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강에는 발원지가 있다. 첫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큰 강도 그 시작은 초라하게 작은 실개천이다. 그 개천과 물이 합해지고 흐르면서 장강이 된다. 21세기 한국 정치사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탄핵 조기대선도 그 시작점 혹은 촉발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그의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기대선에서 절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와 배경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집안 내부에 있었던 여러 우환, 스캔들 의혹 등이다. 지난 20대 대선 때도 이들 약점은 끈질기게 이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그 원류에는 ‘윤석열’이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 10일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는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도 그렇고. 검찰총장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자랑일 텐데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까지 하게 됐다. 수십 년 정치를 해도 근처에 못 가는 게 ‘대통령’인데 윤 전 대통령은 정치 선언 1년 조금 넘은 기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늘의 운명이 나한테 있다’라고 믿을 만했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를 나와 용산에 새 터를 잡으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기는 너무 짧았다. 시작과 동시에 하락세를 그렸다. 국민들의 지지율은 하락했고 힘센 야당은 비협조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여소야대라는 정국 상황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있어 견딜 수 없었다. 검찰이라는 상명하복 조직에서 평생을 보냈던 그가 겪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이때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고도의 정치력이라고 한다면 내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수완이다. 조금 낮은 정치력이라고 한다면 반대자들을 설득해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는 전략이 되겠다. 때로는 본인이 보기에 ‘시정잡배’ 같다고 해도 그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날 필요도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더욱 필요한 게 정치력이었다. 상대적으로 민주당 세가 약했던 1990년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는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았다. 잘 알려진 DJP연합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런 정치력 자체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야당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악악’대는 잠재 범죄자들이었고 그들의 수장인 이재명 대표는 잡범이었다. 이런 범죄집단에 협조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악몽이었던 듯 싶다. 윤 전 대통령은 이들을 경쟁자라기 타파해야할 적으로 여겼다. 집권 2년 동안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몇 보 양보해서 집권초기 여소야대 국면이 윤 전 대통령의 탓이 아니라고 치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에서 맞게 된 정치환경이 여소야대였을 뿐이다. 이후 정국을 잘 이끈다면 2024년 총선에서 뒤집을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회조차 본인 스스로 날려버렸다는 점이다. 정치력의 부재가 컸고 판세를 읽고 그에 걸맞고 유리한 선택을 하는 데 미숙했다.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나 ‘채상병 수사 개입’ 의혹 사건도 정치 경험이 있는 전직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만했다고 본다.
게다가 2024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공천 파동이 주목받았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비명횡사’ 내홍을 겪고 있었다. 평소 비호감도가 비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높았던 이재명 후보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커졌고 2024년 총선 패배의 우려가 민주당 내에서 올라왔다. 그때가 2024년 1~2월이었다. 민주당 안에서 4선을 하면서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21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까지 맡았던 김영주 전 의원의 민주당 탈당 후 국민의힘 입당이 그 상징적 사건이었다.
일부 정치평론가는 국민의힘의 과반 승리를 예상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문제도 컸지만 사사건건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한 여론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고 봤다.
야당의 총선 패배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리더십 붕괴가 예상되던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의 도우미처럼 등장했다. 총선 한달 전인 2024년 3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발령을 냈다. 누가 봐도 그를 해외로 빼돌려 수사를 피하게 하려는 목적이 강해 보였다. 야당이 정치쟁점화 하자 곧 철회했다. 민생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렀다가 ‘세상 물정 모른다’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농산물 가격이 한창 오르던 그때 그는 “대파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내에서는 “아, 좀 불안하다” 정도였다. 결정적인 것은 2024년 4월1일 담화였다. 이날 담화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의료개혁과 관련한 내용을 언급했다. 좀 나아진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자신의 고집을 고수했다. ‘불통’ 이미지만 확인한 채 담화는 끝났다. 당시 여권 관계자들은 이때 담화를 보면서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역대급 총선 참패를 2연속으로 맞게 됐다. 총선 판매 직후 이재명 대표에게 영수 회담을 제안하는 등 무엇인가 바뀐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그 뿐이었다. 반전의 기회를 놓치고 더 큰 여소야대의 수렁 속에 빠져 들었다. 이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이 상황을 뒤엎을 한방, 즉 ‘계엄’을 꿈꾸고 있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총선 패배 직후 임기단축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왔다면 상황이 달랐을지 모른다. 실제 총선 패배 직후에도 임기 단축 개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고 ‘보기 좋게’ 퇴임하려면 ‘최후의 수’로 개헌을 들고 나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마지막 정치력 발휘의 기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총선 패배의 시간을 보냈고 국민의힘은 파탄을 넘어 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됐다. 평소 ‘잡범’이라고 비하하던 이재명 후보에게 권력을 빼앗기는 현실을 걱정하게 됐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사고나 사건이 났을 때의 반응과 대책이다.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다면, 그 이후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문제가 있다면 그 과거와 단절하기 위한 시도라도 했어야 했다.
국민의힘은 조기대선의 원인이 ‘윤석열’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된 단절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경선으로 뽑은 경선 후보를 교체하려다 다시 되돌리는 헤프닝까지 일으켰다. ‘우왕좌왕’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김문수 후보의 버티기는 성공했고 어쩔 수 없이 국민의힘은 그를 대선후보로 공식 인정했다. 그래도 중도층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 후보 자체가 (개인의 청렴성과 별개로) 여러 극우적 발언으로 야권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대선 기간이 한창이던 2025년 5월 16일 민주당은 그의 망언집을 따로 만들어서 배포할 정도였다.
게다가 김문수 후보는 한덕수 전 총리만큼이나 윤석열이란 존재를 오버랩한다. 김문수나 한덕수 둘 중 하나를 놓고 망설였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로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당내 세력 없이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하게 된 김 후보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하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5월 17일 들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 의사를 밝혔지만 너무 늦었다. 대선은 불과 2주 하고 이틀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