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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는 세탁소를 하신다.
by
은둘
Nov 23. 2021
결혼하기 전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는 세탁소를 하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었다. 어린 나이에 들었을 때 왠지 세탁소라고 하면 그저 드라마에서 봤던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사하러 가던 날 시아버지는 남편과 똑같은 얼굴로 세탁소에서 다리미질을 하고 계셨다.
다리미를 내려놓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모습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일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는 평생 아버님은 세탁소에 계셨다.
바지 칼주름에 있어서는 가히 명인이라고 할 수준이셨다.
지금 동네에서 세탁소를 하신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늘 꼿꼿한 자세로 다림질을 하시고 재봉틀을 돌리시는 모습이 익숙했다.
아버님은 평생 그런 모습으로 그 자리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아버님은 파킨슨병을 진단받으셨다. 예전 같지 않게 종종걸음을 걸으시는 게 이상해서 병원에 모시고 다녀온 뒤였다.
아버님은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병원에서 오시자마자 다리미를 잡으셨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새로 산 남편의 바지 길이를 줄이기 위해 아버님께 맡겼다.
참고로 여기서 남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우리 남편은 다리가 짧다. 뭐 약간 그렇다는 이야기다.
비싼 바지를 싹둑 잘라내야 할 때는 왠지 손해 보는 기분마저 든다.
그 바지를 믿고 맡겼는데 아버님이 수선을 끝낸 바지를 입어보고 남편과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발목을 덮어야 할 바지가 복숭아뼈 위로 달랑 들려있었다.
대체 아버님은 당신 아들의 다리 길이를 뭘로 보시고......
'아버님! 애비다리가 이렇게까지 짧진 않아요.'
맘 속으로 삼킨 말이다.
그땐 몰랐다. 아버님의 인지 기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는 걸.
아직 아버님 세탁소로 전화를 하면 신호대기 안내음이 들린다.
'최신 설비, 고도의 기술 ㅇㅇㅇ세탁소입니다.'
기계를 새로 들여놓은지도 긴 세월이 지났으니 최신 설비라 할 수 없고, 파킨슨병을 진단받으신 아버님이니 고도의 기술도 아마 아닐 거다.
큰 병을 진단받고도 다림질을 하고 계시는 아버님을 난 방 안에서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늙으셨다.
긴 세월 세탁소 일의 고단함이 온몸 마디마디에 내려앉아 있었다.
어깨는 작업대를 향해서 한참 구부러져 있었고, 명치까지 추켜올린 바지 안에 있을 다리는 앙상하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아버님 평생의 삶이었던 세탁소도 이제 머지않아 그만두셔야 할 날이 올 것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다만 그날이 가능하면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님 세탁소를 찾아주시는 삼십 년 단골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만 고가의 옷을 맡기는 것은 부디 지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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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삐그덕대는 일상에서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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