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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by 팟캐김

기자직군은 힘들다. 마감에 쫓겨야 하고 비판에 시달리곤 한다. 글을 읽는 독자부터 데스크는 물론 다른 기자들까지 평가를 한다. 하루하루가 늘 긴장과 평가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장점을 찾는다면 이걸 들을 수 있다. ‘사람들’ 특히 우리 사회 이슈를 만들어가는 중심인물 가까이 근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부 기자들이라면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을, 부처 출입기자라면 장관과 국장 등 고위 공무원들이다. 산업부 기자들도 ‘자주는 아니라’고 해도 CEO들을 곁에서 본다. 나 또한 ICT 쪽을 출입하면서 ‘도전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열정을 봤다. 반의 반이나마 그들의 철학을 들으면서 따라 하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본인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본인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실천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의외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영향을 받는다. 누구를 만나는가, 누구와 일하는가가 그래서 중요하다. 최고의 인재들과 같이 일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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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그를 만난 것은 2025년 새해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행운과 같았다. 90까지 산다면 인생의 반환점을 돈 것이고 나이 30부터 60까지 월급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한다면 전환점이 되는 해가 바로 2025년이었다.


사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특유의 까칠함 때문이다. '정치인이란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가는 한소리 듣기 십상이었다. 이런 그는 누굴까? 바로 지난 21대 국회 원내 대변인을 맡았던 홍성국 전 의원이었다. 되도록 기자들이랑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타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기자들을 다그칠 때가 많았다. 직선적으로 ‘그게 질문이냐’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왜일까? 직업정치인이 아니라 CEO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사장 출신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해 민주당 내 경제 정책 입안 등을 맡았다. 경제전문가로 영입되어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케이스다. 특이한 것은 비례가 아니라 지역구(세종갑)에서 당선됐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2023년 12월 불출마 선언을 했다. 경제인으로서 경제학자로서 남은 커리어를 보내고 싶다고 피력했다. 정쟁에 휘말렸던 후진 정치를 비판했다.


(싫은 사람에게는 선을 긋는 그의 성정을 놓고 봤을 때, ‘융통성 있게 두루두루’ 지내야 하는 정치인의 삶이 안 맞았을 수도 있다. 이런 면을 따져봤을 때 공천심사에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소개가 장황하게 좀 길었는데, 지난 1월 중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울 중심가에 개인사무실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이 퍽 부러웠다. ‘나도 나이 60이 넘어 저런 입지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였지만 1시간 30분여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국회의원 신분에서 벗어난 그도 날 부담 없이 대해줬고, ‘국회의원은 이래야 한다’라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나도 ‘인생선배’로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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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나에게 꽂힌 말은 두 개였다. ‘정치부보다는 경제 쪽에서 본인의 전문성을 키워라.’ 다른 하나는 ‘지금 정치부에 있으면 (좀 더 부지런을 떨어서) 책 한 권 내야 하지 않겠나. 책을 내고 안 내고는 너무나 다르다.’


생각해 보니 그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책을 내며 부지런히 활동했다. 그의 책이 그의 레퍼런스가 됐고 국회의원에 이르게 했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나서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책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역사적인 순간의 현장에 있구나.’ 계엄과 탄핵이라는 대한민국 6공화국 초유의 시점을 ‘정치부 기자’로서 지나고 있는데….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책을 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출판사는 나중에 고르거나 자가출판을 하면 또 되지 않던가. 온라인으로 책을 낼 수 있는 서비스도 알아뒀던 터라, 내 원고를 출판사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가능해 보였다. 내 부지런만 따라준다면…


또 다른 하나는 ‘그의 독서법’이다. 일전에 그를 만났을 때도 감명받았던 부분인데,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기록을 남긴다는 점이었다. 사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나 몇 권 읽었다’ 자랑을 하기 위한 목적인지, 그냥 시간 때우기인지, 혹은 ‘평소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본다’라는 죄책감 때문인지, (목적이) 불분명한 독서를 하곤 한다.


양에 집착하는 독서법은, 책을 읽고 나서도 나중에 활용을 잘하지 못한다.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터라 인용을 한다거나 발췌를 할 때 품이 꽤 들게 된다. 결국 검색엔진을 활용하게 되고 인터넷상에 떠도는 ‘출처 모르는’ 정보에 의존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읽는 책 중 일부분을 기록하고 남겼다. 이유는 ‘나중에 책을 쓸 때’ 레퍼런스로 삼고 혹은 인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책은 내용이 풍성하다. 20년 넘게 해온 독서와 방대한 지식이 DB화 되어 쌓인 덕분일 것이다.


이후 설 연휴 동안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탄핵과 계엄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다는 ‘나의 이점’을 고려해 책을 쓰자는 것이었다. 현장의 목격자라는 점만으로도 나중에 훌륭한 자료가 될 것으로 봤다.


다만 출판사와 계약을 하지 않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의지박약으로) 중단할 수 있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나도 나의 의지를 좀처럼 잘 믿지 못한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브런치에 연재물을 만들었다. 제목은 가제로 몇 개 짓고 매주마다 낼 수 있도록 공개적인 약속을 한 것. 그래서 만든 게 ‘계엄, 탄핵, 그리고 목격자들’이다. 계엄이 있었던 12월 3일부터 조기대선 당선자가 나오는 5~6월까지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운이 좋으면 책이 되고, 그렇지 않아도 ‘나만의 기록물’로 간직할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이와 함께 (정치부를 나간 뒤 있을) 경제기자로서의 입지를 위해 블로그를 다시 살리기로 했다. 때마침 네이버가 포스트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네이버에서 포스트와 블로그 글을 통합해 주면서 경제블로그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이 블로그는 대학원 수업 때 배운 내용 등을 그때그때 쓰면서 운영할 생각이다. 도메인도 샀다. (큰 욕심은 부리지 말자)


연재 브런치 주소 : https://brunch.co.kr/brunchbook/assembly1

경제 블로그 주소 : www.moneyon.kr


만약 이들 프로젝트가 몇 달 뒤 ‘성공적이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나는 ‘그의 조언 덕분’이라고 할 것이다. 연초 정말 자극이 되는 만남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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