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염이 내게 말했다.

까불면 또 찾아온다고.

by 은둘

커피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집에서 먹는 캡슐커피를 비롯해서 하루 보통 서너 잔은 거뜬히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커피부터 마시는 일이 습관처럼 돼버렸다.

가끔 속이 쓰린 날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내 위장의 사정은 들어줄 생각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그냥 그렇게 마시고 먹었다.


결국 버티고 버티던 내 위가 탈이 나버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배가 꼬이듯 아프더니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배를 움켜쥐고 응급실을 가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응급실 출입마저 자유롭지 않으니 급한 대로 남편을 시켜 약을 사 오게 했다. 약을 먹고 배에 따뜻한 찜질을 하고서야 한숨 돌릴 수가 있었다.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위염약 일주일분을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난 가만히 지난날 나의 습관들을 돌아보았다. 공복에 마시는 커피를 좋아했고 극도의 매운 음식을 즐겼다. 거의 매일 남편과 맥주 한 캔씩을 먹었고, 험한 세상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뱉어내지를 못했다.


위장은 꾸준히 내게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매운 것좀 그만 먹으라고, 커피 좀 줄이라고! 가끔씩 싸르르하게 아픈 위통을 가볍게 생각했었다. 늘 그렇듯 내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거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주일을 기분 나쁜 복통과 함께 죽만 먹으며 보냈다. 한번 화가 난 위를 달래는 일이 쉬운 건 아닌듯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조금만 입에 대도 싸르르 심술을 부렸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위가 편안해지고 나니 그야말로 세상이 아름다울 지경이다. 건강할 때는 모두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아프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라고 했다.


지난 일주일간 폭풍 검색과 쇼핑으로 양배추즙, 생강차, 위에 좋다는 매스틱 검을 사들였다. 한번 아프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택배를 받고 나서 보니 참 많이도 샀다.


위염이 내게 말했다. '까불면 또 찾아온다고.'

내가 위염에게 말했다. '까불지 않을 테니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래요, 나 노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