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팟캐김 Jan 10. 2024

국회 기자들은 '낙종 리스크'를 어떻게 낮출까?

꾸미라고 들어보셨을까요? 

격언처럼 들은 말이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투자 판단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가 '예고된 리스크'는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른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블랙스완'처럼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는 위험에 투자자들은 바짝 쫄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도, 2020년 코로나위기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의 위기가 전개되면서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 나온 게 또 확률·통계다. 확률에 따라 최대한 손실을 적게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다 보니 투자업계에서는 '금융공학'이 각광을 받는 셈이다. 금융공학도 따지고 보면 확률 놀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헤지상품이나 선물·옵션도 이런 확률·통계에 따라 설계된다. 이익을 낼 가능성은 높이고 손실을 볼 확률은 줄이는 형태로 말이다. 


우리 사회에도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여러 장치를 볼 수 있다. 보험이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덕분에 미래에 있을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꾸미는 장치를 보고 '보험에 들어놓는다'라고 하지 않던가. 


국회에 들어와서 이곳 이슈를 취재하면서 흥미로운 것 하나를 발견했다.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서 각 기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보험을 드는' 형태다. 무리 지어 하나의 모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혹시 모를 리스크를 대비하는 것이다. 


정치권 취재 기자들의 리스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중 한 가지가 원하는 '워딩'을 얻지 못할 때다. 워딩이라 함은 정치인이 한 말이다. 300명 의원들이 한 말 모두가 뉴스가 될 수는 없지만 주요 당직자나 '두목급'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는 워딩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뉴스로서 힘'을 갖는다. 


이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야당 대표가 한 말이라면 대통령과 여당 대표에 대한 대응을 짐작케 한다. 향후 '정국'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정책을 짜고 실행하는 대통령, 행정부 수반들의 말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투자자들이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말에 촉각을 세우는 것처럼, 기자들도 주의 깊게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고 한다면, '그 말을 놓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을 현장에서 귀담아듣고 수집해야 하는 말진(막내) 기자들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당장은 윗 선배들한테 채근을 당할 수 있다. 반복된다면 능력을 의심받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기자들이 뭉치는 것이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모여 있으면 특정 정치인의 말을 놓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그 모임 중 어느 누군가는 들었을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이런 위험요소를 줄여간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면 '남다른 특종을 할 기회'(대박 투자)의 가능성은 낮아질지라도 쪽박을 찰 리스크는 줄여준다고 볼 수 있다. 상부상조를 하다 보면 내가 아는 부분도 일부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 아는 특종이라면 타사 기자 어느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희소한 정보일수록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남들에게 공유되는 정보는 희소가치가 어느 정도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현장 기자들은 무리 지어 다니곤 한다. 연차가 낮을수록 매체 파워가 적다고 판단되는 기자일수록 그런 경향성을 짙게 발견할 수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 면에서 이들 기자 개개인이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으니까. 


반대로 매체력이 되고 연차가 되면 개인플레이를 하는 경향성이 높아진다. 굳이 타사 기자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다. 그런 기자들은 애초에 '무리 지어 다니지 말아라'라는 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국회는 워낙에 많은 워딩이 나올 수밖에 없고,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터라 뭉치려는 기자들끼리 뭉치려는 경향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기자들끼리의 경쟁도 심하다. 방송사나 매체력이 높다고 판단되는 언론사의 기자들도 '보험 들어놓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무리에 들어가 있곤 한다. 혹여 무리에 안 들어가 있으면 본인 홀로 소외될 수 있으니까. 국회 기자들끼리는 이런 무리를 '꾸미'라고 한다. 


꾸미는 '모임'이라는 일본말 '쿠미'에서 비롯됐다. 한국 언론계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일본어이긴 한데, 보통명사처럼 '꾸미'라고 한다.  


나도 국회에 출입하게 되면서 이런 '꾸미'라는 말을 듣게 됐고 사용하게 됐다. 두어 개 들어가 있다. 말진 이라고 하는 막내 기자들은 여러 개에 들어가 있다. 


이런 꾸미는 '물먹는', 그러니까 '낙종'을 막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들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유지가 된다. 친목을 전제로 모여 같이 '낙종'을 면하는 조직이라고 할까. 서로가 서로에게 보험을 든 끈끈한 친목 조직이다. 


물론 이런 꾸미의 형태는 국회가 아니더라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기업을 출입하는 경제기자들이나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들 꾸미는 비슷한 매체에서 동고동락을 하면서 맺어진 '정'으로 이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회 내 꾸미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 모였고, 선순환적 구조를 가졌다고나 할까. 각자 맡은 바 역할이 암묵적으로 부여돼 있고, 그 안에서 정보 교류를 하면서 친목을 다진다. 이런 역할이 깨질 때 친목도 깨진다. 


선순환되는 꾸미는 어떤 형태로 돼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통신사, 종편, 일간지, 인터넷매체, 경제매체 등의 서로 다른 성격의 매체가 모여있는 꾸미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꾸미일수록 더 활발하게 운영이 된다. 


우선 통신사는 연합뉴스나 뉴시스, 뉴스원 같은 통신사를 의미한다. 통신사는 뉴스를 공급하는 '언론사 of 언론사'다. 전방위적으로 기자들이 퍼져 있다. 가장 많은 워딩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간지나 인터넷매체 등에서도 워딩을 확보하지만, 여력이 부족할 때가 많다. 인터넷매체 상당수는 2~3명이 정치부를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분야를 커버하기 힘들다. 누군가가 워딩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기사 쓰기가 힘들다. 


여기서 이해관계가 맞는다. 이들 기자들은 중요 워딩이 필요할 때 SOS를 친다. 통신사 기자들이 도움을 준다. 자신들이 확보해 놓은 워딩을 공유해 주는 것이다. 대부분은 회의 등 공식적인 자리의 워딩이다. 비공식적인 자리의 워딩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감지덕지일 수 있는 게 국회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군데에서 공식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모두 가 볼 수 없는 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 통신사 기자들이 제공해 주는 워딩은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통신사 기자들은 이렇게 도움을 주고 무엇을 얻을까? 바로 정치인과의 점심 혹은 미팅이다. 이른바 오찬이다. 기자윤리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지라시 등의 정보를 공유받는다. 이 역할을 인터넷매체나 일간지 등 기자 수가 많지 않은 매체 기자가 한다. 여러 매체가 모여서 품앗이하듯 정치인 오찬 약속을 잡고 통신사기자들과 합석해 자리를 만든다. 


아무래도 일간지 기자들은 통신사 기자들보다는 개별 사안을 놓고 깊게 취재할 때가 많다. 오랜 시간 정치인과 어울리며 교류한 이들도 많다. 워딩을 공유받는 대신의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인 네트워크 일부를 공유하는 셈이다. 


여기에 종편 등 방송사 기자가 들어가게 된다. 정치인 입장에서 봤을 때 아무래도 방송사 기자들을 더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장치다. 여전히 전통미디어, 특히 방송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이들 방송기자들도 워딩을 공유받고, 자신들의 지인네트워크를 일부 공유한다. 


지인네트워크를 공유한다는 것은 통신사 기자뿐만 아니라 일간지나 방송사 기자들에게도 이점이 크다. 친하지 않은 정치인과 점심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좀 더 폭넓게 정치인 네트워크를 키울 수 있다. 


선순환적인 구조의 꾸미는 이런 역할이 잘 돌아갈 때다. 통신사 기자들은 발 빠르게 워딩을 공유하고, 일간지 기자들과 방송사 기자들은 부지런히 오찬을 잡고. 그래야 통신사 기자들도 워딩을 공유할 이유가 생기고. 이러면서 서로의 리스크를 조금씩 덜어가는 구조를 갖게 된다. 


간혹 꾸미가 깨지거나 얼어붙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수요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이 연속되다 보니 꾸미를 이어갈 필요성이 적어진 탓이 크다. 친목이란 것도 적절한 이해관계와 함께 서로의 수요를 채워주는 '선순환적 구조'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는 얘기다. 


불화실성을 낮추는 구조의 변인이 확률과 통계라면, 인간 관계에서는 '이해 관계'가 우선된다는 얘기다. 이런 이해관계적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히 조정하면서 서로가 이득을 얻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고. 친목이란 것도 엄밀히 말하면 '서로의 이해 관계'가 바탕이 돼, 그 위에 서는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필작가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