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공감과 배려
▲ 노랑, 하양, 검정 © Kyrene
미국사회를 일컬어 멜팅 팟(Melting pot)이라 부른다. 원주민 땅에 지구촌의 다양한 민족이 들어와 함께 사는 나라이다. 다양한 사회·문화권의 유산과 인재풀을 토대로 세계 최강의 나라로 변모하였고 많은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어느 집단이나 계층이 있고 나름의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다양한 계층과 사람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식료품점(Grocery store)이나 수퍼마켓이다. 도심지에서 10~20분 거리에 알디(Aldi), 퍼블릭스(Publix), 웨그먼스(Wegmans) 등 대형 식료품점과 각 주(State) 고유의 지역 상점들이 즐비하다. 우리도 한번 나들이에 일주일 분 정도의 식품을 구매하여 저장해 놓고 사용했다.
지역에서 제법 규모 있고, 다양하고 신선한 식품을 갖추고 있는 D식품점에서 10여 명이 줄을 서서 주문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갑자기 한 백인 여성이 새치기를 한다. 모두 줄 서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니, 이 여성 대뜸 “So what?”하고 대들며 오히려 얼굴을 붉힌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이다.
근처에 서 있는 판매대 관리자도 방관 만 하고 있다. 관리자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그 백인 남성은 귀찮은 듯 한 태도로, 오히려 그 중년여성을 판매대 옆으로 데리고 가 별도로 주문품을 먼저 건네준다. 그 당시 좋은 이웃·동료들과 함께한 미국생활 십여 년 만에 처음 겪는 황당함이다. 이 남성과 여성을 상대로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인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상화된 그들의 차별적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후 상점을 바꾸어 반스 앤 노블(Barnes & Noble, 서점) 등 상점 밀집단지에 있는 S식료품점을 이용한다. 상점에 따라서, 계산대 캐쉬어의 근무 교대시간이 있는 것 같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차례가 되니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계산을 중지하고 캐쉬어가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려니 하고 다른 카운터를 이용한다.
다시 그 상점에 들렀는데, 그때와 동일한 중년의 백인남성 캐쉬어다. 시간대가 다름에도 예전과 똑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 이상 반복되면 다분히 고의적이라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근무 교대 시간을 지키고, 개인의 휴게시간이나 자신의 일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줄 서서 기다리는 구매자에게 마감시간이 되었으니 옆 카운터를 이용하라고 안내를 하거나, 미리 마감시간을 예고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것이 구매자에 대한 상점직원의 기본 근무 태도가 아닐까? 물론 그에게서 점원 이상의 어떤 인간적인 배려나 친절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구매자가 상점캐쉬어에게 받아야 할 경험은 아니다.
잘 차려입은 동양인 부부의 식품점 쇼핑이 부러워서일까? 아니면, 백인으로서 물품값을 계산해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서일까? 아니면, 내재된 우월주의의 체화된 일상적인 표출일까? 그 후로 대형식품점 보다 규모는 작지만, 유럽 직수입 식품과 몇몇 특화된 상품을 갖추고 있으며 직원이 비교적 더 친절한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를 이용했다. 지역마다, 상점마다, 직원마다,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는 각양각색인 듯하다.
굳이 먼 나라 얘기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우리의 가까운 주변에서도 타국에 와서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리고, 제때에 임금을 받기는커녕 산업재해로 인하여 불구의 몸으로 고생하는 외국인 근로자나 그 가족의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한다.
인간의 다면적인 속성을 접하는 순간이다. 인생여정은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다. 언제나 꽃길 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가시밭길 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없이 선하기도, 때로는 무도하기 그지없는 인간 군상을 매 순간 만난다.
어느 국가, 사회, 집단을 불문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인종·성별 등의 계층과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극복하고,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인류애적 노력은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으로 지구촌 인류의 존속에 도움이 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본 가치 일 것이다.
며칠 전 뉴스는, 외국에서 온 계절노동자의 참혹한 실태와 업주들의 횡포를 보도했다. 내가 미국에서 느꼈던 차별적 감정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의 태도, 우리 주변의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임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