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 국내 모 대학의 교수가 미국 연수를 가게 됐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와서 1년 남짓 거주하는 데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용카드를 쓸 수 없다는 불편이 가장 컸습니다.
어느 날 그는 미국 최대 쇼핑 사이트 아마존으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습니다. ‘당신에게 새 신용카드를 발급해 줄 수 있다’면서 교수의 의향을 물어보는 이메일이었습니다. ‘나의 필요를 어떻게 이리 잘 알까?’라고 신기해하며 혹시 ‘피싱메일’이 아닐까 의심도 했답니다. 아마존에서 직접 보낸 메일이란 것을 확인한 그 교수는 당장 신용카드 발급에 응했습니다. 곧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발급한 신용카드가 그가 거주하는 집으로 배달 왔습니다.
미국내 신용거래 정보가 전무한 이 교수에게 아마존은 무엇을 근거로 신용카드로 발급해줬을까요? 우선은 이 사람의 현재 거주지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는 것, 한국에서 와 일일이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신용카드 발급을 제안한다면 교수가 응할 것이라는 것도 높은 확률로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존은 이 교수가 꾸준히 자신의 플랫폼에서 거래를 해왔고, 그가 샀던 품목에도 주목합니다. 그는 주로 전문적인 서적을 샀습니다. 가격도 비싸고 내용도 어려운 책을 주기적으로, 그것도 자주 산다는 점에서 아마존은 ‘이 사람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일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교수가 책을 구매했던 이력이 데이터가 돼 그의 신용도를 파악하는 또다른 잣대가 된 것입니다.
◇방문자가 남긴 데이터가 신용 평가 자료로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데이터가 신용의 평가 정보가 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금융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은 미래에셋캐피탈, 우리은행과 함께 온라인 소상공인을 위한 신용대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출 대상은 네이버가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마켓플레이스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해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온라인 비즈니스 소상공인’이 대상입니다.
이들 소상공인들은 2020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 대출에 있어 홀대를 받았습니다. 은행들은 점포가 없고 업력이 짧은 온라인 비즈니스 소상공인들에게 사업자 대출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신용평가 점수까지 낮다면 사업자금 대출 받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자체 개발한 대안신용평가시스템(ACSS)를 활용해 각 입점 소상공인들의 신용도를 분석했습니다. 활용된 데이터는 스마트스토어의 매출 흐름, 재구매율, 단골고객 비중, 고객 리뷰, 반품률 등의 비금융 정보 등이었습니다. 네이버가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였습니다.
덕분에 네이버파이낸셜은 무담보 신용대출을 할 수 있었고 2022년 5월 기준 대출액이 약 16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서비스 시작 약 1년만에 올린 대출 잔고입니다.
인터넷 쇼핑 사업자인 쿠팡은 지난 2022년 8월 여신금융업 등록을 마쳤습니다. 쿠팡의 금융 자회사 ‘쿠팡파이낸셜’은 쿠팡에 입점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서비스를 내줍니다. 쿠팡 입점 소상공인들의 매출 성장률과 순이익, 리뷰 등의 비금융 데이터로 입점자의 금융 리스크를 계산합니다.
◇결제데이터, 은행에서도 중요
비금융 데이터를 통한 신용평가가 기존 신용점수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은행권에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대출자를 창구에 앉아 기다리면서 신용점수에 따라 금리를 산출하던 방식에서 적극적으로 잠재 고객들을 발굴하고 최적의 금리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금융그룹 내 카드사들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KB금융그룹이나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과 같은 금융그룹은 은행을 중심으로 증권사, 카드와 보험, 캐피탈 등 다양한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은행이 중심이었지만 데이터가 중요해진 최근 들어서는 카드사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소비할 때 쓰는 거의 모든 데이터가 카드사 결제 정보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카드사 결제 정보를 토대로 각 개인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카드나 보험 상품을 추천할 수도 있습니다. 카드사 앱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금융 플랫폼이 되는 것입니다.
카드사들은 네이버나 쿠팡처럼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한 개인사업자 신용평가 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 가맹점주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에 걸맞은 신용평가를 할 수 있는 덕분입니다. 네이버나 카카오와 비교해 비금융 데이터가 한없이 부족했던 금융그룹 입장에서는 ‘몰랐던 노다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은행들, 대안평가로 연체율↓
1금융권에서 외부 업체들과의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곳은 인터넷전문은행입니다. 이들 인터넷전문은행은 중금리 대출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기에, 신용점수로 판단할 수 없는 부도 가능성 등을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예상하고 있습니다.
실제 카카오뱅크는 독자적인 대안신용평가모형 ‘카카오뱅크스코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롯데멤버스, 교보문고 등 11개 업체와 기관, 3700만개의 가명결합데이터를 활용했습니다.
제3의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는 대출 연체율이나 부실채권 비율이 케이뱅크·카카오뱅크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2022년 3분기 토스뱅크 연체율은 0.3%로 같은 시기 카카오뱅크의 0.36%, 케이뱅크의 0.67%보다 낮았습니다. 토스뱅크의 전체 여신 중 중·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이 39%로 비교적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칭찬받을 만한' 수치입니다. 이에 대해 토스뱅크 측은 자체 구축한 신용평가모형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