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상 들여다보기>
▲ 우아한 어르신들의 궁금증 © Kyrene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준다.
이번 해외 나들이는 설렘과 더불어 약간의 긴장과 염려스러움이 보태진다. 여느 여행과 달리 유학을 떠난다.
연일 30℃가 넘는 한국을 떠나 13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미국은 아주 쾌적한 초가을의 날씨로 우리를 맞이한다. 대학도시인 이곳은 한가하고 여유롭고 조용하며, 가로수가 우거진 거리는 충분히 낭만적이다. 서울의 출발과 동일한 날짜에 도착한 이곳의 첫인상은 유학 첫날임을 잊을 만큼 지극히 만족스럽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집에 들어선다. 2층 타운하우스 양식의 우리 집(?!) 앞마당은 초록의 잔디가 싱그럽다. 잔디에서 폴짝거리던 청설모 한 마리가 현관과 잔디를 연결하는 데크 위 담장으로 쪼르르 기어오른다. 작은 구슬 같은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다. 신선한 선물이다. 높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당연하던 바라, 하루 전의 환경이 갑자기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여행과 출장으로 다녀간 미국이 이젠 생활터전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편리한 한국에 비해, 식생활을 비롯해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고즈넉한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는 대학도시의 주거환경이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려 준다. 거리를 산책하다 흰꽃이 만발한 가로수 사이에 서있는 붉은 벽돌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종교시설을 발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기로 마음먹는다.
첫 종교모임을 마치고 눈길을 끄는 스터디그룹에 참여하기 위해 지정된 방안에 들어서니 우리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한두 명을 제외하면 우아하고 교양 있게 잘 차려입은 은발의 어르신들이 주요 멤버인 소그룹이다.
바로 전 모임에서 이미 소개를 마친 터라 우리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으나 자신들의 소모임에 참석한 것은 의외인지 격하게 반겨준다. 10여 명이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하는데 사실 나는 상당한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사적인 질문은 하지도 않고 사생활은 대화의 주제가 되어선 안된다’라는 것이 거의 상식으로 여겨지는 일반론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각자의 소개 내용이 심상치 않다.
부부이야기, 자녀이야기, 가정 경제를 중심으로 매우 세세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우리의 소개를 듣기 전에 그들 개인에 대한 많은 내용을 먼저 들려준다. 우리도 그들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압력인가? 갑자기 부담스러워진다. 나는 공부하러 왔는데, 다시 나갈 수도 없고 몹시 난감하지만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우리 차례가 되어,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 오기 전에 했던 일, 전공분야 그리고 독특하지만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정도의 가족 구성원 몇몇에 대한 이야기로 소개를 마친다.
나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타인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우리 소개가 끝나고 오늘의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했지만,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질문을 시작한다. 저렇게 잘 차려입은 품위 있는 신사숙녀의 질문은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한국에서 친한 사람도 쉽게 꺼내지 않는 것들이다.
- 자동차는 샀니? 무슨 자동차야?
- 사는 집은 어디야? 하우스야? 아파트야?
- 그곳 학비가 비싼데 수입은 얼마나 되니?
- 다니는 미용실이 어디야?
- 옷은 어디서 사 입니? 그 옷은 맞춤옷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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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여기 왜 왔지? 미국 맞아?
그동안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어디서 온 거야?
어르신들끼리만 지내다 조금은 젊은 동양인을 만나니 삶의 활기가 도는 모양이다. 정말 호기심 어린 얼굴로 우리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다.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혹은 계절에 따라 모든 장면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일치할 수 없으며 또한 틀린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