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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Dec 25. 2023

일필휘지

첫 문장 쓰기가 항상 어렵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붓을 한 번 휘둘러 단숨에 써 내려간다는 뜻이다. 현대적으로 바뀐다면 일'키'휘지가 될까. 한 번 키보드에 손을 올려 두들기기 시작해 써 내려간다는 것. 펜이나 연필 잡을 일이 거의 없다 보니 키보드가 더 알맞은 것 같다. 


요새 들어 이 사자성어가 머릿속에 맴돌 때가 많다. "일필휘지라.. 한 번에 써 내려가야 하는데"라면서 첫 문장에 머물러 있곤 한다. 첫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첫 문장부터 '촥' 주의를 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늘 느끼지만 첫 문장 쓰기가 가장 어렵고 둘째 문장 쓰기가 두 번째로 힘들다. 


초년생 때 조선일보 다니던 기자선배한테 들었던 얘기가 있다. 가장 잘 쓰는 글은 무엇이라고?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두 번째 문장이 궁금해지고, 두 번째 문장을 읽었을 때 세 번째 문장이 읽고 싶어 지면 잘 쓴 글이라고 했다. 여태껏 내가 쓴 글에서 이 같은 공력의 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내가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옛적 싸이월드 일기장에 끄적일 때 '일필휘지'를 만끽하곤 했다. 단 한 번에 스쳐가는 생각을 아무런 형식과 두서없이 써댔다. '잘 써야지'라는 부담감도 없었고, 느낌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썼던 것 같다. 그저 나랑 친한 몇 사람이 읽어주고, 공감해 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나도 그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을 테니... 나는 관심 하나면 족했고, 그들은 잠깐이나마 내 생각에 공감하고 시간을 보내면 됐다. 


다시금 그때 기억, 대학생 때를 돼 올려보면, 그때는 몇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고 호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호응이 새롭게 글을 쓰는 동기부여가 됐고. 


지금은 어떤가. 15년 가까이 글로 밥 벌어먹고 왔다는 자존심이 있다. 틀린 맞춤법, 오타를 내가 쓴 글에서 발견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키보드를 눌러대는 데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더 잘 써야지 하는 부담감이 늘 머릿속을 짓누른다. 


낯 모르는 사람들의 비평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날카롭게 후벼 파듯 지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욕을 떨어뜨리는 이들이기도 하다. 


또 하나. 호기심. 세상을 얼마 살아보지 못했던 그때는 여러모로 많은 게 새로웠다. 이를 보고 관찰하고 생각해 볼 시간도 꽤 있었다. 돈은 없어도 남는 시간은 많았던 그때가 아니던가. 그립다. 


지금은 무엇을 봐도 감흥이 나지를 않는다. 구태의연하게 반복되는 하루에 매몰된 것도 있는 것 같고. '이걸 빨리 활자로 옮겨야지'라며 흥분해 무엇인가를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기가 점점 쉽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내일 나는 첫 문장을 갖고 또 씨름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칼날처럼' 팩트를 도려내 매력적으로 만들지 고민하면서. 결국 답 없는 답을 찾으면서 자책할 것 같다. 좀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한 것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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