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쳐간다.
깜깜한 새벽의 적막을 깨고 휴대폰이 불길한 벨소리를 내질렀다. 난 놀라서 잠에서 깨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시어머니였다.
"어머니?"
"애미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아무래도 내 다리가 부러진 것 같구나."
"네? 어쩌다가요?"
"새벽에 화장실 다녀와서 방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뚝하는 소리가 났어."
"앉으려는데 갑자기요?"
"응. 아무래도 부러졌나 봐. 너무 아파."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 119 신고를 할게요."
나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119에 신고를 했다. 놀란 남편도 다가와 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어머니 다리가 부러졌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애."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남편도 덩달아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잠시 후 119 대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근에 ㄱ대학병원과 ㅅ대학병원은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ㄹ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연거푸 인사를 해대고 남편과 ㄹ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은 날 병원 입구에 내려주고 지방에 일이 있어서 바로 떠났다.
늘 시부모님의 병원 동행은 모두 내 몫이었다. 시누이도 셋씩이나 있었지만 어머니는 무슨 일만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몇 년 전 고관절이 부러졌을 때도 그러셨고 아버님께 심근경색이 왔을 때도 내게 전화를 하셨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응급상황과 무수히 많은 일들을 내게 보고했고 내게 도움을 청하셨다. 날 믿어서일 수도 있겠고 내가 제일 만만해서일 수도 있겠다.
엑스레이 결과 왼쪽 무릎 위의 뼈가 부러져 있었다. 난 걱정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맘속에서 일어났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가끔은 딸들에게 전화해도 되잖아요. 왜 늘 나예요?'
난 사실 전화 벨소리 트라우마가 있다.
어린 시절 친정엄마의 사고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내가 받았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던 엄마가 갑자기 저혈압으로 쓰러지셨고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돌아가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느닷없는 시간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는 심장이 툭 떨어지곤 한다.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시어머니는 밤낮 구분 없이 내게 전화를 하신다. 급한 일이건 그렇지 않건......
코로나로 병실에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말에 간병인에게 간호를 맡기고 난 시댁으로 향했다.
파킨슨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님의 식사와 약을 챙겨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밥을 지어 상을 차려드리고 약을 챙겨드렸다. 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와서 이렇게 챙겨드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당분간 저희 집으로 가세요!"
차라리 우리 집에 모셔서 챙겨드리는 게 나을 듯싶었다.
"나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아버님은 잔뜩 불쌍한 얼굴을 장착하시고 내게 말했다.
"그냥 저희 집 가시지 왜요?"
"손님들이 옷 찾으러 왔는데 내가 없으면 어떡해?"
말했듯이 아버님은 세탁소를 하신다. 절대 가게를 비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난 포기하고 말했다.
"그래요, 그럼 제가 매일 올게요."
사실 아버님은 얼마 전부터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치매검사도 예약해둔 상태다. 역시 그 모든 일들도 내 몫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느닷없이 울음이 터졌다.
솔직히 말해서 병들어 힘들어하시는 시부모님에 대한 걱정보다는 이 모든 일들을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질 않았다. 눈에 눈물이 어른거려 운전하기가 힘들 정도로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왠지 좀 후련해진 기분도 들었다.
부모님들은 점점 늙어가시고 난 하루하루 지쳐간다. 어제는 남편이 시누이들에게 전화해서 시아버지 식사와 약을 챙기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다행히 막내 시누이가 시댁에 와있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이든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일은 힘들고 버겁다. 지금까지는 말없이 혼자 모두 해결하려 했지만 그게 결코 현명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며 살고 싶다.
'어머니! 딸들 아끼느라 저한테만 전화하시는 거 아니죠? 저도 돌아가신 우리 엄마한테는 귀한 딸이었어요.'
내 표정이 그렇게 말했는지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고맙고 미안해, 앞으로는 너 혼자 하려고 애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