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내려놓아야 보이는 것들

by 팟캐김

쉰 살이 넘어, 혹은 그 이전에 직장에서 나와 ‘차가운 바깥 현실’을 느끼는 중년들에 대한 유튜브 영상이나 글을 종종 본다. 그들 나이대와 비슷해지는 처지에서 남일 같지만은 않다. 당장 다음 달, 다음 주에 내가 이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 이런 막연한 중년들의 불안 심리를 극화로 잘 표현한 것이 ‘서울 자가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일 것 같다. 드라마 전개상 다소 과장된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직장’이라는 곳에서 벗어나면 모두가 다 겪을 상황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든 실제든 직장을 나온 중년이 겪는 심리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낯섦’이 아닐까. 자기가 있던 익숙한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초보자이자 초심자’로 겪을 수밖에 없는 ‘낯섦’이다. 마치 자기가 회사에 처음 들어가 적응할 때와 같은 사회 초년생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나도 사회 초년생 때는 무척 힘들었다. ‘그들만의 세계’이자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 ‘지금껏 쌓아왔던 나의 주관과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재조합하는 시기였다고 본다. 누구나 ‘파괴 후 재조합’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단 사회 초년생이나 신입생뿐일까.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면 누구나 ‘파괴 후 재조합’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적응’이라고 한다. 인간 세계에서는 당연하게 직면하는 과정일 뿐, 중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그 낯섦의 상황을 수년 혹은 수십 년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우리는 다시금 낯선 환경에서 적응을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갖고 있는 ‘직급’ 혹은 ‘대우’도 이런 ‘낯섦’을 잠시 잊게 하는 진정제와 같다고 본다. 직장이란 게 영원히 내가 머물 곳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퇴직을 하고 적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게 현실인데,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내 것이 아니다’라는 훈련을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꽤 높은 지휘관’으로 있을 때부터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갑작스럽게 닥치는 ‘낯선 환경’으로 받는 충격을 그나마 줄일 수 있으니까.


예전 4년 전 일이긴 한데,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함께 여러 사람이 밥을 먹을 일이 있었다. 당시 진 회장은 신한은행 행장이었다. 고졸 출신 행장으로 여러 일화를 남겼던 분인데, 그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고. 관용차에 자기 구두 하나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떠날 곳이고 돌려줘야 하는 것들인데, 내 것처럼 착각하면 나중에 받을 ‘마음의 충격’이 크다고 했다. 앞선 선배들도 그래서 무척 힘들어했다고 전해줬다.


의식하고 사는 것도 중요한데, 사실 생각만으로는 힘든 게 현실이다. 어쩌면 낯섦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 내가 누리는 계급장을 다 떼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곳에 ‘나를 던지는 행위’도 필요하다고 본다. 퇴근 후 취미 활동이 될 수 있고, 자기계발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 어느 곳이든 내가 익숙한 곳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마이클 이스터의 책 『편안함의 습격』도 ‘던져진 낯섦’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저자는 알래스카의 순록 사냥에 합류했고, 그곳에서 겪었던 경험담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저자는 그 두꺼운 책에서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을 느껴볼 것’을 권했다. 맞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낯섦을 느끼기 위해 먼 알래스카까지 갈 필요는 없다. 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생계의 중요한 끈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까. 우리 안에서 편안함을 깰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을 것이라고 본다. 혹 지금의 익숙함이 ‘오만함’으로 이어지지 않을 정도라면 말이다.


지난번 대학원 수업 때가 생각난다. 각자 발표를 하는 자리였는데, 20대 후반, 30대 초중반 원우들의 PPT와 내용을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인데, 그들이 갖고 있는 인사이트와 내용의 완성도에 감탄했다. 그 나이대 친구들은 내가 있는 회사에서도 적지 않은데, 그들을 어떻게 보아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직급과 직위에 가려 실제 그들의 역량 값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지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느끼기 힘들었을 ‘낯섦’이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길 잘했고, 젊은 그들과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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