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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Sep 26. 2022

20년전 웨일즈 사람이 썼던 '새끼'에 대한 기억

나름 일국의 대통령이자 평생을 '조지는 갑'으로 살아왔는데, 더 큰 나라의 대통령을 뒤에서 뻘쭘하게 서서 기다렸던 게 몹시나 민망했었나보다. 그래서 너스레 떨듯이 주변 스텝들에게 '짜식 꽤 비싸게 구네'라는 식으로 말했던 게 바로 '새끼'였을 것이고.



그 '새끼'란 단어는 '평생 갑'으로 살아오신 분에게 있어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한 말이었을듯. 그간 그의 직업적 행적을 보면 조직의 보스이자 수사검사로 '화자'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을테니..


그냥 대통령의 입버릇이 여과없이 나온 것 같은데, 그 이후 수습 과정은 '을 넘어가는 것' 같다. 그 단어에 오해말라면서 다음번에는 주의하겠다고 말하면 될 것 같긴 한데 말이다.


'새끼'란 단어. 경우에 따라서는 격이 없는 사이에서 친근감의 표시로 쓸 수 있다. 해설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외신 사이에서 idiot이라는 번역까지 나왔으면 말 다한거지.  


엉뚱한 연결로 보일 수 있지만, 지난 1998년 엄혹했던 IMF구제금융 시절 봤던 한 원어민 교사가 생각났다. 그가 썼던 'guys'란 단어가 떠올랐던 것.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단어를 쓴 영국 웨일즈 출신 원어민 교사는 혹시라도 오해를 살까 걱정을 했다.


진한 녹색이 웨일즈


이 원어민 교사의 이름은 '랍 프라이스'. 영국식 발음으로 하면 '롭 프라이스'가 되겠구나. Rob Price다. Rob은 아마 로버트의 줄임말인 것 같다. 친근하게 자신을 부르라는 뜻으로 '롭'으로 지칭했다.


이 사람을 보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서였다. 1990년대말 공립 고등학교에 원어민 교사라니. 좀 생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 학교는 영등포 내에서도 소문난 '공부 못하는 학교'였다. 건너편 목동과는 '안양천'을 경계로 큰 격차를 보였다. 목동 학부모 입장에서는 '목동 밖 13구역'이자 '야수들의 땅'이었다. 나이 지긋했던 50대 모 교사는 자신이 예전에 재직했던 강남 S모 고등학교를 회상하며 "이 학교 부모들은 애들 교육에 참 관심이 없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이런 학교에 노란색 수염에 파란눈 영국 출신 교사가 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한 반에 50명의 남학생이 들어차 있고, 영어 대화가 가능한 인간들은 한 줌도 안됐다. 중학교 수준의 영어 대화도 '수줍어' 못하는 인간들이 태반이었다.


서구에서 온 그의 눈에는 이들 '인간들'이 재소자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규격화된 스포츠 머리에 자주색 빛깔나는 교을 일률적으로 입고 있었다. 학교 안 바닥과 콘크리트 벽면도 회색 계통이었다. 매를 든 교사들은 간수, 그들의 통제를 받는 남학생들은 딱 죄수, 그 구도였다.


그래도 그 원어민 교사는 곧잘 재소자(?)들과 생활형 티키타카를 벌이곤 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화장실에서 일 보고 있는데 힐끔힐끔 다보는 애들을 향해 "뭘봐~!"라고 소리치는 식. 우리는 쉬는시간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그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흉내내며 낄낄거렸다. '뭘봐~'


당시 우리는 외국 남성이 갖고 있는 심볼의 크기에 환상을 갖고 있었다. 포르노 테이프가 만든 그릇된 인식. 그 원어민 교사의 크기는 어떨지 항상 궁금해 했었다.


한국 교사에 대한 문화 체험인지, 죄수-간 게임에 맛을 들인건지, 원어민 교사는 열심히도 학교 주변을 쏘다녔다. 한국인 교사와 함께 단속활동을 벌인 것. 창고 뒤에서 담배 피는 재소자, 담을 넘는 죄수 등을 잡았다. (역시 경험을 중요시하는...)


그때 그가 우리에게 썼던 말이 'guys'였다. 우리는 그냥 '이 녀석들'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원어민 교사는 친근감의 의미로 썼다고 했다. 마지막날. 자기가 'guys'라고 쓴 것은 우리에게 애틋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자기 친구들끼리 쓰는 그 단어 'guys'를 썼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웨일즈 촌구석의 10대들은 '야이 새끼야~'라는 의미로 'guys'라고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혹여나 우리 사이에서 오해라도 할까봐 그는 'guys'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거듭 말했다. '새끼'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들으며 선생님들로부터 반인반수 취급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굳이 할 이유가 없는 오해였지만...


어쩌면 진짜로 우리 학생들이 귀여웠을지도 모른다. 날라리·양아치라고 해봐야 학교 담벼락 안에서는 순수했고, 그들이 하는 탈선이라고 해봐야 서구 '네오나치'들과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었을테니. 반항하는 청춘들이 나오는 영화 '트렌이스포팅'을 보면 그곳 양아치들은 마약이 기본인 것 같고...  걔들에 비하면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학생들은 순둥순둥하고 예뻤을 것이다.



한 20년이 지나 우리들에게 '이 새끼들아'라고 했던 그가 뭘하는지 찾아봤다. 페이스북에 그의 이름을 넣고 돌려봤는데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웨일즈나 영국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프라이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그때를 기억할까? 그때와 지금의 한국은 너무나 달라져 있고 학생들의 모습 또한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이 무심코 쓴 단어에 괜한 오해를 살까봐 조심스러워했던 그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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