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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미래...AI

확 바뀐 바둑계...언론계는 아마도 진행중

by 팟캐김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있다.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바뀐 바둑계의 모습을 그려낸 책인데 시사하는 점이 무척 크다.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면서도 성능적으로 우수한 AI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미리 내다본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인간 최고수의 권위는 AI의 등장으로 상당 부분 허물어졌다. '정답'이라고 하기엔 애매해도, '모범답안', 아니 인간이 둔 수보다 훨씬 승률 높은 수를 AI가 추천하는데, 굳이 프로바둑기사를 숭상하듯 추앙할 필요가 없게 됐다. 프로기사 그들조차도 AI의 수를 공부하며 암기한다.


혹자는 '기풍'이 사라졌다고 한다. 기풍은 굉장히 모호한 개념인데 초반 포석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어떤 이는 특유의 포석을 기풍이라고 읽고, 또 다른 이는 승부에 임하는 태도를 기풍이라고 한다. AI가 최적의 수를 추천하는 상황에서 굳이 '내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의미다.


작가는 '소설가'의 미래도 함께 반추하고 있었다. 인간 소설가보다 훨씬 재미있게 쓰면서 하루에도 수백 편, 수천 편의 소설을 써내려가는 AI와 과연 경쟁이 가능할까? '바둑은 예술이다'라는 신념이 AI가 내놓은 '계산 수'로 무너진 것처럼, 소설가가 갖는 권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기자라고 다를까. 어쩌면 '자기 브랜드'가 있는 스타 작가가 다수 있는 문학계와 달리, 언론업계가 더 빠르게 바뀔지 모른다. '공시'처럼 특정 경제지표에 기반한 기사는 상당 부분 AI가 쓰고 있다. 증권전문 매체로 시작했던 우리 회사도 근 20년을 중요시하게 봤던 기사가 '공시'였는데, 지금은 쓰지 않고 있다. AI와의 경쟁이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사실 공시 기사나 경제지표를 보고 쓰는 기사는 후배들을 교육시키는 중요 수단 중 하나였다. 길게 쓸 필요가 없고, 나와 있는 정보만 갖고 기사 쓰는 틀에 끼워 맞춰 넣으면 된다. 선배 기자는 기사 쓰는 방식과 어법 등을 가르친다.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후배 기자도 어느샌가 경제기사를 쓰는 감을 익히게 된다.


이런 과정은 지리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이다.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는 공시 기사를 쓰는 것보다는 좀 더 읽힐만한 꺼리를 갖고 와서 길게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다만 그 역할은 선배 기자들의 몫이기도 했다. 취재에 대한 감, 기사를 쓰는 방식에 있어 후배 기자는 선배 기자를 단번에 따라잡기 어렵다.


물론 공시 기사가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클릭 수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된다. 그 내용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투자 활동에 영향을 준다. 경제기사가 갖는 가치로 봤을 때 공시 기사는 내야 한다. 다만 단순 잡무에 가까워서 후배 기자들이 주로 이를 담당했다. 연차를 쌓아가면서 점차 이 업무 외에 다른 더 복잡한 업무를 하게 된다.


그런데 ChatGPT로 대표할 수 있는 AI의 등장으로 이 질서가 무너지는 게 눈에 보인다. 지금은 그 변화의 전초일 뿐, 앞으로는 더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언론 업계 초입에 들어선 후배나, 그곳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선배 기자나 마찬가지다.


우선 고용적으로 봤을 때, 굳이 교육이 필요한 후배 기자를 더 들일 필요성이 적어진다. 단순히 지표에 의존한 기사는 AI가 내면 된다. 단순 업무를 시키기 위해서 후배 기자들을 새롭게 뽑을 필요성은 떨어진다. 개발만 잘하면 수없이 많은 기사를 양산해낼 수 있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응용해서 양산형 콘텐츠를 내고 있다.


연차가 어린 후배들에게만 AI는 악재일까? 선배의 권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전까지는 후배들의 기사 중 틀린 부분이나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지적하는 게 선배들의 일이었다. 이는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의미도 있지만, 후배와 선배의 격차를 확인시켜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를 악용하는 선배들도 정말 수두룩하게 많았다.


그런데 문장의 정확성, 어법, 비문만 놓고 봤을 때 AI가 쓰는 문장이 더 정확하다. 후배 입장에서도 자신의 틀린 문장을 그대로 선배한테 데스킹을 맡기면서 혼나는 것보다, AI를 통해 한 번 더 정렬하는 게 낫다. 그게 본인의 성장에 어떤 악영향을 주더라도, 일단 위기를 모면하는 데 효용성이 높다.


실제 이런 상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전에 문장을 엉망으로 쓰던 후배의 문장력이 갑자기 나아진 게 한 예다. 단순하게 ChatGPT를 통해 오타와 비문을 잡았을 수 있고, 좀 더 올바른 문장을 ChatGPT를 통해 공부했을 수도 있다. ChatGPT는 바둑 선생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질문을 눈치 볼 것 없이 다 받아준다. '문장력'이라는 선후배 간의 격차가 AI로 상당 부분 줄어든다.


기자만 그럴까. 올해와 지난해를 비교해봤을 때, 주관적이긴 해도 수업시간에 나오는 질문이 줄었다. 교수한테 수업 시간에 직접 질문하는 학생의 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얘기다.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 때 '인공지능 입문' 수업을 들었는데, 당시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이번 학기처럼 질문이 없는 수업은 처음이었다."


수줍은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질문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미 ChatGPT를 통한 질문과 답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고 본다. 같이 조별 모임을 했던 다른 원우도 본인 나름대로 정교하게 ChatGPT에 물어보고 힌트를 얻거나 답을 받았다. 그 사람은 이를 두고 "ChatGPT를 갈구면 된다"고 표현했다.


그 부분에 있어 나도 인정한다. 시간이 부족할 뿐이지,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ChatGPT를 켜놓고 물어보곤 했다. 언어뿐만 아니라 수학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어보는 족족 소상히 알려주는 것을 보면서 나름의 만족감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왔던 '전수'라는 개념이 AI의 등장으로 뿌리째 흔들린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둑에 있어 '전수'는 사제 관계를 통해 독점적이면서도 특권적으로 윗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내려갔다. 언론계에서도 도제 관계로 후배를 양성했다. 선생님, 선배들이 갖는 권위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권위 덕에 '앞선 자'들은 생계활동을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는 교수나 선생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AI에 따른 변화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어떤 파급을 가져올지 감히 예상하기 힘들 정도다. 미리 대비하는 것은 어떤 게 있을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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