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한덕수·김문수 단일화 파동을 혹독하게 겪고 있는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50% 선을 넘었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 지지자 사이에서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나왔다. ‘이제는 거의 끝났다’라는 분위기마저 감지될 정도다. 인수위가 없다는 것을 고려해 서둘러 새 정부 조직에 대한 안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얘기가 암암리에 나왔다. 장관, 총리 등에 대한 하마평이 소문처럼 돌았다.
이 얘기는 어느덧 대선 이후 민주당 조직에 대한 윤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재명 다음에는 누가 당대표를 할 것이며, 누가 욕심이 있고, 누가 지지를 받을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겉으로는 쉬쉬하면서 별다른 말을 안 했으나 속으로는 논공행상에 대한 논의가 조용히 진행됐다.
이런 얘기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대선 패배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정치인이라고 하면 선거에서 이기고 싶어 할 텐데 무슨 얘기일까?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가 워낙에 큰 상태에서 ‘졋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에서 만족하고 그 이후 ‘당권’에 더 목적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당권은 ‘당내 권력’을 의미하는데 결국 당대표를 말한다. 의원들에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못된다면 당권이라도 잡아서 그다음 기회를 노려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허나 정국은 민주당이 원하는 만큼 만만하게 흐르지 않았다. 보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결집이 확인되고 있어서다. ‘우리 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상대편이 더 싫기 때문에 (우리 편을) 찍는다’겠다는 정서가 보수 지지자들의 정서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영남지방에서 특히 이 정서가 우세했다.
몇몇 여론조사 이를 뒷받침했다. ‘다 잡은 승리’처럼 보인 듯해도 민주당이 결코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부분이다. 대선 2주 정도 앞두고 나온 5월 21일 여론조사가 정국을 또 요동치게 만들었다.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20일 하루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이재명 후보 46%, 김문수 후보 41%였다.
이 조사는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추출해 자동응답방식(ARS)으로 진행했고 응답률도 7.7% 정도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조사 결과’는 아니라고 할 만했다. 이 후보와 김 후보 간 격차가 오차범위(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에 ±3.1% 포인트) 이내로 들어왔다는 점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더구나 KOPRA는 지난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선을 넘겼다고 처음 발표했던 조사업체였다. 그 시점에는 비웃음을 받았지만,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지지자 결집’이 현실이 됐다.
뒤이어 한국갤럽과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20% 포인트나 차이가 나던 게 10% 초입대로 줄었다. 공신력 있다고 평가받는 조사에서도 김문수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눈에 띄니 민주당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적으로 ‘말조심령’이 떨어졌다. 혹시라도 오만하게 비쳐 보수층 결집을 초래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허나 현실은 반대였다. 민주당은 사법부를 압박하며 ‘힘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재명 대세론 속에 굳이 판사 한명을 범죄인처럼 욕보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들이 유리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사법부를 대하는 방식의 온도차가 컸다.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 독립’이라는 원칙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민의힘도 탄핵정국 속에서 헌법재판소를 공격했고 ‘언어폭력’에 가까운 언사를 보였다. 사법부 독립을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다를 게 없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정서는 다를 수 있다. 국민들 보기에 이번 조기대선의 승자는 민주당으로 보이는데, 그 민주당이 윤석열 재판 담당 판사인 지귀연 판사를 압박하는 모습은 ‘가진 자의 위협’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만약 지 판사가 술 접대를 받았다는 결정적인 장면이 찍었다면 여론은 민주당에 더 유리하게 움직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게 없었다.
우리 국민들은 ‘핍박받는 약자’를 더 동정한다는 점을 민주당 사람들은 유념했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마당에 누가 봐도 민주당은 차기권력 집단이다. 오만함을 넘어 ‘핍박하는 강자’의 모습을 보인다면 결코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각 정당이 일부러 사법부를 흔든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치인이 된 이상 3권 분립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근간인지 이들도 잘 알고 있다. ‘all or nothing’ 식의 선거 국면에서 조금이라도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견제구를 던진다고 보면 될까. 옆에서 지켜보면 의도적으로 흠짓을 낸다기보다는 그들에 대한 원망이 더 큰 듯하다. ‘왜 우리한테만 불리하냐’ 식이다. 축구나 야구에서도 심판에 대해 선수와 감독이 항의하는 것은 흔하지 않던가.
정치판에서는 사법부 이전에 언론이 심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는 언론이 만들어낸 어젠다를 여론이 심판하는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언론이 고발성 보도를 하고 여론이 분노하면, 정치인들의 몸이 달아오르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각 정당에서는 언론에 대한 원망도 사법부 못지않게, 아니 더 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때는 이들에게서 피해의식마저 느껴진다. 이런 경향성은 민주당 쪽이 더 강해 보인다. 언론이 사회 보수·기득권층을 대변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느정도 틀린 말도 아니다. 수십년을 공생하면서 자라왔으니까.
물론 민주당 등 진보 계열의 편에 선듯한 매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겨레·경향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내부는 물론 지지자들도 한겨레나 경향에 대해 서운해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정적일 때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이유가 크다. 이럴 때는 그쪽 기자들도 서운할 수밖에 없다. ‘워치독’에 대한 역할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못 참는다’라는 점 때문이다.
정치적 명분이라는 게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만큼’, ‘나에게도 적용한다’라는 가정이 깔려 있어야 하는데, 늘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잃었던 것도 민주당 정치인들이 보인 이중적 태도가 컸다. 이를 흘러가는 용어로 ‘내로남불’이라고 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실제 모 민주당 정치인은 22대 국회에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데, 본인에게 향하는 비판을 참지 못한다. 기자들에 대한 수많은 고소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다. 의원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목격된다. 기자들을 경멸하고 때로는 공격하기까지 하는데, 그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미디어 업계의 변화가 크다고 본다. 대체제의 출현이다. 2010년대 이전까지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싣기 위해서는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2010년대 이후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등장했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대중에 전달하기 쉬워졌다. 정확히는, 기존 언론매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정견을 밝힐 수 있게 됐다.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으로 SNS를 활용하는 정치인이고, 이재명 후보도 SNS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으로 지지 기반을 넓혔다. 기존 매체 중심의 미디어 환경이었다면 이 후보가 이렇게까지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2020년대 이후부터는 유튜브가 중심이 됐다. 정치인들 각자가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유튜브는 100만명을 넘겼다. 다양한 유권자가 아닌 편향성을 가진 지지자들이 다수 모였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큰 위력이 된다.
게다가 다양한 정치 유튜브 채널이 나왔다. 굳이 본인의 인터뷰를 기존 매체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됐다. 실제 주요 정치인들을 보면 일반 매체 인터뷰보다 자신들에게 편향적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언론 기자들은 타사가 아닌 유튜브와도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균형 잡힌 시각’이란 말은 이루기 어려운 단어가 됐다. 정치권에 여러 관점과 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애초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도 ‘자기편’을 찾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