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나를 찾아서> 미국 하와이
▲ 마우나 케아 정상 분화구와 운해 © Kyrene
호텔 조식을 위해 해변을 따라 식당으로 이동한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도 부드럽고 온화하다. 깊은 밤을 뒤 흔들던 바람은 어디에 ...
커다란 나뭇가지에 화려한 모습을 뽐내는 앵무새 가족도 맑은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건넨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야외식탁으로 안내를 한다. 야외식당 바로 아래 해변산책을 위한 예쁜 꽃길이 만들어져 있다. 다채로운 색깔과 모양을 갖춘 향기로운 꽃, 수령 높은 거목, 이름 모를 식물들이 가득 채워진 산책길을 거닌다.
산책길과 이어지는 바다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모래 해변을 거닐고 있다. 스노클링, 수영, 보트, 각자 바다를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다. 식탁에 앉아 마냥 한가롭고 여유 있는 풍광을 바라보면서 어젯밤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하와이 화산 폭발의 현장, 마우나 케아(Mauna Kea)로 향한다.
이곳은 하와이 전통문화에서 매우 신성한 산(Sacred Mountain)이며, 예배를 위한 성지이자 신들의 집으로 여겨진다. 정상(해발 4,207 m) 가는 길은 눈과 강풍으로 자주 폐쇄되고, 기온은 해변보다 5℃ 이상 낮으므로 여행 전 기상 상황을 확인한다.
간밤의 비가 개인 하늘은 흰구름과 푸른빛으로 쾌청하기 이를 데 없다. 국도를 약간 벗어나니 가을빛 초원을 가로질러 작은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낮은 구릉을 따라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로드트립을 한다.
푸른 하늘과 함께 목적지의 절반쯤 왔을 때 저만치 눈에 보이는 짙은 안개는 경험치로 볼 때 심상치 않은 날씨 조짐이다. 안개에 다가서자 쏟아지기 시작하는 폭풍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산 정상에 오를 수 없다. 화산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와 비와 바람이 거세다. “반드시 정상에 갈 수 있을 거야, ‘마님의 하느님’께서 날씨 선물을 확실하게 주실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서방님 말씀대로 그렇게 믿지만 워낙 거칠게 몰아대는 비바람과 안개에 완전히 덮여버린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게 안개비 속을 얼마나 갔을까, 왼쪽 하늘 끝에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안개와 구름이 밀려나고 빗줄기도 사라지며 햇살이 빛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언제나 나에게 기적과 같다. 낮은 길 언덕 풀숲에는 마실 나온 야생 칠면조 가족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산에 오르려면 화산폭발로 형성된 높고 거칠고 가파른 돌밭길을 달릴 수 있는 4륜 구동차만 출입이 가능하다. 오프로드에 최적회 된 지프(Jeep)를 렌트해서 올라간다. 산 입구 체크포인트(Checkpoint)에서 관리직원이 운전속도, 기어상태, 브레이크, 연료, 탑승자수, 마실물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설명하고 수차례 안전을 당부한다. 내려올 때도 동일한 곳에서 직원의 차량점검을 거쳐야 한다. 방문자의 안전을 고려하는 관계자들의 기분 좋은 간섭이다.
화산폭발 잔해물이 깔려있는 거칠고 아찔한 돌밭 산길을 따라 기이하고 독특하게 형성된 사암층, 분화구, 산봉우리 등을 보며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 도달하니 적갈색과 다크초콜릿 색의 곱고 아담한 분화구들이 옹기종기 흰 구름에 덮여있다. 경이로운 풍경과 적막함이 경외감 마저 느끼게 한다. 왜 이곳을 ‘하늘의 아버지 산(Mauna a Wakea),’ ‘신성한 산’으로 부르는지 실감 난다. 겨울 정상에는 흰 눈이 쌓여있기 때문에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이라 한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돔 형태의 방대한 규모의 NASA 적외선 천문대 등 4동의 천문대, 칼텍 관측소와 망원시설이 넓게 원형을 이루며 설치되어 있다. 여러 개의 거대한 우주선 모양의 시설과 안테나가 세워진 신비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자연의 신비,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인간의 놀라운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떠오른다. 이토록 광활하고 신비한 자연현상, 화산 폭발현장을 밝은 햇살아래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날씨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랜드캐년(Grand Canyon)도 마테호른(Matterhorn)도 햇빛이 없고 구름이 덮이면 모두 똑같은 구름바다일 뿐이다.
온통 거칠고 척박한 화산암 더미에 강인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 무리를 본다. 오늘도 극적인 날씨 속에서 평화롭고 안전한 우리의 여정에 감사함이 더 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