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료를 끝낸 의사가 감정 없이 뱉은 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결과를 들었을 때는 의외로 덤덤했다.
"네 선생님! 수술은 언제 하면 될까요? 방법은 복강경으로 하나요?"
나 또한 의사처럼 아무 표정 없이 기계적으로 물었다.
"근종의 크기가 크고 개수가 많아서 복강경은 힘들 것 같습니다. 개복을 하시죠!"
애써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당황스럽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떠나보내야 할 자궁에 딱히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해 두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날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조금 죄송했다.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 열 달 동안 머물렀던 곳을 상실하게 된 내 아이들에게 아주 조금 미안했고, 남은 생을 자궁 없는 마누라와 살게 될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다.
서러움이 눈에서 코에서 그리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한꺼번에 얼굴로 모여들고 있었다.
늘 눈치 없지만 그날따라 더 눈치 없던 남편이 눈치 없는 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얼굴로 모여들던 서러움이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폭발했다.
급기야 대로변에 서서 꺼이꺼이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 뭐래? 수술하래?"
"꺼이꺼이 응, 흑흑."
"울지 말고 제대로 말해봐!"
"꺼이꺼이 적출, 꺼이꺼이 개복 흐어엉"
"진정하고 일단 큰 병원에서 다시 진료받자."
자궁에 있어서는 명의로서 TV 출연도 여러 번 하셨다는 선생님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예약하고 한 달을 기다린 후 의사와 마주 앉았다.
"환자분은 근종이 너무 크고 개수도 여러 개라 복강경은 힘들 수 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절망하는 내 얼굴을 보며 갑자기 의사는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동안 제 환자의 97%를 다 복강경으로 했습니다."
"정말이요?"
"네!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훌륭하시네요."
"하지만 환자분은 그 97%의 경계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네?"
"복강경 수술 중에 위험하면 개복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
"너무 큰 걱정은 마시고 수술 날 봅시다."
의사는 시시하던 일상에 도전할 만한 흥미로운 과제라도 만난 듯 상기돼서 설명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따라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니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덜컥 밀려와서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내가 우는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가 버리면 남편도 몇 시간을 울면서 기다리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목구멍 안쪽에서 밀고 나오려는 덩어리 큰 울음을 꾹 꾹 삼키고 난 수술실로 사라졌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수술 끝났어요."
너무 추워서 치아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떨었지만 , 무사히 깨어났음에 감사했다. 밖에서 불안 속에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니 모든 것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잘 데리고 있지 못하고 떠나보낸 자궁에게 많이 미안했다. 다음엔 더 좋은 주인 만나서 오래 살기를.
그 후 6개월.
단지 체력이 좀 떨어진 것을 빼고는 난 예전과 거의 비슷하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내가 자궁이 없는 걸 위로해 준다며 자신의 장기 없음을 커밍아웃한 친구.
"다들 장기 하나씩은 없고 그러잖아. 난 맹장도 없고, 쓸개도 없어. 들어봤지? 쓸개 빠진...... 그게 나야."
이런 맑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쓸개 빠진 친구도 있고, 난 꽤나 잘살았나 보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하던 숙제가 없어진 것에 대한 약간의 허전함, 그리고 자궁이 없어진 자리에 이유 모를 지방으로 묵직하게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의 당황함이 남아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