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먼저? 자료 수집 먼저? 기획의 갈림길

답을 정해놓고 근거 보강하기 vs. 수많은 자료로부터 정답 찾기

by 궁금소년

기획을 할 때, 우리는 종종 ‘처음부터 답(좋게 말하면 가설)을 정해놓고, 근거와 논리를 점점 쌓아가는 사람’과 ‘일단 확보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결론을 도출하는 사람’—이렇게 두 부류를 만나볼 수 있다.


전자를 선호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방향성과 결론이 가지고 움직여야 효율적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른 이슈는 그때 그때 반영하면 된다'고 한다. 내 경험에 이런 기획법을 택하는 경우의 결과물은 High risk, high return인 경우가 많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먼저 디자인을 구상하고, 개발자들을 쥐어짜 결국 그것을 구현해내는 업무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우리 중에 잡스만한 통찰을 가지고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설 설정과 인사이트에 항상 자신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TSzy39DHY5kDPurp7Sw9JGJ5JN4.jpg 잡스의 직관도 실패할 때가 있었다. 디자인 상을 휩쓸었지만 판매는 부진했던 Cube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은 '다양한 자료를 충분히 모아서 분석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결론을 찾는다'고 말한다. 이 경우는 Low risk, low return의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의 근거가 확실하고 착실하여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게 반박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아주 새롭거나, 시장을 뒤바꿀만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하기보다는, 과거 데이터 속에 갇혀 '이미 일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일도 잦다. (물론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의미있는 패턴과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고수들도 존재한다. 무서운 실력자들이지만 이들도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정말 ‘답을 정해놓고 하는 기획’(연역적 접근)과 ‘모든 자료를 끌어모아 파헤치기’(귀납적 접근) 중 어느 쪽이 옳은 기획일까?


내 생각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두 방식 모두 유용하고 장단점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은 이 두 가지 기획 방식의 주요 특징과 활용 팁을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1. ‘연역법적 기획(Top-down)’: 미리 결론을 세우고 검증하기


1) 어떻게 하는 걸까?

연역법적 기획은 말 그대로 “이게 정답일 거야!” 하는 가설(결론)을 먼저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논리나 데이터를 찾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 타깃은 2030 여성이고, 신제품 A를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방향을 미리 잡아놓고, 그 주장을 강화할 수 있는 자료(시장 통계, 설문 결과, 유사 성공 사례 등)를 모아오는 거죠.


2) 장점은?

신속한 의사결정: ‘정답’을 먼저 정해놓으니 방향성이 명확해, 빠르게 기획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

명쾌한 커뮤니케이션: 팀원들에게 “우리는 이 결론을 달성해야 해”라고 초장에 못 박으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쉽다.


3) 단점은?

뻔하거나 틀린 결론에 갇힐 위험: 혹시 애초의 가설이 틀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정너로 결론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편향: 결론에 맞는 자료만 찾게 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발생하기 쉬워, 놓치는 사실이 생길 수도 있다.



2. ‘귀납법적 기획(Bottom-up)’: 자료부터 모으고 결론을 찾아나가기


1) 어떻게 하는 걸까?

귀납법적 기획은 “정해진 결론 없이, 일단 관련된 모든 자료나 데이터를 모은 뒤 패턴과 통찰을 끌어낸다”는 접근이다.
“이 시장에서는 어떤 흐름이 있는가?”, “2030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은 어떤 특징을 보이나?” 같은 질문에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을 통해 하나의 결론을 찾아간다.


2) 장점은?

폭넓은 시야: 특정 가설에 갇히지 않고, 데이터를 통해 예기치 못한 기회나 위험을 포착할 수 있어요.

새로운 발견 가능성: “이런 결론이 나올 줄 몰랐는데?” 같은 획기적인 인사이트가 튀어나오기 쉽습니다.


3) 단점은?

시간과 자원이 많이 든다: ‘일단 다 모으자’ 정신으로 달리다 보면, 방대한 자료를 다루느라 시간이 늘어나고 팀원 피로도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결론이 흐릿해질 위험: 자료만 잔뜩 모았는데 끝내 스토리가 완성되지 못하거나, “그래서 뭐?”라고 묻는 순간 길을 잃어버리기도 해요.



3. 상황에 따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라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옳은, 좋은 기획을 하는 방법인 걸까요?
제가 찾은 저만의 답은, '상황과 목표에 따라 다르다' 입니다.


빡빡한 일정과 분명한 과제가 있을 땐? 연역법적으로 접근해 빠르게 결론을 세운 뒤, 결정된 목적에 필요한 자료만 골라 쓰는 전략이 유용합니다.
적용 예시: 경영진이 '다음 달까지 이 제품을 어떤 식으로 프로모션할지 정해야 한다'라고 닦달하는 상황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려고 할 땐? 귀납법적으로 자료를 폭넓게 모아 “우리가 몰랐던 니즈가 뭘까?”를 탐색하는 편이 낫습니다.
적용 예시: 신규 타깃을 발굴하거나,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고 할 때


잘못된 가설을 세워서 나중에 일을 그르치거나, 너무 많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이 두렵다면? 두 방식을 적절히 섞는 하이브리드 접근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먼저 가설을 세우되(연역), 중간중간 폭넓게 자료를 점검(귀납)해 가설을 수정해 나가는 식이다. 실제 많은 경우 기획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9ec7cdd4b96402a55c077791662ede97.png '둘 다 맞다' 같은 뻔한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게 사실이자 현실인걸ㅠ



4. 실무에 적용 가능한 방법론: '가설은 세우되, 늘 열려 있어라'


필자도 과거 마케팅 전략을 짜다가 늘 겪어왔던 사례들이 많다.

처음부터 '분명 이런 인사이트를 활용하면 될 거야!'라고 결론짓고 뛰어들었다가 확증편향에 빠져 나중에 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데이터가 발견되었을 때 (너무 괴롭다.. 몇 날 몇일을 품고 키워온 내 자식같은 기획방향을 한 순간에 버린다는 건)

'일단 시장조사부터 빡세게 해 보자!' 했다가 시간만 잔뜩 쓰고 뾰족한 기획 방향이나 아이디어가 안 나온채 기획서 제출일이 다가왔을 때 (너무 숨막힌다.. 내일 나는 결국 어떤 뾰족한 결론도 없다고 하면 내 앞으로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서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설을 짧게나마 세운다: '우리 타깃은 2030 여성, 그들은 우리 서비스의 이 포인트에 열광할 것 같다'
2) 데이터나 현장을 통해 가설을 빠르게 검증해본다: '실제로 보니 40대 남성한테도 반응이 나쁘지 않네?'
3) 가설이 틀렸다면 빠르게 수정한다: '아하, 애초에 2030 여성만 노린 전략은 좁았군! 타겟을 데모가 아닌 특정 생활 습관을 가진 타겟으로 규정해보자'


이렇게 연역과 귀납의 장점을 적절히 섞어 쓰는 거죠.
특히 “결론을 바꿔야 한다면, 그걸 기회로 삼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예상치 못한 데이터에서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어요.



5.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 이다


오늘의 요점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역법적 기획은 속도전이 필요한 시장 상황, 혹은 이미 오랜 경험과 분석 끝에 가지고 있는 ‘유력한 가설’을 효과적으로 실행해야 할 때 빛을 발한다.

귀납법적 기획은 새로운 시장, 혹은 아직 미지의 소비자 심리를 파헤쳐야 할 때 그 장점을 100% 살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위의 방법을 적절하게 혼용해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지금까지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해오며, 우리의 목표를 잊고 있진 않았는지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앞에서 말한 어떤 방식을 택하든, 우리가 고민하는 마케팅/기획의 최종 목표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로 귀결되어야 하니까요.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더 우월하다거나, 더 ‘과학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속 마음이 무엇인지', '우리의 마케팅 활동을 통해 실제로 그들의 과거 인식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고, 행동까지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가장 중심에 놓고 앞서의 방법론 적용을 고민한다면 훨씬 합리적인 결론과 실행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6. 더 실전적인 이야기와 예시들


결국, 기획이라는 건 ‘어떤 원리와 방식을 택하면 무조건 성공한다’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상황과 목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연역적 기획과 귀납적 기획의 특징과 장단점을 간단히 살펴봤지만, 실무 현장에서 부딪히다 보면 훨씬 더 복잡한 변수가 생기곤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실제로 어느 상황에서 어떤 방식이 더 도움이 됐는지

두 기획 방식을 적절히 섞을 때 달라지는 현장의 반응

마케터·기획자들이 흔히 겪는 시행착오와 해결책

같은 이야기들을 좀 더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풀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나는 일단 답부터 정해놓고 움직이는 편인데, 왜냐하면…'

'자료를 잔뜩 모아서 기획해봤는데, 이런 문제가 있더라'

'연역과 귀납을 섞어 쓰다가 새로운 노하우나 인사이트를 발견한 경험'


이런 에피소드나 궁금증을 나눠주시면, 저도 함께 더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각을 공유할수록, 더 풍부하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결국 이 글의 여기까지 열심히 읽어주신 당신과 저의 목표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더 좋은 마케팅/기획을 하고 싶다는 거니까요.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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