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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Apr 30. 2024

네덜란드 추억과 함께 기억될 아름다운 이름 '연하어'

  평평한 네덜란드에는 네모가 굴러간다  © https://brunch.co.kr/@muyeongo





네덜란드와의 첫 만남은 단정함과 세련됨이었다. 이제 그곳에 아름다운 이름 하나를 보탠다. ‘연하어,’ 작가의 영문판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의 필명은 한자 표기를 보면서 지금까지의 ‘작가 무연고’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욕심이 날만큼 이 필명이 좋다. 작가의 탁월한 어휘 감각이 돋보인다.


<평범한 네덜란드에는 네모가 굴러간다> 출간 소식을 듣고 교보문고에 주문 후 4일 만에 책을 만난다. 보통 주문 다음날 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4일이나 걸렸다. 네덜란드의 지형적 특성과 책 제목과 표지 얼굴의 조화가 자연스럽다. ‘양장본’을 손에 든 첫 느낌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작가의 성숙함과 단단해지는 삶을 닮은 듯하다. 출간 전에 소개된 목차에서 잠깐 엿본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간다. 책상 앞에 앉아 첫 장을 열고, 마지막장을 덮고서야 의자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숨김없이 서로를 보여주며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 네모를 굴러가게 할 만큼 융통성 있고 개방적이며, 틀에 박히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유롭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나라, 라고 작가는 알려준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냥 평범하게 행동하라(doe maar gewoon/두 마르 허븐)’는 그들의 철학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잘해!, 최고가 되거라, 1등 해야지’와 비교를 이룬다.


처음 만나는 에피소드의 주인공, 낯선 땅에서 긴장해 있던 작가에게 다정한 이웃으로 다가온 ‘요스튼’ 할머니의 마음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홀로 사는 노인을 의무적으로 요양 보호하는 국가정책은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부러운 부분이다.


자신과 가족의 상황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 친구와 이웃의 약한 부분 혹은 아픈 상처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으로 만들어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과 나란히 세워본다.


연하어 작가님의 ‘고소공포증’을 알고 있는 나는, 산자락에 주저앉아 목놓아 우는 작가님의 모습이 귀여우면서, 여행 중 산꼭대기에 있는 고성(古城) 호텔에서 밤새 벌벌 떨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평평한 나라의 자동차 도로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넘실대며 흐르는 폭넓은 물줄기를 곳곳에서 만났을 때, 은근히 겁이 나고 긴장되던 나의 경험도 떠올려본다. 의무적으로 기본적인 수영자격증을 따야 물놀이 시설에서 제한 없이 수영을 한다는,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본받고 싶은 제도이다.


스승의 날, 1유로를 모아 단체선물을 하고 10유로가 넘지 않는 개인선물을 하며, 과거 우리의 치맛바람·촌지·학생차별 등으로 얼룩진 교육현장에서 결국은 법으로 다스리는 지경에 이르렀던 모습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린 관습도 눈길을 끈다.


숫자 세는 무례한 여인을 향해 던진 작가의 용감한 훈계는 통쾌하지만 쪼끔은 조마조마한 장면이다.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지 않은 ‘파트너’ 임이 이상할 것 없고 ‘혼인신고’가 아닌 ‘파트너 등록’만으로 부모와 자식이 가족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아무 불편과 불이익이 없는 사회, 익숙하지 않으나 긍정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1/n이 익숙한 우리와, 각자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보며, 술과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던 젊은 날의 내가 조금 억울해(?)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술은 마시지 못하고 약간의 고기는 가능하지만, 그때는 엄청난 술과 고기로 채워지는 회식비를 균등분할해서 감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시험과 함께 자전거시험이 의무적이고 자전거로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가는 나라, 네덜란드 거리에 넘쳐나는 자전거 행렬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유도 알게 된다.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를 지니지 않고 오직 자연과 자전거와 친구들(보호자 동반)만의 졸업여행과 우리의 수학여행, 그리고 가슴 아픈 4월의 기억 속 아이들도 떠오른다.


숙제와 사교육, 학업성적 경쟁, 대학의 서열화가 없는 나라, ‘말하기’를 가장 열심히 가르쳐 당당히 자기를 표현하게 하는 나라가 부럽다.


옛말에 “밥때가 되면 거지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우리와 극 대비되는 네덜란드의 식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개인의 집과 홈닥터가 안내하는 조산소에서 출산하는 나라, 산후조리원이 필수코스처럼 보이는 요즘 젊은 산모는 조산소를 아는지 모르겠다. 공공보건소 의료진과 국가지원 산후조리사의 가정방문 지원제도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저출산국가인 우리가 눈여겨볼 정책이다.


부모와 자식의 정신적·경제적 관계, ‘너는 너고, 나는 나다’의 철학은 아이들로 하여금 삶의 결정권과 주도권을 갖게 한다. 태어나서 10대 초반까지 의무적으로 공공보건소에서 성장과정을 관리해 주는 나라, 8시 이전에 아이들 잠재우기를 권하는 나라, 이런 나라가 작가가 살고 있는 평평한 나라다.


학습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스낵박스와 런치박스만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간식시간과 점심시간 후에는 반드시 자연 속에서 휴식시간을 갖게 하는 나라, 유럽여행 중 쏟아지는 빗속에서 유모차를 밀고 자전거를 타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신기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듯하다.


지정학적인 영향으로 ‘전쟁’이라는 단어가 내 삶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음을 경험한 작가의 삶 속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도 되새겨 보게 된다.


작가의 글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과 조금은 넓어진 시야를 경험하기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친구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 듯, 그리고 가끔씩 “어머,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감탄사도 섞어가며 담담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오늘도 무탈하게 별일 없는 하루에 감사한다.

창밖 강변 산책로에 초록이 무성하고 강물은 저녁햇살에 반짝인다.



▲  평평한 네덜란드에는 네모가 굴러간다  © https://brunch.co.kr/@muye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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