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빠지다.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난 최대한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게 침을 삼켜보려 했다. 입을 벌린 채로도 침을 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자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밀려드는 공포였다.
오래전 출근길 만원 버스의 한가운데에서 느꼈던 공포와, 그리고 더 오래전 피부숍에서 석고팩을 콧구멍을 제외한 온 얼굴에 덮었을 때 느꼈던 공포와 비슷했다.
만원 버스에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겨우 기다시피 내려 상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다 토했던 기억이 있고, 마사지를 위해 덮었던 석고팩은 굳기도 전에 내 손으로 허겁지겁 떼어내고 숨을 몰아쉬었던 경험이 있다.
일명 페소 공포증과 같은 그것이 쾌적한 치과 의자에 누워있는 그 순간에 내 온몸을 지배했다. 급기야 손바닥에 식은땀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머리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고 현기증이 나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던 터라 나름대로의 대처방법도 있었다. 난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했다.
'별일 아니야,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난 속으로 되뇌었다.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병원의자에 앉아있어.'
그냥 의사에게 손 한 번 들어 보이고
"저 침 좀 삼키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극도로 소심한 성격에 말도 못 하고 목구멍에 고이는 침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긴장한 탓에 주먹을 꼭 쥐었더니 의사는
"아프면 왼손을 드세요."
라고 했다.
아픈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애도 둘씩이나 낳았고 거대근종으로 자궁도 적출한 마당에 아픈 건 겁나지 않았다. 그저 자꾸만 목구멍에 고이는 침이 날 힘들게 했다. 잠시 의사가 내 입에서 기구를 빼고 몸을 돌리는 틈을 타 잽싸게 침을 삼켰다.
40여 분간 계속된 치료에 온몸의 진이 모두 빠진 기분이었다.
그 후 대여섯 번 더 진행된 치료에 난 치과에 갈 때마다 전장에 나가는 전사의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참 세상 살기 힘든 성격이다.
결국 어금니에 크라운을 씌우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염색약을 꾹꾹 짰다. 비닐장갑을 끼고 잘 섞은 염색약을 머리에 처덕처덕 발랐다. 역시 흰머리에는 염색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