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선생님으로서 최악인 이유
가르치는 재능과 연구하는 재능은 분명 다르다. 무슨 말이냐,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경험적이지만 예전 학부를 다닐 때도 학문적 교양이 높은 교수님이라고 해서 명강의를 선 보였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무명의 강사들이 수업만큼은 활발하게 더 잘 진행했던 것 같다.
가장 큰 요인은 두 부류 간 '절박함'의 유무인 것 같다. 정년이 보장되고 학문적 명성까지 높은 노교수가 어린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강의를 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강사는 그 수업이 본인에게는 '소중한 시간'일 수 있다.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요인을 꼽는다면 학문적 격차라고 할까. 당연히 유명한 교수가 강사보다 학문적 성과나 업적은 더 크다고 본다. 그 교수 입장에서 봤을 때 1~2학년 학부생한테 가르치는 내용은 따분할 것이다. 기본적인 내용일 테니까. 어쩌면 '그것도 몰라'라고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사라면 다를 수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 또한 그들과 비슷했을 테니까. 교수와의 학문적 격차가 큰 만큼 강사와 학생들 간의 간극도 작을 것이라고 본다. 그들의 입장에 서다 보니, 이해하기 더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1학년 같은 입문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명성이 높은 교수보다 무명의 강사가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대학에서도 이런 격차를 감안해 수업을 배정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히든 포텐셜'(p.168~169, 애덤 그랜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가 입문자에게는 최악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가 초보자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2가지를 봤다.
첫 번째. 그들은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1학년 학부생이나 야간대학원 직장인에게 '수요와 공급' 곡선을 설명하는 것은 교수들 입장에서 따분할 수 있다. 그 분야에서 닳고 닳은 전문가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기초지식이다. 초보자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기억을 못 한다는 얘기다. 이를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이 책에 언급된 인지과학자 시언 바일락은 "여러분이 하는 일에 더 숙달될수록 이해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여러분의 역량은 점점 더 악화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신입·수습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데 있어 '잘못됐다'라고는 말을 하지만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른바 '감'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익힌 것인데, 말로 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친구들은 신입과 수습 등 서투른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돌이켜 보면 그들 또한 신입과 수습일 때는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이 괜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게 아니다.
하나의 예로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사례를 들었다. 살아생전 아인슈타인의 강의를 들었다면 '가문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실제 수강생들은 다른 입장이었나 보다. 물리학의 떠오르는 샛별이던 시절 아인슈타인은 너무 못 가르쳐 쫓겨날 뻔했다. 천재 입장에서는 초보자들에게 전하는 지식이 따분했고, 초보자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너무 대충 가르친다 식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전문지식 상당 부분이 암묵적이라는 점이다. 명시적이지 않고 묵시적이다. 그래서 경험을 쌓으라는 말이 나온다. 수많은 연습과 훈련으로 터득하게 된 것으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 길잡이는 우리의 길을 찾기보다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교습 방법은 입문자라면 초보자에게, 초보자라면 숙달자에게 단계적으로 배우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혹은 학문적 깊이와 상관없이 수업에 특화된 사람들을 선생님으로 두는 게 났다.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만약 골프채를 처음 잡는 사람이라면 비싼 돈 들여 프로 강사한테 배우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어설픈 초보자에게 배워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입문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게 초보 자니까. 어느 정도 실력이 숙달된 이후에는 보다 나은 실력의 강사를 찾아가는 게 자기 발전에는 더 도움이 되겠지만...
조금 더 추가하면 입문자가 초보자 혹은 중급자에게 배우는 것은 입문자뿐만 아니라 초보자나 중급자들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체계화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가 공부할 때도, 나보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한테 알려주다 보면서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투르지만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내 지식'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조금 더 응용하면 '자기가 배운 지식'을 남한테 친절하게 '글'로 설명하는 것이다. 블로그나 브런치 등이다. 좀 더 나아가면 유튜브. 이런 플랫폼에 '방구석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것은 '그들의 잘난 척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참 좋은 세상임에 틀림없다. 써서 올리면 '검색'이라는 과정을 통해 내 글을 널리 알릴 수도 있고, 강의란 것도 유튜브를 통해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