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특수대학원생의 '동전 한 닢'
일반대학원 석사와 특수대학원 석사의 가장 큰 차이는 '논문'에 있다고 본다. 일반대학원 경험이 없어 ‘확실히 맞다’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내 짧은 경험으로 봤을 때는 그렇다. 일반대학원은 논문 완료가 졸업의 필수 요건인 반면 특수대학원은 ‘쓰면 좋고, 안 써도 괜찮고’인 것 같다.
이는 각자의 목적이 달라서가 아닐까. 일반대학원은 ‘학자 예비후보생’을 뽑는 과정이기에 연구 성과가 필수다. 석사 학위는 그 과정에 대한 증명일 뿐이고, 본질은 ‘연구 성과’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사도 비슷하지 않을까.
특수대학원은 직장인을 위한 과정이다. 지도교수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받는 일반대학원생들과 달리 재학생 대부분에게는 생업이 있다.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수업을 듣기 어렵다. 학업 공백도 일반대학원생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다. 나만 해도 2~3년 뒤면 학부 졸업 20년을 맞는다.
학업의 깊이도 당연히 일반대학원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일반대학원생이 프로 입문을 앞둔 엘리트 신인선수라면, 특수대학원은 생업을 병행하며 운동을 하는 아마추어나 세미프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다니는 곳은 (학점과 무관하게) 높은 수준의 학습 이해도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대학원 학생들과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고 본다.
교수 입장에서는 일반대학원생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기가 잘 닦여 있고, 삶의 목표를 학문에 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교수 역시 논문 지도를 하면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아무에게나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며 지도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말귀가 있고’, ‘기본기가 탄탄하며’, ‘협업하기 편한’ 이들이 더 편할 것이라는 얘기다.
논문을 써야 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인데, 특수대학원생 입장에서는 더 힘들다. 커리큘럼을 따라가기에도 벅찬데, 논문 작성을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해 분석하는 과정까지 익혀야 한다. 이후 엄정한 평가까지 생각하면 ‘악몽’에 가까울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있는 특수대학원에서 논문을 완성한 학생은 10%가 넘지 않는다고 들었다. 교수들도 논문을 쓰겠다고 오는 이들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렵고 좁은 문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경제대학원 입학 때부터 ‘논문 쓰기’를 하고 싶었다. 나만의 연구 결과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과거 책을 냈다는 경험이 오기처럼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피천득 작가의 ‘동전 한닢’에 나오는 거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학점만 채우고 시험만 봐도 되는데도 굳이 논문 하나를 쓰겠다고 바득바득하는 내 모습은, ‘이 논문 하나 갖고 싶었습니다’라는 욕망에 가까운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설명이 가장 그럴싸하다.
뜻하지 않았지만 목표가 생기니 학업 계획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졌다. 초반에는 경제학 관련 기초를 쌓고, 3학기부터 논문 준비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3학기 기준으로 졸업까지 약 1년 반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봤다. 그 시기에 대학원에서 제공하는 논문쓰기 수업도 들었다.
그 수업에서 논문 작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자료분석, 시계열분석)을 익혀야 하고, 이론적 배경인 계량경제학도 숙지해야 한다. 파이썬도 데이터 분석에 유용한 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STATA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깡통’ 상태로 교수들을 찾아다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4학기(내 과정은 5학기제) 기말고사를 앞두고, 내가 쓰고 싶은 과제의 초안을 마련했다. 일전에 수업을 들었던 교수에게 논문 지도 요청 메일까지 보낸 상태다.
그런데 이 교수님이 해당 학계의 최고참급 학회장을 지낸 권위자였다. 간도 크게 그런 분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다니. 이왕 하는 거 그 분야 권위자에게 지도를 받자는 생각이지만, 아무리 봐도 무모한 도전 같다.
이분이 내 초안을 어떻게 평가할지. 두근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