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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나 노안이에요!

늙어 보인다는 것

by 은둘

평생을 노안으로 살았다.

나도 잘 안다. 내가 늙어 보인다는 거!

뭐 많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사람들에게 언니라고 불렀을 때 그들이 좀 당황한다는 정도.


언젠가 미용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TV에 어느 여자 연예인이 나왔고 그 여자 연예인이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 저 여자 정말 동안이네요."

내가 말하자 미용사가 내게 말했다.

"언니도 동안인데요 뭘."

"아니에요, 내가 무슨......"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동안이라는 말에 내심 기분이 좋아져 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몇 살로 보여요?"

내 머리를 만지던 미용사는 손을 놓고 내 앞으로 와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난 최대한 어려 보이는 표정을 짓고 미용사를 마주 보았다.


"음..... 한 서른다섯?"

아마 미용사도 나름 고민하다가 내 기분을 고려해 서너 살쯤 줄여서 말했을 것이다.

난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나름 긴장하며 내 대답을 기다리던 미용사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것 봐요, 언니 동안이라니까! 사실 언니 그 나이로 안 보여요."

"고마워요."

입안이 썼다. 내 나이 스물아홉 때의 일이다.


남편은 가끔 내 얼굴이 크다고 놀린다.

맞다. 난 사실 키도 크고 얼굴도 친구들보다는 큰 편이다.

뭐 그렇다고 놀랄 정도로 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아마 아닐 거다.

어느 휴일에 시댁에 있을 때 남편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쟤 얼굴 크지?"

난 남편을 한 번 흘겨본 뒤 어머니의 대답을 잔뜩 기대하며 어머니를 빤히 보았다.

내가 기대한 대답은 최소한

"쟤가 무슨 얼굴이 크다고 그러니?"

였다. 하지만 어머님이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대답은

"저 키에 얼굴이 저 정도도 안 크면 그게 사람이니?"

였다.

대체 우리 친정엄마는 나한테 무슨 일을 벌이신 건지, 갑자기 얼굴 큰 딸 낳느라 고생하셨을 엄마가 그립다.


사십 대 중반을 훌쩍 넘긴 이제야 남편은 위로랍시고 말한다.

"이제 네 나이로 보여. 정말이야!"

남편 얼굴을 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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