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이슈, 이낙연을 덮다

by 팟캐김

정치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유권자? 선거철 공천을 받을 때의 당대표? 혹은 검찰과 같은 사법기관?


짧지만 정치인들을 지근거리에서 봐왔던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악플도 관심의 표현이다’며 스스로들 마음의 위로를 한다. 방송 매체에 나와 엉뚱하고, 때로는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는 말을 하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 관심을 얻기 위한 데 있다.


이런 ‘잊혀지는 것’의 결정적 변수는 선거에서 떨어지는 낙선이다. 선거에서 진다는 것은 한 순간에 ‘보통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어쩌면 그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 당장은 생계 유지를 해야하고,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아야 하니까. 정상에서 떨어지는 느낌만큼은 절망적일 것이다.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누군가는 몇 달, 또 누군가는 몇 년이 지나도 회복하지 못하곤 한다.


정치인의 ‘잊혀지는 두려움’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과거에 했던 자기 말을 바꾸고 때로는 당적까지 옮겨가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사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다. 2025년 3월 그를 인터뷰하게 됐는데 회사에서도 이 상임고문이 대선 주자급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인터뷰 장소와 카메라 배치 등에 상당한 예우를 했다. 인터뷰어는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였고, 인터뷰 장소도 일반적인 세트장이 아닌 강당과 같은 곳이었다. 그날 카메라 녹화를 담당해준 PD도 이 상임고문에 집중할 수 있게 포커스를 맞춰줬다.


그날 이낙연 상임고문은 여전히 우리 사회 정치 엘리트로서 꼿꼿한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나 대형 정치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품격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위상만큼은 분명 달랐다. 꼭대기가 높았던 만큼 골도 깊다고 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이자 1등 대선주자, 여당 당대표까지 했던 그의 과거 지위를 생각해보면 웬지모를 침울함마저 느껴졌다.


인터뷰에 앞서 회사에서 했던 그의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그때가 2021년 1월이었다. 당시 그는 21대 국회 원내 1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 후보였다. 이때 첨부된 기사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에서는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아니 국회라는 정글 속에서 가장 위용이 드높은 수사자 같았다. 차기 권력으로 막강한 유력 대선 후보이기도 했다.


이후 그의 하락세는 완연해졌다. 결정적인 것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뒤 졌다는 점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졌다는 것은 당내 기반의 소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인부터가 대선후보의 유세를 도와야 하고 그 와중에 ‘자신들의 사람’도 떠나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상당한 ‘자기부인’을 하면서 ‘인지부조화’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김대중의 사람’이자 당내 주류로 20년 가까이 경력을 이어왔을텐데 비주류 후보에게 지고 그를 도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겼다면 또 모를까, 이재명 당시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졌다. 경선 과정에서 그(이재명)에게 꽂힌 ‘대장동 의혹’ 칼이 컸다. 선거 패배 후 뒤따르는 책임론에서 그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극명하게 갈렸다. 이재명 후보는 당대표로서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원외인이 된 이낙연 고문은 그렇게 잊혀져갔다. 그를 따랐던 사람들이 떠나간 것도 물론이었다. 이른바 ‘친낙’(친 이낙연)계로 불렸던 의원들 대부분, 다시 말하면 이낙연의 경선캠프에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 ‘친명’(친 이재명)으로 갈아탔다. 비명 혹은 반명 행보가 명확했던 이들마저 2024년 총선을 거치며 사라졌다. 공천 탈락 혹은 낙선 등을 통해서였다.


당내에서 더 이상의 역할을 찾을 수 없다고 여긴 이 상임고문은 ‘새로운미래’를 시작했다. 형태는 이낙연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기존 당원들이 먼저 플랫폼을 만들고, 이후 이 상임고문이 합류하는 방식이었다. 비명계 플랫폼을 지향했고, 이낙연과의 의리를 중요시했던 몇몇 인사들이 들어왔지만 결국 실패했다. 어부지리로 지역구 의석 하나를 얻은 것 외에는 전패였다. 비례대표 입성은 커녕 이낙연 본인마저도 호남의 심장 광주에서 큰 격차로 낙선했다. 대선 주자 1위였던 이낙연의 모습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과거의 화양연화 같았다.


2024년 하반기 새로운미래는 ‘새미래민주당’으로 개칭했다. 새미래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면서도 반(反)이재명 포지션을 명확히 했다. 대선에 있어서도 이낙연 상임고문을 강력한 후보로 밀었다.


그러나 여러 여건상 이 상임고문은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자금이 부족했고, 전국 조직도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군소정당 후보라고 해도 최소 50~60억 원 이상 들어가고, 큰 정당은 500억 원까지 쓰는데, 새미래민주당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상임고문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런 그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때는 대선 일주일을 남겨둔 때였다. 그 전부터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가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는 등 ‘반이재명’을 기치로 서로 간의 교감이 있었다.


그러던 5월 27일 김문수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른바 ‘윤석열 세력’과 손을 잡은 셈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하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까지 한 정치 거목의 이탈적 제휴는 충격적이었다. 당장은 민주당 인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대중재단에서도 사실상 퇴출됐다. 당분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인사들과의 단절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으니, 정치인 이낙연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또 5년 뒤 그의 선택이 재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판단하기는 섣불러 보였다.


이낙연 상임고문의 노선 변경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또 다른 초유의 충격이 왔다. 계엄과 탄핵 정국을 겪어왔던 기자들이라 ‘초유의 일’에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매번 새롭고 힘겨웠다. 수많은 논란과 의견, 그에 따른 해설 등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낙연-김문수 연대가 있은 지 채 하루도 안 된 5월 27일 저녁,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일이 발생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던진 나름의 승부수였다.


이재명-김문수·이준석 네거티브 대전이 벌어지고, 이마저도 질리기 시작할 때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갑자기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그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어떤 사람이 여성의 성기에 젓가락을 꽂고 싶다고 하면 여성 혐오에 해당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후 이재명 후보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뜬금없이 나온 질문도 이상했지만, 그 표현 자체도 지상파 방송 TV 토론에 쓰기에 부적합했다.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할 정도였다.


이는 이재명 후보의 장남이 2021년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성한 글로 추정되는 저속한 댓글(‘요도에 젓가락을 꽂고 싶다’)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면서 이재명 후보 등 진보 진영의 도덕성을 비판하려는 의도였다. 이른바 내로남불,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 신장을 주장하면서 그 자식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다만 그 댓글에서 이재명 후보의 장남은 남성 성기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이준석 후보의 발언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개 발언 몇 가지가 허위사실 유포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받았던 이재명 후보 측이 추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준석 후보의 이 발언을 놓고 ‘30년까지 따라다닐 실언’이라고 비판했고, 여성단체 등에서 ‘여성 혐오 표현 재확산’이라며 이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과 진보당 등은 국회에 이준석 후보에 대한 징계안을 발의했다. 대선이 끝난 후 이준석 후보가 감당해야 할 뒷감당의 후폭풍이 커질 것이라는 대목이었다.


정치적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이준석 후보의 막판 표심에 영향을 미칠 변수라는 의미였다. 지지자 이탈 예상이 나왔다.


듣기로는 이준석 후보 측에서도 이 발언을 실제 사용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 총선에서 상대 후보 자녀들의 증여 문제 등을 놓고 효과를 봤던지라, 이번에도 상대 후보(이재명)의 문제를 거론한다면 효과를 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남(이재명)한테 ‘독’이 됐지만, 자기(이준석)한테도 ‘독’이 된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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