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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Nov 23. 2022

중국 축구가 잘 안되는 이유

그 자체가 아닌 애국의 수단으로 쓰려고 하니 잘 안돼 

월드컵을 보면서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열광한다. 본선진출국은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곳의 국민들도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이중에서도 유별나게 관심이 높은 곳이 있으니 바로 중국이라고 한다. TV 생중계는 물론 카타르 현지에서도 직접관람하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뭐 올해만 특출난 것도 아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때 '카잔의 기적'을 일으키며 한국 대표팀이 독일을 격침시켰을 때를 예로 들 수 있다. 경기장에서 독일인과 함께 비통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 중 아시아인들이 있었는데 상당수가 중국 직관객이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독일을 응원했다고 한다. 한국 축구가 독일 축구에 깨지는 것을 보며 월드컵에 못 나간 한을 다소나마 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국과 일본이 묘한 경쟁심으로 서로의 패배를 응원하는 것과는 좀 다른듯 싶다. ('이왕 망한 거 다 같이 망하자' 심리가 아닐까...) 


사실 중국 축구가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은 피파(FIFA)도 풀지 못하는 미스테리다. 2002년 기적적으로 월드컵에 진출했지만 본선에서 세계의 높다란 벽만 실감했다. 그나마 2010년대 이후 한국을 이겨보고 '공한증' 한풀이를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중국 축구에 대한 평가는 '개못한다'이다.  


중국 축구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고 해법이 있지만, '축구 못하는 중국 축구'의 역사는 꽤 유서가 깊다. 나무위키에 정리된 중국 축구의 설명을 보면 '왜 못하는지' 역사적으로 정리가 될 정도다. 이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중국 정부는 축구굴기를 위한 심대한 노력을 했다. 


참, 1950년대 이후 중국 축구를 이해하려면 그 당시 중국 사회상을 볼 필요가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 치른 북한과 남한 사회도 혼란스러웠지만, 중국은 모택동 체제가 추구했던 '체제의 무결성과 완결성 그리고 과시욕'으로 인민들이 죽어나가던 때다. 전세계에 중국 공산당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 진행했던 '대약진 운동'이 있었다. 


대약진 운동의 개요는 대강 이렇다. 소련이 드높은 우주기술로 미국과 전세계를 쇼크에 빠뜨리자 모택동도 자극을 받았다. 소련이 미국을 공업생산력 면에서 '10년내 앞서겠다'(후루시초프 왈)고 큰소리치자 이에 자극받은 중국이 '우리는 영국을 앞서겠다'고 나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각 나라의 공업생산력 비교 지표 중 하나는 철강 생산량이다. 철강 생산량에 꽂힌 모택동은 그 즉시 철강생산량을 늘릴 것을 하달했다. 곡물생산량도 높일 다양한 방안을 연구토록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영국을 앞서 자신들의 체제 선전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2차대전 때 일본군대에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농업국가 중국이, 모택동이 주도하는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놀랄 정도로 변했다'라는 것을 보이고 싶어 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고질적인 병폐이긴 한데, 체제 선전에 국가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다. 


https://youtu.be/rg6J6zuUmfs


스포츠라고 다를까. 나치가 1938년 베를린 올림픽을 자신들의 체제 선전에 활용했고, 동구권 국가들도 약물까지 쳐드셔가면서 올림픽 메달에 집착했던 것도 체제 선전을  위해서였다. 무결성과 완결성, 그리고 자신들의 우수성을 스포츠를 통해 드러내고 싶어했다. (이런 맥락에서 권위주의가 만연돼 있던 한국도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이런 심리는 축구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전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니까. 중국인들 자체가 축구를 좋아했고 등소평을 비롯한 역대 공산당 지도부도 축구를 좋아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가 괜한 말이 아니듯이, 지도부의 심대한 관심은 축구 굴기로 이어졌다. 


문제는 방식이다. 목표 달성에 집착하다보면 과정과 방식을 무시하게 된다. 대약진운동이 실패하게 된 이유는 유치원생에게 축구 442 포메이션을 주입시키려고 한 것과 같다고 본다. 중국 지방정부는 '철강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철기시대때나 썼을 법한 토법고로를 온 시골에서 운영하게 하고 멀쩡한 농기구를 거기에 넣어 녹였다. 모택동이 책상에는 해마다 목표가 달성됐다는 숫자가 예쁘게 포장돼 상달됐다. 


저수지를 짓겠다면서 멀쩡한 집의 토벽을 허물고 비료 생산을 늘리겠다면서 초가집의 지붕을 끌어내렸다. 비료에 쓸 똥오줌이 부족해지자 여자들은 머리카락까지 잘랐다. 


그 결과 수많은 인민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했다. 토법고로에서 나온 철의 품질은 저열하기 이를 데 없었다. 1962년 모택동은 공개비판을 당했고 실각했다. 수천만의 인민이 아사로 사망한 이후였다.  


중국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체제의 무결성과 완결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패배란 있을 수 없었다. 1950년대 유럽 하위팀과의 비공식 대결에서 완패하자 그 이후로는 아시아 국가 내로 움츠러들었다. 동남아 공산국가를 상대로 압도적인 성적을 자랑했다. 왜냐, 승리해야하니까. 1970년대 국뽕이 차올라 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 예선에 나온 적이 있긴 했다. 그들의 발목을 잡은 건 같은 공산 국가에 소국인 북한이었다. 


1980년대 들어 국제대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1990년대 이후에는 활발하게 축구 교류를 했다. 번번이 한국한테 져서 그렇지만. 2000년대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으로 뛴 선수(순지하이)도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R7ll_HYRUs


이제 좀 중국 축구가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2010년대 이후에도 중국 축구가 죽을 쑤는 듯 싶다. 플레이는 거칠고 전술은 경직돼 있다. 그런데 그들의 연봉은 유럽내 웬만한 명문팀 주전들의 것과 비슷하고. 그들의 경제력과 올림픽 성적과 비교해보면 참말로 미스테리다. 2000년대 이후로 유소년 키우겠다고 나섰고 지금쯤은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얼마전 뉴스를 보다가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보면서 '겉은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속은 70년전 그대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이 같은 대도시를 제로코로나를 한답시고 몇주 봉쇄를 하는 것 등을 보고 말이다. 여전히 중국 정부는 '확진자 0명'을 제1의 목표로 세우고 있고, '무결성, 완벽함'을 여전히 집착하는 모습이다. 겉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속은 1950년대 정권의 마인드에서 나아진 게 없다. 하기사 공산당 1당 독재체제에서 '예외'나 '대안'을 허용할리 만무하다. 


https://youtu.be/FSU23UW2ekE


정부의 핵심 가치가 이러한데 스포츠라고 다를까. 개인의 수련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는 올림픽 종목과 달리 축구는 변화무쌍한 예외적 상황이 너무나 많다. 교리적인 전술이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 브라질도 스페인도 안주하면 대량 실점으로 패배하지 않던가. 


물론 축구가 가장 네셔널리즘에 가장 부합한 종목이고, 국가 대표팀은 그 나라를 대표해서 나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진한 대표팀을 해병대 훈련 같은 곳에 보내서 '정신개조해라'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다. (더한 나라가 있으니 북한이다.) 


중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어쩌면 간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부가 축구에서 손을 떼고 체제 선전의 도구로 쓰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자생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유소년이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보기에는 '정부의 조급증', '축구를 이용해 중화민족의 우수성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수뇌부들의 아집'이 가장 큰 적인듯 하다. 


설령 계속 축구를 못해도 어떤가. 올림픽을 재패하는 나라가 중국인데. 왜 모든 것을 잘해야하고 우월해야하는지... 원....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4/20181124001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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