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은 꽤 높아짐
챗GPT가 2022년 말에 처음 소개됐을 때 세계인을 매료시켰던 기능 중 하나가 '글쓰기'다. 일반적인 글쓰기는 물론 요약, 독후감, 비평은 물론 인간의 창의력의 영역으로 느껴지던 '소설'과 '시'도 쓸 수 있다. 오히려 챗GPT가 쓴 소설이 웬만한 인간 아마추어 작가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글을 쓰고 최종 퇴고 작업을 챗GPT에 맡겼는데 그것이 '어떤 문체를 원하는지' 물어왔다. '풍자적'으로 쓰거나 혹은 '생동감 있게' 써준다는 여러 제안을 해왔다. 그때 썼던 글이 윤석열의 계엄과 관련된 글이었는데 챗GPT가 하자는 대로 맡겨보았다.
소설과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 글은 즉시 변환됐다. 그러고 나서 읽어 본 그 글의 수준은 '놀라는 정도’'였다. 주로 평이한 수준의 논증적인 글을 써왔던 터라 '소설과 같은' 형식의 풍자적인 글은 '도전의 영역'이었다. 이런 류의 글을 나보다 더 잘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주로 많이 써왔던 '기사'는 어떨까. 간단한 연설이나 논평 등은 손쉽게 기사로 옮겨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량을 지정하고 주제를 어떤 것으로 할지 세분화하면 더 원하는 형태의 글로 나왔다. 이른바 '프롬프트'의 기술이다. 막말로 경제지표를 기반으로 해설 기사를 쓰거나 양식과 형태가 거의 변함이 없는 날씨 기사를 쓴다면 챗GPT가 속도와 정확성 면에서 인간을 능가할 정도로 보였다. 단순히 공시를 쓴다거나 지표만 놓고 기사를 쓰는 기자는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오타 없이 무제한으로 찍어내듯 기사와 글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다.
-직접 써본 후기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쓰는 기능은 ‘챗GPT에 오타와 비문을 봐달라’는 기능이다. 기존 편집기나 ‘한글’이나 ‘MS워드’에서도 오타가 난 단어나 문법에 어긋난 문장을 잡아내는 기능이 있지만, 챗GPT의 활용도와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한글과 MS워드에서는 빨간 밑줄이 그어진 문장과 단어를 찾아가면서 '올바른 표기법'을 결정해야 하는 과정이 있지만 챗GPT에서는 그게 한 번에 해결된다. 여기에 '무엇을 고쳤는지 알려줘'라는 피드백을 구하면 내가 잘못 쓴 오타나 비문 등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 바둑기사가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면서 본인의 바둑 스킬을 높여가듯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챗GPT와의 대화를 통해 글 쓰는 능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이런 오탈자를 잡고 비문을 찾는 데 들이는 시간이 적지 않다. 글을 수정해 가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작가'와 같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분초를 다투면서 신속하게 기사를 내야 하는 기자에게는 '번거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이런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주면서 정확도까지 올려주니 생산성’ 면에서 이점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앞서 언급했던 문체 변경 등의 기능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 굉장히 평이하게 써 놓은 글에 생동감을 넣는 식이다. 막연하게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줘'라는 메시지를 남겨 놓아도 챗GPT가 글을 재작성해준다. 글 쓰는 데 자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이점 중 하나는 직접 챗GPT에 글을 써보게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연설문 한 꼭지를 갖고 와서 ‘기사를 써줘’ 하는 것 외에 아예 새로운 글을 써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양산하면서 블로그를 키워나갈 수도 있다.
실제 본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챗GPT와 함께 글을 써가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교양으로 읽는 AI’라는 코너를 블로그에 만들고 써 내려가고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챗GPT가 새롭게 재구성해서 쓴 내용이다.
물론 기반이 되는 내용은 일전에 내가 쓴 챗GPT 관련 책이고, 그 본문 내용을 재사용한다는 생각에 챗GPT에 입력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윤색의 수준을 넘어 재창조되고 있다. 블로그용 글이다 보니 평소와 달리 가독성이 높이고 모바일에 보기 편할 정도로 글을 만들어서 주고 있다.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챗GPT와의 대화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모르거나 어려운 내용도 챗GPT에게 쉽게 풀어써달라고 요구를 하면서 쓰고 있다. 덕분에 하루에 한 개 블로그용 글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여러 개의 블로그 글을 쓸 수 있었다. '양산형 블로그'가 이래서 쉽게 나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유명 작가에게는 각자의 문하생이 있고, 그 문하생이 개요를 짠다거나 퇴고를 한다고 하던데, 그런 문하생 혹은 비서가 내 옆에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최종 감독자로서 마지막 확인만 하면 된다.
-단점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챗GPT가 생산성을 높여주는 게 사실이나 주도권은 내가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챗GPT가 생산한 생성물을 믿고 넘기면 안 된다는 얘기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챗GPT에는 허위 정보도 많이 올라오고, 아닌데도 ‘맞는 척‘ 천연덕스럽게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또 글자 수가 수 천자에 이르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내용을 재단하는 일도 발생한다. 한 예로 5000자를 넘어 만들어 놓은 글인데, '오타와 비문을 봐달라'라고 했는데 제멋대로 내용까지 줄인 경우다. 맥락에 따라 없앨 수도 있는데 한글문서 기준 A4용지 3장 분량이 1장 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보기도 했다. 어이가 없는 경우다.
틀린 정보를 맞는 것처럼 기재할 때도 적지 않다. 지난 4.2 재보궐 선거 때 결과 기사를 급하게 쓰던 중이었다. 이들 선거는 시장이나 구청장을 뽑고 때로는 국회의원 등을 다시 뽑는다. 구의원이나 시의원 등도 공석이 생기면 이때 쓴다. 문제는 서울 여의도 국회 출입기자 입장에서 이들의 정보를 다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검색을 해서 이들의 정보를 일일이 취합하는 수밖에 없다. 이 시간을 아끼려고 챗GPT에 해당 인물에 대한 설명과 프로필 기사를 요청했다.
이후 이것들의 결과물을 보는 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충 들었던 풍설에 따르면 A의원은 민주당에 있다가 조국혁신당에 옮겨갔는데 챗GPT는 천연덕스럽게 '조국혁신당 창당 멤버'라고 써 놓았다. B구청장은 도저히 그런 이력이 나올 수 없는데 챗GPT는 사실인 것인 양 기사로 써서 보여줬다.
결국 검색을 통해 다른 기사에 나온 소개 글을 보고 이들 인물들의 소개, 정보를 기사로 쓰는 수밖에 없었다. 챗GPT를 보고 단순하게 썼다가는 허위정보를 기사에 실을 수 있다.
이 얘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적어도 챗GPT가 내놓는 정보에 대해 진위를 판별하고 때로는 의심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이 사용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픽션이 아니라 '사실' 그러니까 ‘팩트’를 다뤄야 하는 글에서는 챗GPT가 내놓는 글에 대해 자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사에도 마찬가지다. CEO라고 한다면 그 주도권과 최종 결정권은 내가 쥐고 있어야지 비서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럴 때도 많았다. 챗GPT가 자기 마음대로 내용을 넣고 빼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AI가 학습한 대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내용을 없애고 줄이고 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마냥 넋 놓고 있다 보면 글이 완전히 바뀌어 있을 수 있다. 그 책임은 오로시 글쓴이가 지게 된다.
분량에 대한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글은 A4용지 한 장 이내에서 마무리되겠지만 개중에는 3~4장 많게는 10장까지 가는 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챗GPT가 오류를 내거나 제대로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의 한계를 넘어서면 제멋대로 양을 줄이기도 한다.
이럴 때는 3000~4000자 분량으로 잘라서 요청을 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 긴 글‘에 있어서는 챗GPT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는 점이다. 더 고급형을 쓰거나 업데이트되면 개선되겠지만, 아직까지는 ‘긴 글’ 처리에 대한 신뢰성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마지막은 ’ 생각하는 힘‘의 약화다. 챗GPT가 개요를 잡아주고, 문형을 바꿔주는 등 생산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런 부분 하나하나가 ‘생각하는 힘‘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일의 주도권‘이란 내가 그 일을 해본 경험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경험의 빈도가 줄다 보면 일이든 업무든 주도성을 가져가기 힘들다. 자기 발전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직장 내 업무에서 챗GPT를 자신 있게 쓰는 이들을 보면 중간관리자 이상이 적지 않다고 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층이나 사회초년생들이 챗GPT를 더 많이 쓸 것 같은데 40~50대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이들 관리자급은 아무래도 업무의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고, 어떻게 업무를 분담해 시켜야 하는지 효율적인지 잘 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챗GPT를 내 사무보조나 비서로 생각한다면 이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결론
챗GPT에 대한 생각과 마인드 세팅이 우선 중요하다. 우선 챗GPT는 계산기가 숫자 계산을 해 주듯 딱딱 맞는 정보만 골라주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틀린 정보를 곧잘 가져다주고 때로는 ’'이게 속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 '비서', 때로는 '튜터’'로 생각하면 맞지 않을까.
보조와 비서, 튜터 모두 내가 내 돈을 들여 고용해서 날 도와주는 이들이다. 내 발전을 돕고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된다. 챗GPT가 없던 세상에서는 이런 도움 주는 이들을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해야 했고, 일부 특수한 계층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AI가 발전하면서 이런 '인간 보조'의 역할을 싼값에 시킬 수 있게 됐다. 작가든 기자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게 싼 가격으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됐고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
비단 '보조적인 역할' 뿐이랴. 챗GPT는 내 개인과외 선생도 된다. 그 두꺼운 경제수학 책을 읽으며 개념이 어려울 때는 챗GPT에 물어봤다. 수식으로 표현해야 할 때는 아예 화면캡처나 스캔으로 만든 이미지를 챗GPT에 입력했다. 이해가 될 때까지 물어보곤 했다.
어학에 있어서도 챗GPT는 정말 획기적인 수준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화를 하면서 올바른 문장으로 교정받을 수 있고, 작문을 한 글의 올바른 표현을 지도받을 수 있다. '과외선생' 하나 두고 공부를 하는 느낌이다. 갓생러를 꿈꾸면서 자기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챗GPT가 정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주면서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단,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필요하다면 교차검증을 하면서 챗GPT나 다른 생성형 AI를 고도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