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처음으로 아저씨! 또는 아줌마!라고 불렸을 때의 당황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내 나이 서른 언저리 어디쯤일 때 난 '아줌마'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어쩌면 서른이 되기 한참 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그 당시 내가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가씨'라는 호칭에 훨씬 익숙했던 그때 '아줌마'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나를 향한 것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당시 결혼은 했었지만 절대 아줌마는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개똥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아줌마! 아줌마!"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이어지자 난 내적 갈등에 빠졌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절대 돌아보면 안 돼! 그런데 왜 자꾸 날 부르는 것 같지?'
"아줌마!"
이번엔 부르는 목소리에 짜증이 조금 섞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야말로 아줌마로 보이는 어떤 아주머니께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저요?"
난 잔뜩 억울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요, 아줌마! 왜 부르는데 안돌아봐?"
짜증이 난 아주머니는 내가 뭘 떨어뜨리고 갔다며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게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난 얼굴이 화끈거려 서둘러 물건을 들고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내가 찐 아줌마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서 유치원을 다닐 즈음, 아이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데 말끔히 잘생긴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솔직히 말해 약간은 두근거렸다) 남자를 보자 남자는 불쑥 손에 든 학습지를 내밀며 말했다.
"어머니! 저희 학습지 한 번 보고 가세요."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보이는데 어머니? 난 너같이 큰 아들 둔 적 없는데요.'
물론 학부모를 향한 일상적인 호칭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섭섭했다.
시어머니가 60대 중반 언저리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외출에서 다녀와서 자랑하듯 내게 말씀하셨다.
"애미야! 오늘 내가 마트를 갔는데 누가 나한테 아줌마라고 했다."
"아줌마요? 그게 어때서요?"
"어때서긴! 요즘은 어딜 가도 나한테 할머니라고 하지 아줌마라는 말 못 들은 지 한참 됐어."
난 그런 어머니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내가 그렇게 서운했던 아줌마라는 호칭이 언젠가는 내게도 고맙게 들릴 날도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남편과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난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날 부르는 건 아니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아줌마 부르는데 왜 돌아봐?"
순간 난 이 남자가 날 아직 젊다고 느끼는 건가 해서 잔뜩 감동받은 얼굴을 하고 혀 짧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부르길래 난 줄 알고..."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앞으로는 아줌마라고 부르면 돌아보지 마! 아저씨라고 부르면 돌아봐!"
남편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 하나 더!
얼마 전 딸아이의 방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일이 생겨 관리사무소를 통해 위층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난 최근에 새로 이사를 온 위층 아주머니를 처음 만났다. 아주머니는 어쩌면 할머니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연세로 보였다.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애기 엄마가 속상했겠네, 우리 집에서 원인 찾아서 수리를 할 테니 애기 엄마도 도배 다시 하고 연락 줘요."
순간 난 '애기 엄마'라는 호칭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됐으니 애기 엄마가 언제 적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난 퇴근을 하고 온 남편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위층 아주머니가 나한테 애기 엄마래. 나 아직 그렇게 젊어 보이나 봐!"
남편이 말했다.
"아주머니가 시력이 안 좋으신가 보네."
남편이 놀리든 말든 난 기분이 좋아서 노래까지 흥얼대며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정말 애기 엄마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위층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그날 저녁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위층 아주머니가 남편이랑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남편분은 일흔 살은 훌쩍 넘어 그야말로 할아버지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자 위층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남편을 소개했다.
"아! 애기 엄마? 인사해요, 우리 애기아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