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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a Nov 28. 2023

'바다멍'이 준 선물

윤슬, 리듬, 그리고 해방감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스물한 살 어느 여름날, 나는 커다란 검정 고무튜브에 의지해 바다의 물살을 타고 있었다. 바닷물이 생각보다 따듯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와 둘이 튜브 하나에 매달려 30분도 넘게 둥둥 떠 있었다. 말 그대로 몸으로 바다를 즐긴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한동안 바다에 가는 날은 모래놀이 장난감이 출동하는 날이었다. 집에서도 종종 가지고 놀던 그 장난감은 바다에 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제 몫의 멋짐을 뽐낼 수 있었다. 넓은 모래사장에 터를 잡은 뒤, 플라스틱 프레임에 젖은 모래를 담고 꾹꾹 눌러 빼내어 모래성을 만든다. 장난감 삽으로 열심히 퍼내어 만든 모래 구덩이 속에 아이들의 작은 몸을 살짝 숨기기도 하면서 놀다보면, 바다에서 한나절이 훌쩍 가곤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바다와 함께 한 최고의 시간은 바로 ‘바다멍’의 시간이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편안한 자세로 멍때리기.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바닷물에 떠있기나 초대형 모래놀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온전히 그곳, 바다에 깊숙이 존재하는 일이었다.


바다멍, 반짝이는 리듬


지난 6월 강원도 경포대에 갔을 때, 나는 잠이 많이 부족했고 몸이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선지 꼼짝 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멍때리기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자 한낮의 햇빛을 받아,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반짝이는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우리가 ‘윤슬’이라 부르는 움직임이었다. 4,5분쯤 지났나. 가만 보고 있자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메모장을 꺼내고 적어 내려갔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나의 바깥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다.
바람, 바람이 만든 바다의 일렁임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도, 정지(停止)는 아니라서, 
한참을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있다. 
-2023년 6월 경포대에서


바다의 반짝임과 리듬감 /이미지 출처_pixabay


윤슬은 반짝거림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물결이 만든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해수면을 수놓은 물결은 하나의 파동이라서 반복적인 움직임을 갖는다. 박자와 리듬이 있는. 마치 눈으로 듣는 음악 같다. 바다가 만들어주는 윤슬로부터 누군가는 왈츠를 듣고, 또 누군가는 구성진 트롯을 들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단순히 눈의 즐거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심리적인 해방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신경학자 스트라우스(Erwin Straus 1891-1975)는 춤을 출 때 체험하는 공간 구조를 ‘공간, 움직임, 그리고 우리의 지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 있을 때, 이미 우리는 습관적으로 특정한 방향성을 갖는다. 보통 우리 몸은 앞으로 걸어갈 때 제일 편하다. 몸이 앞을 향한 상태에서 뒤로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된다. 나의 몸을 기준으로 이미 앞과 뒤라는 방향이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니는 공간의 방향성이다. 그런데 춤을 출 때는 잠시 이 앞과 뒤의 감각이 무디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앞과 좌우, 그리고 심지어 뒤로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모습을 어떤 목표로 향하는 움직임에 대한 감각이 없어진 상태로 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리드미컬한 음악을 만날 때, 잠시나마 ‘목표 지향적' 삶의 욕구로부터 해방되어 방향성 없는 공간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긴장을 풀고 몸에 힘을 뺀 채, 리듬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사람은 마치 모든 것을 잊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온전한 이완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광장에서 춤추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_pixabay 



공간 속 존재의 어떤 쉼


그날의 바다가 주었던 진한 감동이 다시 생각났다. 바다멍의 효용이었을까. 아마도 나는 그 멍때림의 순간 윤슬을 바라보며, 바다와 빛과 대기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몸을 맡겼던 것 같다. 습관적인 방향성, 움직임의 의식이 잠시 해체되면서, 당장 해야 할 일과 가야할 곳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떠난 상태였던 듯하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잠시 동안의 완전한 해방 말이다. 그래서 익숙치 않았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더욱 강렬하게 좋았었나 보다. 그것은 기쁜 상실이었다. 방향성을 잃었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까지 갔는데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니.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앉아만 있다니. 하지만 지루하기는커녕, 무언가 마음을 꽉 채워주는, 그러나 결코 요란하지 않고 시원한 해소가 일어났다. 그날의 바다멍은 최고의 휴식 시간이었고, 그날의 바다는 완벽한 휴가지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서 특별한 공간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훌륭한 여행지,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아주 많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했다면 파도가 만들어주는 짜릿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모래투성이가 되어 마음껏 웃고 뒹굴며 뛰놀고 싶었던 아이들은 모래 위에 그들만의 세계를 짓고 허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지난 6월 바다를 찾았던 나처럼 언제나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어제 다 못 끝낸 일을 처리할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잠시 온전한 해방감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그 날의 바다와 그 바다의 물결과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의 공명이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바다 여행이 되기 위한 비결이 있다면, 아마도 자연이 만들어주는 그 선물같은 순간에 그곳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때리고 있는 나를 질책하지 않고, 무언지 모르게 찾아온 묘한 감동을 규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일이었다. 그것은 바다와 나의 성공적인 소통이었고, 아주 멋진 바다 여행이었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인용시 출처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



글쓴이  김근영


공간을 느끼고 사유합니다. 

대학원에서 문화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30대와 40대 초 타국과 타지역에서 거주하며,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가족의 주부로 살았습니다.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지금, 다양한 공간을 넘어 다니며 의문을 품었던 것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kunyoungk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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