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란 공포를 맞닥드리다.. 2022년 10월
수영장 귀퉁이를 붙잡은 팔까지 저려오기 시작했다. '피가 안 통하나.' 귓속에는 이미 물이 들어가 들리는 게 먹먹하다. '뛰어나간다고 할까?' 강사는 저만치 서서 다른 수강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다시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꼬르륵...' 코로 숨을 내뱉어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 파란색 수영장 밑바닥이 시야로 들어왔다. 공포감이 다시 올라왔다.
코와 입과 눈을 물속에 넣었다. ‘이래야 할 수 있다.’ 조여 오는 답답함. 파란 수영장 바닥은 공포감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다시금 나왔다. 숨을 내뱉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나 혼자다. '이번에도 (입수) 실패다.'
수영을 배우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온라인 등록을 했고 강습 날짜가 돼 강서구에 있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서울시내 50m 레인이 8개나 있는 몇 안 되는 수영장이 있는 곳이다.
사실 가는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물은 늘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숨이 들어가는 코가 물에 잠긴다는 것, 물속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 워터파크에서도 유아풀 주변을 내내 거닐었던 이유였다. 물 안으로 얼굴을 넣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쩌면 40년 넘게 날 괴롭혔던 두려움과 목도할지도 모른다. 긴장이 됐다. 체육관까지 가는 버스길이 짧게만 느껴졌다. 수영 강습 시간은 오후 7시인데 이미 6시 20분에 도착했다. 온라인 등록 후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되뇌었건만, 막상 그날이 되니 일찍도 갔다. 20년 전 군 입대 시절이 생각났다.
플라스틱 재질의 등록카드를 받았다. 수영장 입장 태그를 찍고 들어갔다. 광활한 50m 레인의 수영장이 시야를 꽉 채웠다. 서울에 딱 3군데뿐인 50m 레인이라고 한다. 수영 마니아들이 ‘도장 깨기'를 한다면 꼭 들린다는 그곳. 1988년 선수용으로 개관했던 곳인지라 관중석까지 널따랗게 있었다.
상상 속 물에 대한 공포로 어느 정도 질린 상태에서 수영장 규모까지 웅장해 넋이 나갔다. 평소보다 ‘어리바리' 정도가 더 심해졌다. 태그 찍는 곳에서 탈의실까지 몇 발짝 떨어지지 않았지만 관중석까지 올라가 헤맸다. 남자 탈의실이 저만치 떨어져 있다는 것을 좀 후에 알았다.
탈의실 안. 샤워실과 락커를 수 차례 왔다 갔다 했다. 락커키를 손목에 채웠다, 발목에 끼웠다 수 차례 반복했다. 수경을 수영모 위에 끼워 올리고 탈의실 문 밖을 나섰다. 문 앞 거울에는 체지방 30%에 육박하는 두툼한 육체가 눈에 띄었다. ‘참 못생겼다.’
어찌어찌 풀로 들어왔는데 이상하다. 제한구역을 통해 내려왔기 때문. 탈의실 문쪽에서는 곧장 수영장으로 내려갈 수 없게 막아둔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을 살짝 피해 들어갔던 것. 제지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여기 수영장은 널따란 풀 앞에 온탕이 있다. 유아탕(유아풀이 아니고) 정도라고 할까. 이미 많은 떼의 사람들이 들어와 앉아 있었다. ‘한 타임에 40명 가까이 들어간다더니 바로 그들인가?’ 성비로 봤을 때 7할은 여성인 듯했다. 남자들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 혹은 청소년 정도였다. 아, 평일 오후 7시 클래스지… 내 또래 남성들은 야근을 하던가 주변 주점을 맴돌던가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있으리라.
정확히 오후 7시가 되자 온탕 안에 있던 사람들이 첨벙첨벙 풀 안으로 뛰어들었다. 강사 한 명이 저 앞으로 가서 호루라기를 부르며 체조를 한다. 50m 레인인지라 광활했다. 강사는 작게 보였다.
체조가 끝나자 반이 나뉘었다. 강사가 왔다. 아까 체조를 앞에서 했던 사람이다. 기초반 강사였다. 그 앞에 모인 사람은 15명 정도. 처음 등록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중에 물속 잠수 한번 안 하면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내가 유일하리라.
시작은 물장구였다. 첨벙첨벙 자유형 물장구 연습을 했다. 다리만 살짝 담근 채. 5분 정도 지났을까 간단하게 그 유명한 ‘음-파-’ 호흡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아, 그래? 쉽네’라는 생각을 할 때 풀 안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누가? 강사가. 왠지 뭐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았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했는데 전장 앞으로 나서라니.
처음에는 안면부를 얼굴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호흡을 하라고 했다. ‘아 버겁다'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머리를 완전히 담그라는 얘기를 했다. 누가? 강사가.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바들바들 떨면서 얼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라는 것. 추워서가 아니다. 하반신을 물에 담근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상반신과 방향을 찾지 못한 코와 입 때문이다.
그 누구도 군소리 없이 머리를 풀 안에 넣고 ‘보글보글' 날숨 거품을 불어 올렸다. ‘아니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는 것일까?’ 분노가 나올 때 즈음 ‘애초에 물이 무서운 사람은 여기에 아예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과연 나는 입과 코를 물속에 넣을 수 있을까.
몇 번의 마음 다짐과 수 차례의 한 숨 후 머리를 물속에 넣으려는 찰나 ‘푸하…’ 나왔다. 코에 물이 들어갔다. 귓속에 물이 들어갔다. “선생님 귓속에 물 들어가요.”
‘그런 류의 사람들은 이미 많이 봐왔다'면서 엄살피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강사가. 그는 “그거 안 하면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말했다. 마흔 살 넘은 ‘물이 무서운 남자'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돌아서서 수영장 모서리를 다시 잡아야 했다.
눈앞 파란 지옥에 몸이 얼었다. 머리를 완전히 물 밖에 내놓았는데도 숨 쉬기 힘들어졌다. 숨이 가빠졌다. “이런 게 공황이란 건가.” 폐쇄공포증에 가까운 공포감에 몸까지 경직됐다. 첫날부터 풀 속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유아풀이 아닌 어른풀에 집어넣고 잠수를 하고 호흡까지 해야 할지 몰랐다. 몰랐다. 몰랐다.
지옥 같은 첫 시간이 끝났다. 강사가 다가와 말했다. 안도감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오자 폐 속에 충분한 산소가 들어왔다. 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조정석 닮았다'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했다.
“회원님. 머리를 푹 담그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못 해 드려요. 귀에 물 들어간다고 하셨죠? 정 싫으시면 귀마개를 사서 하세요.”
아, 측은하면서도 한심하게 보는 듯한 눈빛이다. 와이프 말고 또 누가 나에게 그런 눈빛을 보냈던가. 그간 물을 멀리해 왔던 나의 삶이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