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언니가 있다. 언니는 똑똑하고 씩씩하다. 글을 써도 칭찬을 받고, 아무리 복잡한 일도 "나약하게 굴지 마."라고 하며 금세 해결해버린다. 영어, 운동, 토론, 대인관계 그 모든 것을 순조롭게 해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고민이 생기면 언니에게 넋두리를 한다. 역시나 언니는 씩씩하게 정신 교육 스타일의 위로를 해준다.
"언니, 나 요즘 슬럼프가 온 것 같아."
"야, 정신 차려! 네가 뭘 했다고 슬럼프가 오니? "
"언니, 나 나중에 뭘로 먹고살지? 너무 걱정돼."
"야,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어. 나약한 소리 할 시간에 유튜브라도 해. 너 피부 좋잖아. 피부 관리법이라도 알려주든지. 일단 뭐라도 해."
이런 식의 위로다. 텍스트만으로 언니의 스타일과 매력을 다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언니는 늘 내 고민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해줘서 좋다. 혼자 고민할 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연 많은 사람이 된 것 만 같다. 그런데 언니는 '그 까짓게 뭐라고'라는 식으로 답해주니 예상치 못한 답변에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내 고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언니처럼, 가만히 듣다가 웃긴 한마디를 툭 내뱉는 스타일의 위로를 따라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취업 준비 중인 친구 A가 면접에서 떨어졌다며 하소연을 했다.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나는 그동안 동경해왔던 언니의 위로 스타일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에이, 그거 별거 아니야!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어. 우리가 10년 후에도 놀고 있겠어?"
그러나 A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되려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주지 않아 서운한 기색이었다. 분명 언니가 위로해줄 땐 이게 아니었는데. 결정적인 한마디를 생각해내는 것도 어려웠고, 웃음과 위로를 동시에 전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B가 말했다.
"내가 최근에 만화를 봤는데, 스토리 한편마다 항상 발단-전개-위기- 절정- 결말 구조가 꼭 있어.
모든 스토리에는 위기가 꼭 들어가야 재밌어. 너의 취업 스토리에도 지금 같은 '위기'가 있어야 '절정과 결말'이 화려해질걸?"
A는 바로 수긍했다. B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고 연신 고마워했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위로'가 되었다.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 감정에 공감을 해주는 것을 넘어서 두고두고 떠올리면 힘이 될만한 한마디를 해주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위로였고, 나의 새로운 목표였다.
그렇게 위로를 해주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명언집이라도 사서 읽어야 하나? 아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의 문장을 필사라도 해볼까? 결정적인 '한마디'는 내게 어려운 과제가 되었고, 고민 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은 조금씩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옆에 있는 동생에게 "나 내일 ㅇㅇ 이 만나면 뭐라고 위로해주지?"라고 도움을 청하니, 동생이 말했다.
"언니, 꼭 그렇게 한마디 해야 해? 어떨 때는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게 가장 큰 위로가 돼."
맞다. 동생 말이 맞았다. 위로의 방법은 다양했다. 말없이 묵묵히 들어주는 것, 같이 울어주는 것, 공감 가는 가사를 써서 울림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 구구절절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주는 것, 웃겨주는 것 등 방법은 많다. 위로를 하는 사람과 위로를 받는 사람 그리고 그때의 상황에 맞춰 마음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마음에 콕 박히는 한마디를 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힘을 전할 수 있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위로의 방식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위로하면 된다. 네이버 검색 기록에 저장된 '위로가 되는 글귀'를 뒤늦게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내일은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우리는 또 평소처럼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을 것이다. 내일은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며 웃겨줄 생각이다. 위로를 위하여 노력하지 않아도, 내 진심은 전해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