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난 허약체질이었다. 키가 삐죽이 큰데 반해 몸은 볼품없이 말랐었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이던 그 시절엔 월요일이면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두고 긴 시간 전체 조회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해야 했던 조회를 난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그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지루할 뿐만 아니라 그 긴 시간을 이기지 못한 내가 일사병으로 자주 쓰러졌기 때문이다.
길고 긴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고 있자면 어느 순간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울리며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눈앞의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변하며 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당시 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조회시간에 어디서 픽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있으면 생각했단다. 우리 언니 또 쓰러졌다고. 그 정도로 난 자주 쓰러졌는데 그 당시 내 기억에는 조회시간에 나처럼 쓰러지는 아이들이 두어 명은 더 있었던 것 같다.
쓰러지면 주변 아이들이 술렁대고 놀란 선생님이 달려와 날 업고 그늘에 데려다 눕힌다. 물수건으로 내 몸을 식히면 난 오래지 않아 의식을 찾곤 했다.
놀란 부모님은 그런 딸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내 살을 찌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셨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내놓은 두 분의 방법은 내게 곰국을 주야장천 먹이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곰국을 만병통치약쯤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늘 곰국이 끓고 있었는데 난 그 냄새가 너무 싫었다.
하루 종일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곰국 냄새를 맡으면 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냄새가 기분 나빴고 비위가 상했다. 그래서 정작 날 먹이려고 끓였던 곰국을 난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난 곰국을 못 먹는다. 부모님께 걱정만 끼치던 아픈 기억이 곰국 냄새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못 먹을 것이다.
이렇게 의식을 잃어본 경험은 후에 나의 공황장애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불안하거나 답답한 상황이 왔을 때 내 몸은 기절을 하던 그 순간을 떠올려 그 단계를 그대로 재현한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울리고 눈앞의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 곧 쓰러질 듯 호흡이 답답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저질 몸이다. 사는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디가 아파도 MRI는 찍어볼 엄두도 못 내고 긴 비행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리를 여행하는 건 꿈도 못 꾼다.
하나뿐인 동생이 네덜란드로 이민 간 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뮤지컬이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일도 내게는 적지 않은 긴장을 필요로 한다. 공연장 안의 불이 꺼지고 깜깜 해지는 순간 답답함에 내 심장은 심하게 벌렁대다가 곧 잠잠해지곤 한다. 자리는 늘 통로 쪽으로 잡아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내 모습은 좋든 싫든 과거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 지난날 내가 했던 생각이, 선택이, 그리고 먹었던 음식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고 있다. 지난날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금의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그런 내가 모여 또 나의 미래의 모습이 될 테니 말이다. 지난날 조회시간에 쓰러지던 일이 내 잘못이 아니듯 지금의 저질 몸도 내 잘못이 아니다. 자책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