Trier Social Stress Test)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와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에피네프린 수치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 정서를 조절하는 기능을 맡고 있는 전전두엽 피질은 급격한 '발전'과 '전지'의 과정을 겪느라 투쟁 또는 회피 반응(Fight ot Flight Response)와 관련이 깊은 편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타인의 신체적 혹은 언어적 반응을 왜곡하여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스트레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가치를 분명하게 세우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기가치는 자아정체성의 바탕이 되고, 결국 무엇을 위해 사는가와 같은 삶의 의미와도 통한다. 이를 조금더 확장시켜보면 Martine Seligman이 말한 행복의 3번째 요인인 meaningful life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자기 가치 확인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1) 성적을 높이고, 2) 따돌림당하는 비율을 줄이며, 3) 금연에 성공하고, 4) 건강식 섭취 비율을 높이며, 5) 스트레스를 줄이고, 7) 협상 기술을 예리하게 다듬고 성과를 높이는데 자기 가치 확인이 효과적임이 입증되었다. 즉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meaningful life가 중요한 데 이는 아이들이 어떤 삶의 가치를 갖고 있느냐, 더불어 어떻게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느냐가 이후의 행복과 관련된 학업성취도, 사회성, 건강, 스트레스 조절 등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면 이 문장을 읽게 한다.
나는 모든 친구를 사랑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소리 내 웃겠습니다. 하하하
매월 급훈(지은을 최고로, 보은을 제일로, 모든 일에 함께 노력하자)을 되새기고,
도덕(지금 내 옆에 있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다)의 의미를 물어보며,
매월 시(9편의 시)를 외우고 그 의미를 물으며,
매일 위인들의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써 본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들에게 자기 가치를 찾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각자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도와주며, 이러한 가치를 더욱 자기 삶으로 연결 지어 가도록 함께 생각을 나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떠한 역경이나 시련이 와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Resilience를 키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