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中)

바가지에서 시작하다 2022년 10월

by 팟캐김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물리적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였다. 경험해보지 않았던, 아니 그동안 피하고만 다녔던 '물에 대한 공포'를 정면으로 맞서보고 싶었다. 수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이번에마저 물을 외면한다면 영영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두려우면서도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수영이기도 하다. 계곡을 가서든 수영장을 가서든 자유롭게 놀면서 그 시간을 즐기는 친구들과 지인을 늘 부럽게 바라봤다. 나는 혹여나 넘어질까 봐 발만 담그고 있곤 했다. 물장난이라도 치라고 누군가 다가오면 정색하고 화를 냈다. 물이 무서웠으니까.


무엇인가 도전하고 이겨낸다는 성취감도 맛보고 싶었다. 사실 그게 필요한 시기이긴 했다. 2022년 하반기가 말이다. 후퇴하지 않고 버틸 수만 있어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던 때였다. 바로 회사 노동조합 위원장을 '과분하게' 맞게돼 회사 경영진과 만만치 않은 협상을 벌여야 했던 것. '우리 가족의 생계를 걸고 맞선다면 좋은 결과를 내리라' 여겼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협상 맞상대들은 나이로보나 경력으로 보나 나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존재들 아닌가. 나는 이것을 '두려움'이라고 은근히 여겼던 것 같다.


무언가 넘어야 하고 도전해야 할 상대가 있는 상황에서 필요했던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성취감'이었다. 그 성취감은 작은 시작에서 이룰 수 있었고, 그 시작을 '수영'으로 삼았다.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운동도 할 수 있으니까. '절대 못해' 영역이었던 게 사라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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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첫 수영장 강습에서 돌아와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과 와이프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배 나온 아저씨가 수영장 한 켠 모서리를 붙잡고 '어푸어푸'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길 수밖에.


사실 나는 '어푸' 단계도 못 들어갔다. 머리를 물속에 전혀 넣지를 못했으니까. 그야말로 한심좌였다. 이후에 수영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 알게 됐는데, 수영모도 엉뚱하게 썼다. 수영인들이 쓰는 방식이 있는데 반대로 썼던 것. 원래는 '아레나' 같은 수영모 상표가 머리의 양 옆에 놓이도록 써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게 썼던 것. 머리 양 옆에 있어야 할 '아레나' 상표가 이마와 뒤통수 부분에 버젓이 있었다. 이 얘기에 와이프는 또다시 즐거워했다. 최근 10년을 두고 돌아봤을 때 가족들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줬던 적이 있었던가?


잠자리에 들기 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왜 입수를 두려워하는지. 우선 코와 입에 동시에 물이 묻는 그 상황 자체를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늘 그런 상황을 피해왔으니까.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니 공황상태에 빠지고 호흡조차 제대로 못하는 지경까지 갔던 것. 우선은 코와 입이 동시에 입수하고 '숨을 쉬는' 과정까지 겪어야 한다고 봤다. '입으로 숨 쉬고 코로 내쉬는' 연습까지 하리라 마음먹었다.


다음날 출근했다가 돌아오면서 다이소에 들렸다. 거기서 꽤 큼지막한 바가지를 샀다. 머리 하나는 충분히 담글 수 있는 바가지다. 그곳에 물을 담고 코로 호흡을 내쉬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바가지를 놓아두고 천천히 머리를 담갔다 뺐다를 반복했다. 입으로 숨을 들이켠 다음에 바가지 물속에 코를 담그고 '보글보글'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해야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 '된다.' 최소한 죽음의 공포를 넘길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수영장에 가면 머리는 담글 수 있겠구나.'


다음날 아침 출근길은 왠지 경쾌했다. 잠시 동안 죽어 있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고나 할까. 죽음과 같은 공포 앞에서 신경들이 자극을 받았다고나 할까.


공포 앞에서 우리 몸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죽어있던 신경세포들의 스위치를 열고 온몸이 이를 대비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 공포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고 '나와의 싸움'과 관련된 공포라면? 약간은 미묘할 정도의 성취로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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