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나와 남편은 어머님이 평소에 좋아하시는 갈비탕을 포장해서 시댁에 갔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우리는 자주 찾아가는 편이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조용한 집안에서 어머니는 TV도 켜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다가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반가움에 씩 하고 웃으신다.
"TV라도 보시지 왜 이렇게 조용히 계세요?"
"테레비?"
"네. 왜 안 보세요?"
"응. 테레비는 이따 12시쯤 노래자랑할 때 틀면 돼."
나와 남편은 소파에 앉으며 TV를 켰다.
무겁고 조용하던 집안에 TV소리로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그것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여전히 창밖을 향해 고개를 쭉 빼고 계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하루종일 창밖만 내다보고 계신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 지 3층 창밖을 통해 내다 보는 바깥 풍경에 넋을 놓고 계시곤 한다. 그 모습은 쓸쓸해 보이다 못해 가끔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기도 한다.
늘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니 오래된 이웃들은 어머님 집 앞을 지날 때면 일부러 고개를 들어 3층 창가에 앉아있는 어머님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친한 이웃이라도 지날 때면 어머니는 반가움에 창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친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두 노인이 서로 닿지 않는 대화만 나눈다는 거다.
"어디 가요?"
"메주로 된장 담갔어."
"병원 간다고?"
"이따가 아들이 온대."
"얼른 다녀와요."
어머니는 대화 아닌 대화를 반갑게 마무리하고 손을 흔들고 창문을 닫는다.
난 재미있어서 어머니께 묻는다.
"뭐라고 하세요?"
"응, 허리가 아파서 병원 간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외로움을 잘 견디시고 잘 지내시는 중이다. 문득문득 아버님 생각에 울기도 하시고 때로는 목소리 높여 아버님의 흉을 보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신다.
그나마 다행인 건 40년을 넘게 살았던 집을 아버님이 세탁소를 그만두신 후 모두 부수고 새로 지었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세탁소를 은퇴한 아버님께 새 집을 지어드리려고 했지만 막상 아버님은 새집에는 한 번 와보시지도 못하고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남편은 그 사실에 가장 가슴 아파했다.
"결국 아버지는 새집에 살아보지도 못하셨어."
이렇게 말하며 남편은 무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래서 지금 어머님이 살고 있는 집에 아버님의 흔적은 전혀 없다.
만약 아버님이 평생 해오시던 세탁소가 붙어있던 그 집에 지금도 살고 계신다면 어머니는 구석구석 아버님의 흔적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난 신혼을 시댁에서 보냈었다. 5년을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분가했을 때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애미야! 주방에 가면 네가 설거지하던 모습이 선해서 눈물이 나."
"이 밥솥만 보면 네가 쌀 씻어서 안치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면 네가 오르내리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나."
어머니는 분가해 나간 자식들에 대한 추억으로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홀로 그리움과 싸우셨다.
그러셨던 어머님이 50여 년을 같이 산 아버님과 이별을 했으니 집안 구석구석 아버님의 흔적으로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눈에 선하다. 세탁소, 안방, 화장실은 온통 아버님의 모습과 추억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새로 지은 집에 아버님이 살아보시지 못한 건 마음이 아프지만 남아있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멀뚱히 내다보는 바깥 풍경에도, TV 소리조차 없는 조용한 집안 어디에도 아버님의 흔적은 없다.
문득 오래전, 깨끗한 세탁물을 바깥 폴대에 내다 걸고 지나가는 이웃주민에게 "어디 가세요?"
라고 인사하던 아버님의 모습이, 그리고 그 목소리가 떠올라 코끝이 찡해진다.
어쩌면 어머니는 집안에 남아있지 않은 아버님의 흔적을, 창밖으로 아버님이 자전거에 세탁물을 싣고 수만 번 배달을 다니시던 길거리에서 찾고 계신 건 아닌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