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담갔다 2022년 10월
SF영화의 고전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를 본 적이 있는가? 첫 장면을 보면 힘없고 연약한 유인원들이 나온다. 그 유인원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인간으로 진화한다는 과정을 간결히 표현한 것인데, 결정적 계기가 '도구'다. 도구 사용법을 깨닫는 순간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나오고 유인원은 전혀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발을 들인다. 잡식성 약체에서 포식자로의 길로 들어선 것. 알을 깨고 나와 바깥세상을 만나는 새끼새의 몸놀림이라고나 할까.
그 웅장한 음악을 나는 수영장 1.2m 수심에서 느꼈다. '빠바~ 빠방~~~' 왜냐. 내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분명. 수영장 물아래 깊숙이 머리를 담글 수 있게 됐으니까.
물론 현실은 기초반에서도 상기초로 수영장 한켠에서 호흡 연습하는 아저씨로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같이 동반자가 되어줄 한 남자가 있었고 한 할머니가 있었다. 강사 선생님의 배려일 수 있겠는데, 그 사람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게 수영장 물속에 머리를 넣는 연습을 연거푸 했다. 이후에는 수영장 한켠을 붙잡고 몸을 띄운 뒤 호흡하는 연습을 했다. 그 시간이 거진 2주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다. 저녁 강습반이고 기초반에만 거의 30명이 빽빽이 몰려 있었다. 이런 기초반 강사 입장에서 상(上)기초 호흡반 연습생들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기 쉽지 않다. 다른 강습생과 비교하면 뒤로 밀리곤 한다. 스스로 깨닫고 나오지 않으면 영영 풀장으로 나올 수 없던 상황. 중간중간 와 여러 설명을 해주고 호흡 연습이 얼마나 됐는지 살펴보긴 했다. 어쩌면 강사도 '저러다 그만둬도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수영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물에 대한 공포가 있는 기초 강습회원들에게는 유아풀 교육을 하기도 한다. 유아풀에서 익숙해지고, 실제 풀로 나가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유아풀에서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듯하다.)
역시나 집에 오자 와이프와 아이들은 파안대소로 나를 맞았다.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한 할머니랑 같이 수영장을 붙잡고 호흡 연습을 한다니까 매우 즐거워했다. 내가 우리 가족들에게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일 줄이야.
자기 전 다시 또 분석을 했다. 물속에 머리를 담그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몸이 뜨지를 않았다. 가라앉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물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물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때 떠오른 게 '유아풀'과 '실내 워터파크'였다.
이곳 수영장에도 유아풀이 있었다. 가로 5m, 세로 20m 정도로 깊이는 60cm 정도 됐다. 자유수영시간에도 풀장이 늘 꽉 차있는데, 유아풀은 비어있곤 했다. 유아풀에서 호흡 연습과 발차기 연습을 하기로 했다. 강습 외 별도의 연습 시간을 마련하고 부족한 실력을 메우기로 한 것. 예순 나이에 수영을 새롭게 시작한 분들도 수두룩 하지만, 나이 마흔도 20~30대와 비교해서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들 20~30대들은 그냥 풀장에 풀어놓아도 알아서 잠수도 하고 자세도 잡는데,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나로서는 연습이라도 해야 한다고 봤다. 언제까지 기초반 꼴찌로 '어푸어푸'할 수 없지 않은가.
자유수영시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점심때 수영장으로 갔다. 유아풀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유아풀장에 들어가기 전 유튜브로 '수영 호흡법', '기초 발차기' 등을 봤다.
역시나 유아풀은 한적했다. 바깥에 가드를 보는 강사들이 있었지만 유아풀까지는 보지 않았다. 유아풀에서는 익사하기도 힘들기 때문. 그곳에서 어푸어푸와 발차기까지 응용했다. 유튜브에서 봤던 대로. 어찌나 신나게 발차기를 해댔던지, 주변에 있던 가드 선생님이 와서 '물 튀긴다 살살해라'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연습하면 되겠구나'
결론은 이렇다. 아무리 강습을 받는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자리라는 것. 공부도 그렇지 않았던가.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도 집에 와 복습을 하지 않으면, 혹은 따로 시간 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잊어먹곤 하지 않던가. '반복 숙달'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