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이 20년 정도 계속 된다면?
사람이나 경제나 공통점이 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굴곡'을 꼽고 싶습니다. 굴곡은 상하로 꺾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요 꼭대기와 골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누구가 됐든 골짜기와 꼭대기를 오가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늘 주장해 왔듯, 정점과 저점을 오가는 원리가 사람의 인생과 사회, 경제에도 빠짐없이 반영이 됩니다. 공기를 가르는 화살도 파동의 모습으로 날아갑니다. 활 시위에서 시작된 운동 에너지가 화살촉까지 전달되면서 나타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을 때까지 꾸준히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우리 경제도 수십년 동안 몇번의 위기와 호황을 겪어왔습니다. 잘 알려진 위기로는 1970년대 중동 오일 쇼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호황기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정점으로 이어졌던 1990년대가 있습니다.
세계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1930년대 세계경제 대공황을 겪기 전까지, 꾸준한 성장을 겪어왔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7세기 산업혁명 이후 이어진 대항해시대, 제국주의 열강의 대결, 20세기 세계대전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진 것 같지만, 돋보기를 가져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19세기말에 있었던 '디플레이션'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0세기 세계 대공황에 가려 역사책 등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내용이긴 합니다. 저희 경제유캐스트에서도 두 번 정도 소개를 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19세기 '세계 대불황'입니다.
사실 19세기말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대결이 무르익을 때였습니다.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일본, 힘을 잃고 쇠락한 청, 세계 주도권을 쥔 영국, 도전자가 된 미국과 독일 등이 얽혀 있던 때이기도 합니다. 국토와 자원, 사람 수가 비교적 적었던 조선은 신흥 강국 일본의 먹잇감이 됐습니다. 보이는 세계의 전부가 중국이라고 고집하고 있다가 호되게 당한 것입니다.
이 때 제국주의 열강들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디플레이션에 대한 처방,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 등이 이론적으로 구비돼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뭘 해야 할지 몰랐던 때입니다.
나름의 타개책이 신시장 확보, 즉 '배후 소비지의 확장을 통한 불황의 탈출'이었고, 이에 따른 식민지 경쟁이 불타올랐던 때이기도 합니다. 중국을 비롯한 조선, 인도 등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정규 군대까지 있던 국가들의 식민지화도 진행이 됐던 것이지요.
이때 영국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여럿 있긴 합니다만, 축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넷플릭스의 드라마 '잉글리쉬게임'을 추천합니다.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일을 하지 않은 노동자'가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스포츠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초기 영국 축구의 발달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영국 노동자들의 삶이 어땠는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잠깐 잉글리쉬게임 얘기를 하면서 갑시다.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 영국의 프로축구 리그는 그 시작이 1871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FA컵이 시작점이었습니다. 초기 영국 축구는 순수 아마추어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젊은 부호와 귀족들이 즐겼습니다.
하기야 일반 노동자들은 즐기고 싶어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야 스포츠란 것도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1879년 노동자 축구팀 다웬FC가 귀족들이 모인 명문 '올드 애토니언스'에 도전하면서 드라마의 스토리는 시작합니다. 당시로서는 사회 주류와 비주류 간의 극적인 대결이었던 셈입니다. (최소한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묘사합니다.)
다웬FC의 에이스이자 극중 주인공인 '퍼거스 수터'는 당시로서는 오늘날에도 최초의 프로 선수로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다웬FC의 구단주이자 소규모 방직공장 사장은 수터를 스카우트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축구를 잘한 이유가 컸습니다. 수터는 이후 더 크고 좋은 팀으로 옮깁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불황을 걱정하던 귀족들 간의 대화 부분입니다. 공장주, 즉 자본가들은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노동자들의 주급을 줄이겠다'고 합니다. 축구 선수들이 섞인 노동자들은 반발합니다. 축구 대결을 앞두고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극적인 갈등으로 연출되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이때 영국 경제는 불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삶 또한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축구라는 스포츠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알릴 또다른 장(場)이 열린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왜 노동자들의 임금은 떨어지고, 자본가들은 제품을 ‘못 판다’고 툴툴거릴까요?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을 영국 경제가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조반나 아리기 등 여러 사회·경제 학자들은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약 23년간을 '대불황기'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전 최초의 글로벌경기침체 시기였습니다. 영국 뿐만 아니라, 영국과 금융·무역망이 연결된 나라들이 함께 불황을 겪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불황을 겪는 과정을 봅시다. 공급과 수요, 둘 간의 균형이 깨지면 불황이 발생합니다. 보다 정확히는 공급만큼 수요가 따라오지 않으면 불황이 초래됩니다.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게 불황을 뜻한다면 말이지요.
이런 불황은 두가지 요인에서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수요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걱정하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뽑아내는 제품의 수는 그대로인데 인구가 늘지 않고 정체되거나 준다면, 물건은 팔리지 않게 됩니다. 인체로 비유하자면 대사증후군에 노화까지 겹쳐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두번째는 수요도 어느정도 늘고 있고 공급도 늘고 있는데, 공급의 속도가 더 가파를 때입니다. 공급이 가파르다? 기술이 발달해 생산 단가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생산력이 높아질 때입니다.
19세기말은 어떤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두번째입니다. 17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계생산기술이 고도화되어 인간 노동을 대치하던 때입니다.
잉글리쉬게임에서도 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계의 도입 등으로 노동자들의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나는 이들이 생기면서, 어쩔 수 없이 자본가들이 요구하는 '주급 인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150년전이나 지금의 우리나 임금노동자들의 걱정은 별다를 게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단순 노동을 기계가 해줬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고도화된 숙련 노동 혹은 정신 노동도 인공지능(AI)가 대치하게 됩니다. 우리의 일자리 걱정이 괜한 걱정이 아닌 것이죠.
19세기 노동자들은 지금 우리 상황보다 더 암담했습니다. 사회 복지라는 개념이 없었고 노동자들의 연대도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이들의 상황과 상관없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자본주의 경쟁은 극대화됩니다. 보다 많은 생산품을 상대 나라의 기업보다 싸고 많이 팔기 위한 목적이죠. 기술의 발달은 영국 뿐만 아니라 후발 주자였던 독일과 미국 등 다른 산업국의 생산력도 높입니다.
조반나 아리기의 사회학 저서 ‘장기20세기’(영문명 The Long Twentieth Century)를 보면 한 통계가 나옵니다. 1813년 영국의 방직 산업에는 20만명 이상의 수동 직기 직공이 있었습니다. 1860년이 되면 40만개의 동력 직기가 가동하게 됩니다. 수동 직기 직공은 사라지게 됩니다.
생산품은 늘어나게 되고, 이를 사줘야 하는 다수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다 보니, 기업들의 재고는 쌓이게 됩니다. 팔리지 않는 물건에 가격은 떨어지고.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비지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문명국이었습니다. 초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금과 은 등 원료를 공급해줄 수 있는 지역이나 덜 발달된 나라가 식민지 수탈의 대상이었다면, 이 때는 소비지를 찾는 경쟁이 더 커졌습니다.
다만 영국 입장에서 문제는 19세기에서 20세기를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경쟁자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독일, 러시아, 신흥 강대국 미국까지 만만치 않게 됐습니다.
실제 대불황기였던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영국은 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영국의 물가가 40% 하락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경제 성장기였던 1960~1980년대를 거친 후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이었던 것입니다.
19세기말의 또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바로 영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구 유럽 세계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도전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부상했습니다. 1873년부터 1896년까지 겪었던 대불황은 이런 체계 변화를 촉진했습니다.
1873~1896년 대불황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호황과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제 순환의 구조는 19세기나 21세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제 순환기 속에 국제적인 질서가 바뀌곤 합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구조적인 장기 침체에 들어와 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수요 부진입니다. 기업들이 생산하는 재화를 소비자들이 전부 사줄 수 없습니다. 시장에 공급이 남아도니, 기업이 생산한 물건의 가격은 더 떨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 없는 성장은,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더 떨어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월급이 오르지 않거나, 혹은 깎인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더 소비를 늘릴 수 있겠는가.)
작금의 국제 현실도 19세기 영국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때 영국은 미국과 독일의 도전을 받았지만, 21세기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20세기 도전자였던 소련은 광대한 영토와 국방력을 갖고 있었지만 경제력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다른 20세기 도전자 일본은 우수한 제조업 역량을 갖고 있었지만 국방력과 국제적인 영향력면에서 미국에 상대가 안됐습니다.
현재 중국은 광대한 영토에 엄청난 인구, 제조업 역량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방력까지 신장하고 있습니다. 이전 도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과 중국 간의 다툼이 단순한 ‘투닥거리’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가지 더 걱정스러운 점. 이런 불황의 시기가 오래될 수록 정치 체제는 불안해진다는 점입니다. 한정된 일자리와 먹거리를 놓고 내부 갈등도 커지게 됩니다. 서로가 어려워지는 시기다 보니,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커집니다.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는 시기입니다.
정치 지도자들한테는 고민의 시기입니다. ‘이를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이때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히틀러와 같은 선동가와 그를 따르는 파시스트 집단들이 썼던 방법입니다. 이들이 내세운 2차세계대전의 명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은 19세기 대불황기와 20세기 세계경제대공황을 겪으면서 쌓여왔던 갈등이 해소되는 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전쟁만큼 큰 수요를 창출하는 이벤트가 적을 뿐더러, 20세기 세계대전은 총력전의 형태로 진행되면서 국가 체계도 변화시켰습니다.
온 국민을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중앙집권화 된 국민주권국가의 효용성이 입증되면서 세계 각국은 이와 비슷한 국가의 양태를 띄게 됩니다. 중국과 미국이 리더를 뽑는 과정과 정치 체제는 각각 다르다고는 하나 언제든 국민들을 총동원할 수 있는 체제로 공통점을 갖는 것입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지난 19세기 대불황기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지금은 돈을 풀어 고통을 완화시키는 요법’을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요법도 장차 어떤 부작용을 낼지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부작용이 이미 나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회 혼란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죠. 19세기 대불황이 지금의 우리와 무관치 않은 이유입니다.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고 하는데, 우리는 다가올 불황을 어떻게 피해갈까요? 혹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100년전 우리 조상들이 했던 대로 가장 쉬운 방법을 찾을지, 혹은 또다른 제3의 길을 찾을지 주목되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