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의 호텔경제학 비판
지금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중도보수'도 지향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 후보는 극단적일 정도로 분배를 강조했다. 기본소득과 지역화폐가 그의 브랜드 정책이라고 할 정도다. 어린 시절 혹독한 가난을 겪었던 경험 때문인지 사회초년생들에게 '부스터'처럼 현금을 지급하자는 '현금성 복지'를 성남시장 시절부터 강조해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17년 비유로 들었던 ‘호텔경제학’을 다시 언급했다. 유세 현장에서 꺼냈는데 당장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의 지적을 받았다. 왜 그럴까?
아래 그림은 2017년에 제작된 그림이다. 이재명 후보는 '최대한 단순화 시킨 설명'이라고 하는데 경제학적으로 보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돈이 지역 내에서 돌고 돌면,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직관적인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경제학적으로 상당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도식이기도 하다.
그림 속 구조는 이렇다
한 손님이 호텔에 10만 원을 예약금으로 맡긴다.
호텔은 그 돈으로 가구점에서 침대를 사고,
가구점 주인은 치킨집에서 소비하고,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구매하고,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빚졌던 10만 원을 갚는다.
결과적으로 10만 원이 순환하면서 여러 상인이 소비를 경험한 셈이다. 얼핏 보면 돈이 돌기만 해도 지역경제가 활력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다음과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비유①: 철이와 순이의 1000원 순환
핫도그 장수 순이와 호떡 장수 철이가 있다고 해보자. 철이는 배가 고파 1000원을 주고 순이에게 핫도그를 산다. 순이는 이 돈으로 철이에게 호떡을 산다. 그렇게 돈은 서로 주고받으며 소비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둘이 서로 음식을 팔며 소비를 했지만, 결국 둘 사이를 오간 돈은 고작 1,000원 한 장이었다. 거래는 있었지만 소득의 총량이나 경제적 가치가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이 사례는 호텔경제학 그림의 핵심 구조와 똑같다. 돈이 돌았을 뿐, 새로운 부가가치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비유②: 무한동력장치의 환상
이 구조는 마치 무한동력장치(perpetual motion machine)를 보는 듯하다. 겉보기엔 아무 에너지도 들이지 않고 계속 작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찰과 중력 같은 저항이 존재해 결국 멈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세금, 외부 유출, 저축, 원재료 비용 등 다양한 ‘마찰 요소’들이 존재한다. 순환이 지속되려면 그 안에 새로운 생산·이윤·잉여가치가 투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구조는 결국 꺼진다.
아마 통화 승수와 소비 승수의 혼동이 아닐까? 이재명 후보가 강조한 것은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였다. 그런데 그림은 두 가지 경제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여기서 그림은 통화 승수는 아니다. 통화 승수(Money Multiplier)는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시중은행의 예금-대출 구조를 통해 여러 배로 확대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림에서는 신용 창출도, 예금도, 대출도 없다. 단순 소비만 있을 뿐이다.
소비 승수라고 보기에도 여러 전제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소비 승수는 지출이 한 주체의 소득이 되어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고, 이 효과가 누적되는 구조다.
이 승수가 실제 작동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소비된 돈이 전액 재소비되어야 하고, 외부 유출 없이 지역 내에서만 순환해야 하며, 각 거래마다 새로운 가치가 창출돼야 한다.
GRDP에도 직접 기여하긴 어렵다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지역 내 소비를 유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GRDP(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는 지역 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의 총합이다.
단순 소비가 돌고 돌았을 뿐, 실질적인 생산이나 투자 증가 없이 기존 재고만 팔렸다면 GRDP는 크게 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의 일부가 지역 밖으로 유출되면, 정책 효과는 희석된다.
결론: 순환은 곧 성장 아니다
이재명 후보의 그림은 정책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적 맥락에서 보면, 소비 순환만으로는 경제 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
경제 성장은 단순한 순환이 아니라, 그 안에서 부가가치가 어떻게 창출되고, 누가 생산하고, 어떤 구조로 고용과 투자가 일어나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돈이 돌기만 해서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무엇을 만들고, 어떤 가치를 낳았는가, 그게 진짜 중요한 경제의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