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이 왔다

by 팟캐김

2022년 3월 10일 20대 대선이 끝났던 때였다. 전날까지 ‘피날레’ 유세로 시끄러웠던 여의도 아침 거리는 스산할 만큼 조용했다. 대형 스피커가 달린 용달차도 한켠에서 멈춘 채 방치됐다. 당사 앞은 버려진 홍보지 정도만 나부꼈다. 승부가 끝난 뒤의 풍경은 무서우리 만큼 적적했다. 오래된 가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작곡자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온 열정으로 꾸몄던 무대가 끝나고 나면 오는 허망함. 선거도 그와 같지 않을까.


특히 대통령선거는 극명하게 이를 느낄 수 있다. 지역구에서 ‘나’를 뽑아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와 달리 대선은 전국 조직이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움직인다. 어떤 무대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상황이다. 절체절명의 승부가 끝나면 한쪽은 들끓는 아드레날린으로 잠도 못 잘 정도로 흥분된다. 다른 쪽은 허탈함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당사자도 그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들을 목격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당선자를 태운 차가 국회에서 출발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하고 다음 일정을 향해 가는 게 아니었을까. 대통령 경호처의 웅장한 경호를 받으며 가는 윤석열 당선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리라.


그때 문득 들었던 생각은, 윤석열 당선인의 최대 목표는 ‘임기내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도 있겠지만, ‘그가 임기를 무사히 잘 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한국 권력의 최대 정점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딱 그에게 투표를 한 숫자만큼 그를 반대하고 있었다. (윤석열 VS 이재명 표차가 불과 0.73% 포인트)


게다가 한국 경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다. 경제 상황에 따라 윤 당선인에 대한 인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주변 상황으로 봤을 때 그 이후로의 경제 상황은 더 나아질 게 없어 보였다.


실제 코로나19가 아직 종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가 역전되어 있는 등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보였다. 과거 독재 정권이 오매불망 관리하며 성과로 내세웠던 게 경제 분야였다. 제아무리 적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정부라고 해도 ‘경제가 힘들다’라는 프레임의 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3년 3개월여가 지난 2025년 6월 2일. 국회 본청 안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혐오 섞인 발언이 오가며 ‘전쟁 분위기’로 치닫는 바깥 여의도와 달리 국회 본청, 그러니까 국회의사당 안은 오가는 사람 없이 어두웠다. 초여름 날씨지만 그곳 공기는 추웠다. 아마도 그곳 문을 지키고 있던 기자 말진, 어떻게 서든 그들을 막고 버텨보려는 당직자들 간의 뜨거운 실랑이, 뭐라도 관심을 얻고 싶어 기웃거리는 의원들의 존재감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선거가 끝나면 아마도 달라지리라.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인 것 같았던 여의도 바닥은 그때 2022년 3월 10일처럼 공허해지고 국회 안은 사람들로 다시 북적일 것으로 여겨졌다.


6월 3일 21대 대통령 선거의 날이 밝아 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딱 6개월 만이다. 3년 3개월 만에 ‘대선 다음날 스산한 거리 풍경’을 상상하며 국회로 출근을 했다. 이날만 기다리며 지난 6개월을 참아왔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국회 내부자들은 ‘본청’이라고 부르는 국회의사당은 다음날 있을 취임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좀 이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21대 대통령은 당선 즉시 취임해 대통령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약식이지만 본청 내부 빨간색 카페트가 깔린 ‘로텐더홀’에는 의자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국회 잔디밭으로는 LED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철제 펜스가 가는 길목마다 쳐지기 시작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새 시대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들도 슬슬 일과를 시작했다. 다만 모든 인원들이 일상에서 보듯 다 같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뉴스가 되는 것은 투표 종료 후 개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투표율 추이 정도만 소식으로 전할 뿐이다. 간간이 후보나 유력 정치인들이 남기는 투표 독려 메시지를 뉴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소수 인원만 남겨놓는다. 전원이 출근해 일에 달라붙는 시간은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됐다.


투표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낮시간 국회 본청 안은 활기가 있었다. 뚝딱뚝딱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다. 분위기는 어느 정도 1번 이재명 후보의 승리가 뚜렷했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민주당 비서진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겨도 몇 % 차이로 이기느냐가 관건이었다. ‘10% 포인트 차 이상으로 이겨야지 내란세력 척결에 힘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투표율이 지난 20대 대선(77.1%)을 앞선 79.4%를 기록한 가운데 이번 투표가 마감한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의 출구조사가 나왔다. 그전에 리얼미터 등이 조사한 자료가 비공표된 자료 형태로 돌았다. 출구조사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는데 이재명 후보의 10% 포인트 차 이상의 낙승이었다.


출구조사도 비슷했다. 3일 오후 8시에 정확히 나온 출구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51.7%, 김문수 후보가 39.3%였다. 이 자료만 놓고 봐서는 김문수 후보의 참패가 분명했다.


그때부터 기자들의 마감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재명 낙승’, ‘이재명·김문수 경합’ 구도로 2개의 시나리오를 짜놓은 상태에서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무게 중심을 놓고 쓰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소개, 당선 후 일정, 이재명 정부가 해야 될 일을 놓고 중점적으로 썼다. 최종 득표율은 공란으로 남겨 놓은 채 강판 시간을 기다렸다.


오후 10시 30분, 아직 개표가 한창이었지만 기사 마감을 해서 넘겼다. 자정이 안된 시간에 MBC 등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 유력하다’라는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가판에서는 ‘이재명 당선’이라는 타이틀로 큼지막하게 나왔다.


오후 11시가 되어 마감을 끝내고 국회 기자실 소통관을 나왔다. 이재명 시대의 개막을 예감할 수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잘못된 계엄이 청산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김문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의회와 정부는 또다시 대립각을 세울 것이고 윤석열 시대보다 더한 혼란과 대립이 있었을 것이다. 큰 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점, 명분에 있어 민주주의에 더 부합한 후보가 됐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이재명 당선 유력’은 이윽고 ‘이재명 당선 확실’로 바뀌었다.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긴장도가 높았던 탓에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2025년 6월 4일, 2022년 3월 10일처럼 여의도 거리를 거닐 일은 없었다. 일찌감치 일어나서 또 국회로 나서야 했다. 우선은 쉴 새가 없었다. 당선인도 축하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등 여흥을 즐길 새가 없었다. 이재명 당선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 확정’ 의결을 하는 동시에 대통령으로 취임해야 했다. 대통령이라는 리더십 공백 상황이 반년이나 이어진 상황에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보통 당선인과 그의 참모들은 전날 선거방송을 보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에는 잠시 눈을 붙인다. 기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쉴 새 없이 밖으로 나와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2025년 6월 4일은 축하하고 즐기는 날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의 첫날이었다.


대통령은 취임 첫날 현충원에 가서 호국선열들에 참배를 하고 일정을 시작한다. 그다음은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취임선서였다. 대통령실 쪽에서는 취임식이나 임명식이 아닌 ‘취임선서’라고 명명했다. 7월 17일 제헌절 행사와 함께 정식 취임식이 열리는데 이것도 ‘임명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국민이 ‘임명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정부명도 ‘국민주권정부’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이 어떤 정치 세력에 기대어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국민들과 소통해 됐다고 여기는 듯 했다.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라고 할까.


취임선서가 끝나고 가장 먼저 찾아간 이들은 국회 내 청소 노동자들과 방호팀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고매한 의원 양반들이 모이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권력과 지위는 없지만 국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2023년 자신이 단식을 하던 동안 주변 청소를 조심스럽게 해 줬던 청소 노동자를 지목했다. 그들과 사진을 찍고 그다음 일정을 향했다.


대통령이 만나는 첫 사람은 여러모로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평소 주관과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6월 6일 있었던 현충일 행사가 끝나고도 이 대통령은 시장을 찾아 상인들을 만났다.


그의 행보와 함께 시장 분위기는 회복됐다. 코스피는 2800선을 다시 뚫었고 원·달러 환율이 1350원대로 하락했다. 리더십 공백이라는 위험요소가 사라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국은 빠르게 안정적으로 찾아가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우리 국민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도 한국의 빠른 정상화를 원하고 있었다.


2024년 12월 4일 계엄해제 의결을 보면서 ‘윤석열은 끝났다’라는 생각과 함께 ‘조만간 이재명의 시대가 되겠구나’라고 여겼는데, 현실이 됐다. 지나와보니 지난 6개월은 그 어떤 6개월보다 길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랬다. ‘윤석열의, 윤석열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대통령.’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그의 말로가 최종적으로 어떤 귀결로 갔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 지지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했고 두려워했던 미래를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초래한 셈이었다.


권력만큼 허망한 게 있을까. 3년 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을 보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퇴임 수준을 떠나 사법 처리 단계를 기다리게 됐다. 그의 부인 또한 수십 명의 검사가 달라붙는 특검 수사를 받게 됐다. 어쩌면 2022년 3월 10일 스산했던 여의도 거리는 그의 권력이 가져올 말로를 상징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전 28화젓가락 이슈, 이낙연을 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