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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통령의 소통법

by 팟캐김

수없이 많은 기자회견과 기자간담회를 다녔다. 그중 2025년 7월 3일 대통령 기자회견만큼 긴장됐던 자리는 없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30일 기자회견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아름아름 보도가 됐지만 경호 문제로 장소는 물론 시간, 기자회견 방식까지 함구해야 했다. 분단국가의 현실을 이런 점에서 절절히 느꼈다.


예정된 회견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경호처 직원들은 공보실 사람들과 함께 분주히 움직였다. 기자회견장까지 같이 갈 110여 명 기자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신분증과 얼굴을 실제와 대조해 갔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기자들은 차분히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신원확인 절차가 끝나고 공보실에서 정식 출입증을 나눠줬다. 그전까지 30일을 임시 출입증을 갖고 다니던 터였다. 인수위 없이 급하게 출범했던 대통령실의 현실이 기자들에게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혹시나 신원조회에서 '빠꾸'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는데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은 경호처·공보실 직원과 함께 버스에 나눠 타 기자회견장까지 이동했다. 외신기자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통령실 수석과 비서관들이 먼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실에서는 도통 만날 수 없는 이들이었기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으니 반가웠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 시기부터가 이례적이었다. 당선 확정 후 30일이다. 역대 대통령 기자회견 중 가장 빠른 시기가 아닐까. 그전 대통령들은 100일을 전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달 인수위 기간까지 합하면, 대통령 당선 이후 약 160일 정도 지난 후다.


그나마 대중적인 말하기를 꺼리는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을 잘 열지도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때는 일일 브리핑이 없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형식도 좀 달랐다. 타운홀 방식이라고 했는데, 대충 연사를 중심으로 '뱅' 둘러앉았다고 보면 된다. 질문 방식이나 순서 지목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기자단 내에서 질문할 기자와 순서, 질문을 정했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없었다. 전날 홍보수석도 누누이 '짜고 치는 고스톱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질문권은 추첨과 대통령의 현장 지목으로 정해졌다. 추첨은 각 분야별로 명함 수집함을 만들어 놓고, 그 명함을 간사가 뽑는 방식이다. '운'이 많이 작용했다. 방송사나 종합지에 질문권이 몰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눈높이도 기자들에 맞췄다. 대통령이 앉은자리라고 해서 따로 단상을 놓지 않았다. 취지는 좋았으나 뒤쪽 자리 기자들은 대통령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탈권위적이라고는 하지만 이 부분은 아쉬웠다.


실제 이날 질문은 평소 기회를 잘 얻지 못했던 지방지 기자들에게 돌아갔다. 지방지 기자들에 몰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통신사, 종합지, 방송사 등이 소외됐다. 이 대통령은 균형을 맞추고자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 통신사 기자에게 좀 더 질문권을 주자고 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사실 국가원수를 취재원으로 삼고 있는 대통령실 기자는 여러 부분에서 제약을 받는다. 경호 문제가 크다. 대통령이 아무리 소통을 하고 싶다고 해도 만나기 쉽지 않다. 물론 다른 출입처 수장들도 일반 기자와 잘 만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이재명 대통령은 그 틀마저 깨려고 했다. 직원식당에서 수시로 식사를 하고 기자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혔다.


이런 대통령의 한 마디는 굉장히 중요하고 파급력이 크다. 희소성이라면 희소성일까. 기자들은 큰 의미를 부여한다. '부정적 관점'이 붙을지, '긍정적 관점'이 붙을지는 기자들의 생각과 의견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게다가 대통령의 소통법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제약은 심하고 파급은 크다. 왜곡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초반 의욕에 차 있을 때는 열심히 소통하다가 임기말로 갈수록 구중궁궐에 갇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곤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본인의 소통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임기말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무던히 하고 있다. 또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좋아하는지 잘 아는 듯하다. 사회적 약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고개를 더 숙였다.


물론 이 대통령의 소통법이 완벽하지는 않다. 과거에는 소통에 서툴렀다. 사적 대화가 여과 없이 나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의 소통법이 정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변호사, 성남시장 시절에는 언사가 거칠었으나 경기지사, 대통령 후보를 거치면서 순화됐다. 대통령이 되면서 무게감까지 더해졌다. 무명 정치인 이재명과 대통령 이재명의 소통법은 분명 달라진 듯 보였다.


그의 첫 기자회견은 이런 측면을 잘 드러냈다. 언론계에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지역신문과 풀뿌리 매체들을 챙겼다. 맥락을 짚으면서 '안 되는 부분'이 왜 안되는지 설명이 있었다. 짧은 질문에 긴 대답이었지만 '대통령 이재명의 소통법'이었다.


이런 소통법에 관심이 갔다. 뭐랄까, 묘한 '마음의 변화'를 느꼈다고 할까. 20년 넘는 민주당 지지자로 살아왔지만 당대표 이재명, 대통령 후보 이재명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2023년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당대표 이재명'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한 켜에서는 비명계(非이재명)를 응원하는 부분도 있었다.


'대통령 이재명'을 보면서 이런 부분이 조금씩 변해갔다.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 소통하려는 그의 마음이 조금씩 느껴졌다. 여전히 대통령실 출입기자와 대통령으로서 거리가 멀고 그 사이에는 수많은 스텝들이 있지만, '일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한 감동이라고 할까. 대통령실 참모들 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일하던 대통령실 직원들에게서도 '대통령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경외감을 글로 옮겨보고 싶었다. 기사가 아닌 자유로운 '내 글'로 쓰고 싶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소통법에 대한 부분이면서 일에 대한 부분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서 '내 발전의 계기'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우선 나는 그의 측근이 아니다. 오래된 지지자도 아니다.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에 따라 그의 지지자라고도 할 수 없다. '인간 이재명'에 대해 쓸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일부 말과 행동을 갖고 '이러이러하다' 판단해 재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변명을 좀 하겠다. 고등학생 시절 재미나게 읽었던 책 중 '국화와 칼'이 있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명저인데,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 대한 분석을 심도 있게 했다. 통찰력이 그대로 묻어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베네딕트는 그 책을 쓰면서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않았다. 문헌 자료를 보고 연구자로서 썼을 뿐이다. 어쩌면 그 부분이 '국화와 칼'을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심정적으로 가질만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감정적' 편견을 배제할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 여러 글을 써나갈 터인데, 지지자들이 보기에 어설픈 부분이나 틀린 내용이 있으면 냉엄하게 지적해 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한 줌의 아량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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