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外)

나이 40에 쪼랩이 되어보니...

by 팟캐김

수영 예찬론자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 자신과 직면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물론 어떤 운동이든 입문에서 초보로 넘어갈 때가 가장 재미날 때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수영이 다른 운동과 다른 장점은 분명 있다.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라는 뜻은 옷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지위를 얘기한다. 수영장에 가서 사람들을 보면 누가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수영 실력과 매끈한 몸매 정도라고나 할까. 몸매도 물속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다. 수영복과 수영모자, 물안경이 있다고 하지만 비싸지 않다. 물안경과 수영모는 1만 원대 이하 제품이 수두룩하다. 비싸다는 선수용 제품도 몇만 원 정도다. ‘장비빨로 운동한다’라는 게 통하지 않는 운동 분야가 이곳인 듯하다. 제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물질을 제대로 못하면 맨 뒷자리로 가야한다. 강사의 잔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과 직면한다’라는 얘기는 내가 가진 육체적 한계를 직접 체감한다는 뜻이다. 어떤 운동이든 입문자는 자기가 가진 육체의 한계를 느끼기 마련이지만, 수영은 그런 경향이 더 뚜렷하다. 남이 어떻게 하든 간에 물속에서는 내 호흡과 내 물질에만 집중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어느 정도 실력이 나아지면 기록에 신경을 쓰게 되지만, 남과의 기록 비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예전보다 폼이 더 좋아지고 호흡이 나아지면서 앞으로 나갈 뿐이다.


뒤늦게 수영을 시작한 이점 중 하나로 ‘초심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나이 40 넘고 직장 생활 10년 정도 넘어가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일쑤인데, 수영은 자극이 된다. 회사에서는 중견이고, 가정에서는 가장이지만, 수영장 안에서는 ‘쪼랩’ 막내일 뿐이다. 우리 사회 ‘현실 막내’처럼 사회생활을 할 필요는 없지만 ‘뒤처져있을 때의 심정’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swimmers-79592_640.jpg 출처 : 픽사베이


◇누구나 쪼랩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운동이나 일자기계발이든 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해본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특히 '도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는 더욱 어렵다. 초심자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고 때로 이 시행착오는 누군가의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 누군가는 그 분야를 먼저 시작한 선배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할까. (나란 존재도 내가 속한 조직에서 어느샌가 비웃음을 선사하는 게 된듯 하다)


어느 조직, 어느 분야에나 선점자가 있고, 입문자는 그들 밑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자기 정체성의 파괴' 과정을 겪는다고나 할까, 그 분야 안에 오면 철저하게 '기존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좋은 말로 이를 '적응'이라고 한다. 그전에 내가 했던 습관과 생각 가치관을 어느정도 내려놓고 '순응'하면서 해당 조직과 분야에 접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회학에서는 또 '사회화' 과정이라고 한다.


이런 사회화 과정은 누구나 겪는다. 어린이라면 입학, 사회 초년생이라면 입사, 경력자라면 이직 등이다. 한국의 20대 초반 젊은 남성이라면 군대에서 이를 절절히 겪게 된다. 기존 선점자 혹은 선임들의 '텃새'를 겪으면서 그들과 '한 무리'가 되면 적응의 과정은 완성된다.


'우리가 된다'라는 상징적 의미가 대학에서의 '사발식' 등의 과정이 아닐까. 혹은 첫 오리엔테이션(OT)에 가서 선배들로부터 겪는 '불합리한 행위' 등이다. 선배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이를 후배가 받아들이면 '한 무리로서 합류하겠다'라는 의지를 내보이는 식이 된다. 군대에서 선임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힘들게 하면서 후임이 따라오는지 그렇지 못한지 보믄 것도 '그 의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일게다.


음성적으로 진행되면 가혹행위가 되고 양성적으로 진행되면 자격시험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다. 먼저 그 분야와 조직에 있는 선임들이 내놓는 과제를 후임들이 풀고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합격'이라는 기준을 주는 것. 특정 분야와 조직이 뭇 사람들로부터 선망받을 수록 합격의 기준은 높아진다.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입사 시험 등이 그 예다. 이 시험은 후임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후임들에게 '시련'을 주는 과정도 포함한다고 본다. 수험생활이 좀 힘든가. 합격과 불합격의 불확실성을 안고 수년간 시간을 투주한다는 것 자체가 시련이 아니던가.


◇회사가 주는 것들, 과연 내것일까?


문제는 이런 어려운 과정을 뚫고 들어와 '선임'으로 들어 앉았을 때다. 혹은 들어갈 때는 비교적 어렵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선호받는 조직'이 돼 입장이 바뀔 때 등이다. 내부 조직에서 기득권을 만들고 잠재 도전자들을 견제하면서 여러 시련을 주는 일을 하게 된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은 윗선으로부터는 '너도 올라올 수 있어'라면서 희망고문을 받고, 아래로부터는 '너는 이것밖에 안돼'라면서 자기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한다. 어쩌면 후임의 실력과 근면성이 앞서는데도 단지 '먼저 들어왔다'라는 이유로 이를 당연시 여기는 것 등이다.


어쩌면 이들 선임 중에는 너무나 쉽게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입사하던 당시, 지원자가 적어 경쟁률이 낮았거나, 혹은 운이 좋아 입사한 사람들이다.(부모나 친척 지인의 사회적 자본이 작용한 경우가 왕왕 있는 경우) 단지 운이 좋아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인데, 마치 자기의 성과인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후배나 후임들의 실력이 더 좋을 수도 있다.


despaired-2261021_640.jpg 출처 : 픽사베이


직장에서 10년 이상 지나고 어느정도 위치가 확고하게 되면,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직장내 자신의 위치에 도취돼 '대접 혹은 대우'를 받으려는 경향 등이다. 직장내 내 위치나 지위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를 너무 쉽게 잊는다. 내 것이 아닌데.


3년 전에 국내 대형은행 은행장과 식사할 일이 있었다. 지금은 대형 금융지주 회장이 돼 있는 분인데, '고졸신화'로 이름난 분이다. 상고를 나와서 은행에 들어왔고 주경야독으로 대학까지 마친 사람이다. 40년 재직이 목표라던 그 분이 했던 말이 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여기 있는 것들이 다 내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은행장이라는 거, 남들이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언젠가는 다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내것이라고 생각했고 누렸는데 막상 퇴직할 때가 됐을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가는 상실감. 너무나 크다. 선배들 중에 그 상실감을 혹독히 겪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래서 나는 내 관용차에 내 구두조차 놓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금융권의 한 임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젊어보인다'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도 퇴직하는 순간 팍 늙는 게 보인다고. 재직할 때보다 자기관리에 소홀히해지는 게 있겠지만, 그 상실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회사에 있는 것들 혹은 내가 사회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내 것이 아님'을 명확히 인지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내것 아님에 대한 집착을 줄이면 주변 사람들을 보는 인식도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수영과 같은 운동 혹은 동호회 활동은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다. 그 '시련의 과정'은 대부분 기본기를 다지는 기간인 것이고, 그 기간만 넘기면 즐기면서 할 수 있다. 수많은 사회화 과정을 겪어왔던 50대 이상 중장년들이 꾸준하게 수영을 하는 것을 보면, 수영 입문은 힘들지만 꽤 해볼만한 과정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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