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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란 무엇인가

by 팟캐김

소통은 한자로 ‘疏通’이라고 쓴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뜻으로, 대화가 오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평소에도 자주 쓰는 단어이자 매일 하는 ‘행위’지만, 정작 원활하지 않을 때가 많다. 요즘 ‘소통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활동 폭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갈수록 소통이 어려워지는 세태가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영어로 옮기면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 라틴어 communicare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나누다, 공유하다, 함께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자어가 ‘통하다’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은 ‘가치의 공유’에 더 가중치를 두는 듯하다.


소통하는 모습.png 챗GPT 생성 이미지


소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언어적(말, 글)인 부분과 비언어적(몸짓, 표정, 행동) 방식이다. 여러 연구 자료에서 보듯, 비언어적 요소가 소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목받는 사람일수록 이런 비언어적 소통에 주의해야 한다. 연예인들에 대한 악성 소문도, 이런 비언어적 행동에 ‘해석’이 붙어 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상호 이해와 공감, 신뢰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오해가 쌓이는 것이다.


소통 방식은 기술, 사회 구조, 문화의 발전에 따라 크게 변화해 왔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소통 도구’는 권력의 밀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소통 도구가 한 곳에 몰려 있으면, 권력의 밀도도 높아진다. 언론이 통제된 왕정사회나, 종교 원리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국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와 중세에는 구전과 필사가 중심 소통이었다. 이야기꾼이나 종교 지도자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광장(아고라)에서 이뤄진 토론이나 중세 교회의 설교가 그렇다. 음유시인 같은 이야기꾼은 논외로 치더라도, 메시지를 독점한 메신저들은 권력을 일방향성 소통으로 과시하곤 했다.


인쇄술의 발달은 이런 독점적 소통 구조에 균열을 냈다. 책, 신문, 팸플릿 등이 대중화되면서 정보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특정 집단이 정보를 독점하고 메신저 역할을 하던 시대가 지난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었고, 그 중심에는 자국어 성경이 있었다. 은밀한 커튼으로 가려진 종교의 권위를 이들 수단이 걷어냈다.


19~20세기에는 라디오, 전화,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가 소통의 중심이 됐다. 대중은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진화했고, 소통은 일방향(발신자 → 수신자)에서 점차 양방향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처럼 보도지침을 내려 미디어를 통제한 경우도 있었지만, 쌍방향성은 점차 강해졌다.


소통의 극적인 전환점은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의 등장이다. 즉각적인 쌍방향성이 강화됐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도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글로벌화됐다. 개인이 곧 콘텐츠 생산자가 되면서 다대다 소통이 가능해졌다. 중앙집권적인 권위체가 일일이 통제하기 어려운 시대의 도래였다. 물론 중국 정부처럼 특정 단어에 대한 검열은 존재하지만, 예전 왕정시대나 종교적 권위주의 국가와 비교하면 직접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대중매체는 ‘매스미디어’라고 부른다. 대중언론 개론서들을 보면, 매스(mass)는 대중을 뜻한다. 시민이라는 개념보다는 ‘수용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매체를 통한 일방향성이 강조되던 때를 떠올리면, 최근 들어 ‘매스미디어’나 ‘매스컴’이라는 단어가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쌍방향성이 강조되는 시대의 방증이기도 하다.


정치인의 소통에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프레임’을 짜는 데 동원된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매스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구체적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된다. 불행하게도, 이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것은 국가 전체주의로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간 파시스트들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무솔리니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자신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만들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괴벨스도 이 부분에서 탁월했다.


이들은 ‘힘과 폭력’ 없이도 ‘조작된 이미지’를 통한 소통으로 절대 권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나치독일과 일본제 국주의자들의 생체실험이 현대 의학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처럼, 이들의 선동 방식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히틀러를 ‘천상에서 내려온 메시아’처럼 표현한 흑백영화 ‘의지의 승리’류의 영화나 선전물은 요즘도 교묘하게 등장한다.


선동이 아닌 체계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정치 행위자가 하는 모든 형태의 소통’을 뜻한다. 말과 행동, 이미지뿐만 아니라 옷차림, 헤어스타일, 디자인까지 포함된다([출처: 브라이언 맥네어,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이해>, 한울, 김무곤 외 역, p.30-43]).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본받지 말아야 할 교본’을 여럿 남겼다. 늦은 밤 술을 마시는 모습이나, 반대 의견에 격노로 대답했다는 진술 등은 대통령으로서 그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겼다. 야당에는 비판의 빌미를 줬고, 국민은 이를 수긍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과오를 가리려 할수록 더 드러날 뿐이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대통령의 소통은 중요하다. 국정 철학과 정책 추진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식물정부에 가까울 정도로 작동하지 못했던 가장 큰 요인은 총선 패배였겠지만, 미숙한 소통도 한몫했다. 소통의 필수 요소인 ‘정보’를 담지 못했고, 감초 같은 ‘감정’도 실리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가 남긴 사진이 지지자들에게는 감동을 줬을지 몰라도, ‘정보’(왜 그 사진을 찍었는지)는 없었다.


시대적 흐름도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했다. 탈권위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을 기대하는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고 할까. 그는 의식적으로라도 ‘탈권위적 행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임기 초 도어스테핑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수십 년 권위적 조직에서 ‘일방적 소통’만 해온 그에게 ‘쌍방향 소통’, 다시 말해 ‘쌍욕까지 감수하는 소통’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경멸해 마지않던 정치인들에게는 쉬울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웠던 것 같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곧 국가 메시지이자 신호다. 그래서 소통은 가볍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무오류성’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권위를 갖게 되었고, 인간적인 리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인터넷과 미디어 기술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 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본다면, 소통은 ‘말하기’와 ‘듣기’가 균형 있게 활성화돼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쏟아내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다면, 소통의 본래 취지에서 멀어진다. 게다가 비판적이고 참여적인 시민이 늘어나는 시대에, 대통령의 일방향 소통은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소통이 단순한 말이 아닌, 권력의 수단이자 국민과의 약속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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