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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Oct 13. 2023

코로나 때 움직임을 기억하십니까

너무나 급박했던 2020~2022년 

여러분 코로나19 때를 기억하십니까? 벌써 가물가물한 게 사실이긴 하죠. 마스크 쓰는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죠. 아마 30년 전에 ‘2020 원더키디’라는 만화 영화가 있었죠. 그때 우리는 2020년에는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더 바빠졌고 더워진 지구를 걱정해야 합니다. 인구 소멸을 우려할 정도가 됐고요. 지난 2020년부터 2~3년간은 힘들게 보냈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2020년은 마스크를 사고 백신을 맞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던 때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경제는 어땠을까요? 최근 2~3년은 너무 역동적이었습니다. 최근 20년 내를 기준으로 금리가 바닥까지 갔다가 또 급속하게 올라가는 과정을 봐야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이 들썩거리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2020~2022년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변화의 폭이 컸던 때였습니다. 앞으로 100년 뒤에 쓰여질 아이들의 교과서에 ‘코로나의 시대’로 불리지 않을까요? 


2020년 5월 28일을 기억하시나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로 떨어지던 때였습니다. 정부 수립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로부터 반년 정도 흘렀던 2021년 1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데스크께서 저에게 지시 하나를 내립니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상승한다는 외신 기사가 나왔으니 알아보라는 지시였죠.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0%대에서 묶어두고 있었던 때라서 의아했습니다. ‘장기채 금리가 오른다니?’ ‘비록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뜨겁다고 하나 돈을 더 풀어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0.5% 수준도 낮지 않으니 더 낮춰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장기채 시장에서 금리가 상승했습니다. 2020년 12월 미국채 20년물 금리가 1.5%를 넘더니 두 달만에 2.2%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돈이 계속 풀리고 있던 상황에서 장기채 금리가 오른다는 게 그때는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봤을 때 0.7%포인트 정도 오르는 것은 작은 일일 수 있겠지만, 상승 폭으로 봤을 때 주목할 만 했죠. 상승 폭만 놓고 봤을 때 50%에 이르니까요. 


<미 국채 20년물 금리. 빨간색 박스 안은 저금리 상황에도 금리가 올랐던 구간. 자료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Fred, https://fred.stlouisfed.org)> 

지금 지나고나서 보니 저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을 자신이 갖고 있는 인식의 틀에 넣고 생각한 것이죠. 2020년 코로나19가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마스크에 갇혀 살며 느꼈던 답답함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후에는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 경기가 회복한다는 징후가 선행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구나.’ 


그러면서 꺼림칙하게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혹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타난 게 아닐까?’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을꺼야’라고 했던 것 같아요. 자산시장은 뜨겁다고 하나 경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 얘기는 먼 달나라 얘기인 것처럼 예견했으니까요.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제롬 파월 의장은 얘기했습니다. 


<서울경제 2021년 1월 15일>

 

약 2년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지금 봤을 때, 우리가 보는 현실을 보고 싶어한 나머지 ‘우리가 보기 싫었던 현실’을 간과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이때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선행적으로 나타난 것이죠. 경제 교과서에서 봤던 경제 이론 하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죠. ‘통화량이 늘어나면 물가는 오른다.’ 2019년까지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던 때라 ‘인플레이션이 설마 올까’ 여겼던 것이죠.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통화량이 늘면 물가는 올라갑니다. 이 물가가 올라가는 수준이 통제 수준을 넘어선다면 금리를 높이게 되는 것이죠. 장기채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것과 장차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예감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했어요. 이때도. 다만 ‘금리를 중앙은행들이 쉽사리 올릴까’ 믿지를 않았죠. 

그런데 이건 기준금리 얘기이고, 인플레이션이 유발되면 시장금리가 오르게 된다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장기채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싫어합니다. 원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니까요. 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자라도 좀더 챙겨달라’는 것이죠. 


같은 맥락에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장기채 투자 매력이 떨어집니다. 원금의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가파라지니까요. 당연히 장기채 매수를 망설이거나 보유하고 있던 것을 시장에 팝니다. 장기채 매도 물량의 증가는 장기채 가격의 하락을 불러오고, 이는 장기채 금리의 상승을 불러옵니다.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다는 준칙이 여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무슨 근거로 ‘경기 회복의 조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기업들의 장기채 발행이 늘 것이라고 본 것이죠. 경기 회복을 대비해 선행적으로 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채권 발행 규모 증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부 적자재정의 확대도 채권 시장내 채권 가격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정부 빚은 많은 경우 국채 발행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채권 발행량이 많아지면 투자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금리가 높아지게 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인플레이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2021년 후반부터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상합니다. 연방준비제도는 2022년 3월에 금리를 올렸습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해지자 더 급박하게 금리를 올립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던 장기채 투자자들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고도화된 전문가 집단이 자기 자산을 걸고 미래를 베팅하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월드컵 때 축구 승부를 예측하는 도박사들이나, 채권 시장에서 운용 자산을 걸고 경기 변화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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