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팟캐김 Dec 12. 2021

[경제위기란?-7]20세기 대공황

21세기 한국에 시사하는 섬뜩한 교훈 

이번 편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경제대공황'에 대한 얘기입니다. 20세기 최대 경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의 직접 원인으로도 꼽히기도 합니다. 


이 경제대공황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그 여파가 10년 가까이 계속됐던 것처럼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까지 관통합니다. 독일과 일본 등의 군국주의화가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제대공황은 1929년을 기점으로 일제히 일어난 게 아닙니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전조 현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미 1927년 쇼와 금융공황을 겪는 등 내부 경제 불안이 심하던 때였습니다. 시중은행의 10%가 문을 닫을 정도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었던 일본이 이 정도라면,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었던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등은 말할 나위가 없었죠.  


이 와중에 미국만은 호황을 달립니다. 1차세계대전의 참화를 직접 겪지 않았던 이유가 큽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거대하고 내수 소비 중심으로 성장해왔던 점도 있습니다. 자동차와 라디오 등 이전까지 없었던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면서 미국은 산업 대국이자 소비 대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오늘은 사건의 나열보다 현재 상황과 비춰보면서 20세기 경제대공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참고했던 책은 경제금융위기 이야기에서 고전같이 된 '금융투기의 역사'에 '금융으로 본 세계사'와 '금리의 역사', '월스트리트 최고의 투기꾼 이야기' 등입니다. 



전조 1 - 부동산 거품 형성과 붕괴  


금융 위기, 크게 봤을 때 경제 위기로 가는 전조 중 하나는 자산시장 내 거품 형성입니다. 쉽게 말해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일입니다. 부동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자산입니다. 돈만 있다면 사고 싶은 자산인 것이죠. 


여러분도 만약 100억원의 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요 쇼핑목록 중에 주택이나 건물, 땅은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어디에 옮길 수도 없고 썩지도 않아요. 지금 내가 지금 누릴 수 있고, 미래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습니다.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어요. 


경제 위기의 전조 중 하나는 이런 부동산 가격 급등입니다. 물론 경제 규모가 커지고 통화량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릅니다. 토지를 중심으로 부동산의 양은 거의 고정돼 있는데, 돈의 양이 늘어나니까요. 


남는 돈이 넘친다는 얘기가 됩니다. 왜 돈이 넘칠까요? 국가적으로 돈의 양이 늘어난다는 것은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돈을 많이 풀었다는 뜻이 됩니다. 공급한다는 것이죠. 돈을 쉽게 빌려 갈 수 있도록 이자율을 낮추는 것이죠. 경제대공황 전 미국 경제도 이 같은 상황을 거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금리의 역사'를 보면 미국은 자급자족성이 높은 경제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드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높은 공업생산력을 갖고 있었죠. 유럽이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국제 자본의 주요 원천이 됐습니다. 순 채권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잉여자금이 몰리게 됩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주요국들이 거덜났는데 유일하게 미국만 발전하고 있다.’ 

실제 전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 1920년대 후반 미국만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1928년 12월 4일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미국은 지금처럼 활기 넘치는 번영을 누린 적이 없었다. 모든 국민이 행복한 가정 생활과 안정된 직장 생활을 누리고 있다. 대외적으로 평화가 전 세계의 주류가 됐다."고 자평했습니다. '우리에게 불황이 뭐에요?'라는 얘기입니다. 


일본의 거품 경제 붕괴 편에서도 얘기를 하겠지만, 심리적 호황이 계속되면, 이에 따른 관성에 따라 투자자들은 투자를 늘립니다. 그 투자의 대상으로 생산력을 늘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업 주식과 부동산 등도 됩니다. 부동산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심리적 호황기'에는 값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으로본 세계사’에서는 당시 미국인들이 경제적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투기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투기는 무엇일까요? 빚을 내서 모험적으로 위험 자산에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는 자산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성공한 전례를 주변 사람에게서 봤을 때 투기 열풍이 불게 됩니다. 


하나 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게 된 사람들이 놀고 즐길 것을 찾게 되죠. 이들은 어디로 갈까요? 바로 관광지입니다. 부동산 투기꾼들은 미국내 관광지로 인기있는 플로리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을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1923년과 1925년 사이 플로리다 땅값은 5~6배 정도 폭등합니다.  

마이애미시의 인구 7만5000명 가운데 부동산 중개인이 2만5000명이라고 하니 말 다한 것이죠. 부동산 회사는 2000곳에 달했습니다. 플로리다 사람들은 '오늘 안 사면 내일 못 산다'라는 말이 입버릇이 됐습니다. 우리도 이런 말을 하죠. "오늘 가격이 제일 싸다." 


21세기 들어서도 경제 위기 직전 관광지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경우는 흔합니다. 이후 경제 위기가 불거지고 쓸 돈이 부족해지면 관광지에 오는 사람들이 급감합니다. 관광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곳 경제는 타격을 입게 됩니다. 


유로존에 편입돼 2000년대 관광 호황을 누렸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한 예가 됩니다. 이들 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쇠락했고, 유로존 해체 위기의 주범으로까지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그 직전에 뭐가 있었나요? 바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폭망하면서 은행 대출 부실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이죠. 


1920년대에도 비슷하게 부동산 경기가 출렁입니다. 1926년 미국내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는 시점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세 나라 중앙은행장이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찾습니다. ‘금리를 낮춰달라’고 요청하러 온 것이죠. ‘달러 발행량도 늘려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입장에서는 재건 사업에 쓸 돈도 부족한데, 자꾸 미국으로 돈이 유입이 되는 것이었죠. 아까도 말씀드렸죠, 미국 홀로 호황을 달리고 있다면, 세계 자금은 어디로 몰리겠습니까? 바로 미국이죠. 

영국, 프랑스 독일은 왜 미국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청했을까요? 금리가 낮아지게 되면 미 국채 등 달러화 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지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 미국으로 가는 자금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 시점에 미국 정부도 나쁠 게 없어 보였습니다. 금리를 인하해서 말이지요. 대출 이자율이 인하되면 하강하던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통화량 증가는 곧 주식 시장 등 자산 시장의 상승으로 이어지니까요. 1927년 한 해 동안 다우존스 지수는 380포인트 상승합니다. 미국 자동차 생산량도 연간 10%씩 증가하면서 이런 강세장을 뒷받침합니다.  


전조2- 신기술 새 시장의 발달 


경제위기 개론에서 말씀드렸는데, 경제위기가 오기 전에는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그 '좋은 일'은 투자자에게 좋은 일입니다. 돈을 벌 새로운 기회입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새롭게 물건을 팔고 원료를 들여올 수 있는 신대륙의 발견이 '좋은 일'이었고, 17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는 '방직기계 등 기계공학의 발달'이, 20세기에는 혁신적인 소비 상품이 ‘좋은 일’이 됩니다. 새 시장이 열리면 선점자는 큰 돈을 벌기 마련입니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투자금이 몰립니다. 


투자금이 몰리면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좋은 거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투기 열풍'과 겹치게 되면 과도한 거품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닷컴기업 열풍 때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증시 호황과 더불어 바이오나 모바일 관련 주식, 이른바 성장주에 돈이 몰리는 상황과도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1920년대는 자동차 업종과 화학섬유업종, 전자 업종이 가히 세계를 바꿔 놓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인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망사업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듭니다. 전체 산업이 확장되면서 유사 제품이 많이 쏟아져 나옵니다. 전쟁을 거치면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 놓은 미국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이 즈음 자동차와 라디오 등 신문물이 등장합니다. 자동차는 말을 대체했고 라디오는 빠르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됩니다. 19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게 사람들의 이동 능력과 정보 전파 역량이 커진 것이죠. 


이중 자동차는 1920년 미국 자동차 수가 700만대에서 2300만대로 폭증합니다. 이 시장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커집니다. 1925년에서 1928년 사이 제너럴모터스의 주가가 10배 이상 치솟습니다.  100년전에는 제너럴모터스가 지금의 애플과 같았다는 것이죠. 


1920년 웨스팅하우스사에 의해 처음 세상에 등장한 라디오는 온 나라에 유행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라디오 판매 대수는 1922년 6000만대에서 1928년 8억4300만대로 급증합니다. 관련 회사 주식은 폭등했고요. 주당 순이익(PER)이 73배까지 올랐습니다. 지금의 카카오 못지 않은 주당 순이익이죠. 


이 라디오는 거의 실시간으로 다른 지역과 돈 번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주식과 무관한 사람들에까지 투기 열풍을 이끈 것이죠. 지금의 '주식방'이나 '작전세력'과 같은 비공식적인 투기그룹도 형성이 됩니다. 1928년 12월, 1929년 3월 주식 시장이 휘청하는데, 그 순간에도 주식 시장 활황세를 믿는 세력들은 군중들을 개미지옥처럼 끌어들입니다. 


사람들이 주식 시장 활황을 믿었던 것은 미국 기업들의 생산력에도 있습니다. 돈을 계속 잘 벌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실제 미국내 공업 생산성도 크게 늘어납니다. 제품도 좋아집니다. 연구 개발 투자 덕분입니다. 한 예로 미국내 연구개발 투자액은 1919년부터 1927년까지 50% 이상 확대됐습니다. 당시 전신회사였던 AT&T는 무려 4000명이 넘는 연구 인력을 확보하고 있었어요. 1928년에만 10만건의 특허를 출원할 정도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세계대공황이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연결된 요인 중 하나를 이 같은 생산성의 극대화로 보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 폭락에 따라 소비 심리는 떨어져 있는데, 값싸고 좋은 제품들은 너무나 많이 생산됐기 때문입니다. 


이들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업은 투자와 대출을 받았습니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고스란히 재고로 가게 되고, 돈이 돌지 않으니 파산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은행과 투자자, 주주 역시 동시에 망하게 됩니다. 



전조3 - 거품 우려, 금리의 인상 


앞서 말씀드렸어요.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던 때에 영국과 독일, 프랑스의 은행장이 금리 인하를 연준에 부탁을 합니다. 당시 호황으로 자신감이 있었고, 미국 정부 자체도 통화정책을 느슨하게 하고 있었던 터라 금리를 낮춰 줍니다. 1927년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의 요청을 받아 재할인율을 3.5%로 낮춥니다. 


여러분 여기서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주식과 같은 자산 투자를 하는 데 있어 ‘금리의 추이를 반드시 봐야한다’는 점입니다. 금리가 높아질 때와 낮아질 때를 유념해서 보셔야 하는데, 금리가 낮아지는 때는 돈의 양이 늘어납니다. 이 돈은 주식 등 자산 시장에 몰리게 됩니다. 덕분에 주식 가격은 오르게 됩니다. 이때가 주식 투자 적기가 되는 것이지요. 


1920년대 당시 기업들은 돈을 잘 벌고, 정부도 나서서 호황임을 자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들도 투자와 투기에 눈을 돌리고 있는 와중에 금리까지 낮아지면서 주식 투자 열풍은 더 커집니다. 라디오 같은 신문물은 이를 부추깁니다. 시장에 돈이 몰려들고 주식 가격은 치솟습니다 


1980년대 일본 거품 경제의 정점도 바로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췄을 때입니다. 주식과 부동산에 돈이 몰리고, 거품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립니다. 일본 기업들의 체력이 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가자 자산 시장 거품은 당장 빠지게 됩니다. 


1920년대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식 투자를 위해 ‘빚내 투자’까지 하는 사람이 늘자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1928년 2월부터 올리기 시작해 1929년 8월 6%까지 올립니다. 대폭락 2개월 전입니다. 


더불어 연방준비제도는 긴축통화를 시작합니다. 은행들의 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죠. 2021년우리나라 금융 당국이 시중 은행들의 대출을 조이는 것처럼요. 

은행들은 서둘러 대출금을 거둬들이고 증권 중개인의 보증금 대출을 집중적으로 환수합니다. 이 와중에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올려 폭리를 취합니다. 금리 상승기 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금의 우리나라 은행들 뿐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모든 사람이 주식 시장의 긍정적인 면만 봤을까요? 아닙니다. 1928년부터 산발적인 폭락과 회복이 있었고, 주식 전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뺄 때가 됐다고 여기고 있었죠. 


1929년 9월 5일 미국 유명 통계학자 로저 밥슨이 연례 미국경제인회의에서 '증시 붕괴가 임박했다'고 경고합니다. 10월에는 미국 연방산업지수, 철강지수가 모두 하락합니다. 기업들의 실적까지 악화되면서 주식 시장 하락의 채비가 이미 갖춰진 것이죠. 



폭락의 시작 - 검게 변한 시장 


10월24일 목요일. 역사적으로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리는 이날이 뉴욕증권거래소 역사 가장 처참한 날이 됩니다. 뉴욕시 은행가들이 폭락으로 빠지는 시장을 구하기 위해 2000만달러를 쏟아 붓기도 했죠. 돈 있는 사람들이 나서자 증시가 다시 살 것이라는 희망적 기운이 돌았지만 10월29일 화요일 당일 주가 지수가 최고 386포인트에서 298포인트로 하락합니다. 뉴욕 증권거래소 역사상 최악의 날로 기록됩니다. 

이날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은 파산한 기업만 14만개, 은행은 1만개. 실업률은 32%에 달했습니다. 


단기적인 폭락과 회복이 있었다면 자산가들도 돈을 벌었겠죠. 그런데 경제 전체가 폭망하다보니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돈을 빌려 투자를 했던 사람이 망하자, 이 돈을 빌려줬던 사람도 따라서 망하게 됩니다. 신용위기로까지 불거진 것입니다. 


이제 곡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호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유명 자산가였던 윌리엄 듀란트라는 사람은 1936년 100만달러에 달하는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 선고를 받고 뉴저지의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평생 저축한 돈으로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절규했고 150억달러 규모의 시가 총액이 사라졌습니다. 농담삼아 호텔 직원들이 손님에게 '자살할 방이 혹시 필요하신가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시장에 맡겨 놓았는데, 돌아온 것은 파국이었습니다. 정부가 보기에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가 그때까지 주창해왔던 '자유방임주의적 정부' 철학은 재수정됩니다. 


처방 - 돈을 풀어라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지폐 발행량을 엄청 늘립니다. 긴축통화 정책에서 돌아선 것이죠. 1929년 긴축 통화정책으로 채무자 부담이 나날이 증가했고, 채권자 역시 빌려준 돈을 못 받아 파산을 하기도 했습니다. 


통화 발행량을 늘린다는 얘기는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죠.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채무자의 부담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게 됩니다. 10%의 물가상승률을 가정한다면, 1년전 100만원의 가치가 오늘날 90만원이 되는 이치죠. 

통화량이 늘면 또 이자율이 하락하게 됩니다. 돈을 쉽게 빌리고, 쉽게 갚으면서 신용도가 좋아지는 효과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채권자는 돈을 안 떼여서 다행, 채무자는 그나마 갚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8년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 우리가 '가혹하다'고 했던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시장금리를 급격히 올렸고 이에 따라 기업들이 도산했고 실업률이 높아졌습니다. 이 처방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우리 사회를 극심한 혼란기에 밀어 넣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고통 덕분에 대우나 한보 같은 부실 대기업들이 퇴출이 됐고 삼성과 LG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긴 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논란이 많긴 합니다. 결국 그들 기업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이 늘면서, 수출 대기업들이 덕을 봤다고 할 수 있고요. 

두번째가 신용대출 확대입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자영업자들에 대한 긴급 대출이 바로 이 같은 경제 정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하겠죠. 이런 신용대출의 확대는 '좀비기업의 퇴출 기회를 잃게 한다'라는 비판도 있지만, ‘망하지 않을 기업에게 자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세번째, 재정 적자를 늘렸습니다. 적자재정의 확대입니다. 1933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 연방 예산 지출은 592억달러였는데 이중 252억달러가 적자재정으로 편성됐습니다. 

이런 요법으로 1930년대 후반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2차세계대전을 맞으면서 상황은 반전되기에 이릅니다. 전세계적인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규모 수요가 창출됐고, ‘수요 부족’의 고민이 해결됩니다. 


1929년 경제대공황은 뉴욕 증시 투기꾼들의 탐욕에 따른 가격 거품과 이에 따른 붕괴로 초래된 것 같아 보입니다. 반면 학자들은 ‘늘어난 공급’과 비교해 ‘부족한 수요’를 들고 있습니다.  


앞서 19세기 경제대불황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생산력의 증대로 많은 제품이 생산됐고, 이를 위한 투자가 집행됐는데,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불황이 온다’고 했어요.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수요' 즉 사주는 사람들이나 주체가 부족하다는 얘기입니다. 많이 생산했는데, 그게 팔리지 않는다면 재고가 되고, 기업에게는 손해가 되는 것이지요. 


시사점 : 21세기 한국이 직면한 엄혹한 현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대규모 수요를 창출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당장 군수체제로 돌아섰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일주일에 하나씩 항공모함을 뽑을 정도가 됐습니다. 대규모 생산을 해서 태평양에 때려박는다고 해도, 그 와중에 생산과 소비라는 사이클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장 환호했던 곳도 일본이었습니다. 전쟁 후 수요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일본이 미국의 군수기지이자 군사적 배후지로 거대한 수요를 일으킬 수 있었지요. 

1960년대 한국이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으로 베트남 전쟁을 꼽습니다. 미국이 일으킨 거대한 수요의 혜택을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1차적으로는 군인과 군무원들이 파견돼 얻어온 외화를 예로 들 수 있죠.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이 만든 물건을 누군가 사줘야 하는데, 당시 가난했던 우리 국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았죠. 그래서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을 온나라가 노력했는데, 베트남전 참전은 이런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효율적인 방안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 생각해봅시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어떨까요? 앞으로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수요 부족 국가에 들어갈 것입니다. 초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영향입니다. 잠재성장률 하락이란 얘기는 다시 말해, 우리가 만든 물건을 사줄 소비자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수출은 어떨까요? 2000년대처럼 싸면서도 품질 좋은 제품으로 세계시장에 어필할 수 있을까요? 삼성과 LG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힘들 수 있습니다. 신흥국들의 도전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앞서 겪고 있는 일본은 어떨까요? 1990년대 반성하던 모습을 철저히 잊고 2000년대부터 극우주의 군국주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 일본 정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즉 수요 부족을 겪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일거에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안을 찾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은 내부 불안을 전쟁으로 풀려고 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1930년대 중일전쟁,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있습니다. 전후 일본 부흥의 기점은 1950년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이런 맥락 때문인지 우리 정부의 ‘종전선언’ 방침에 일본 정부가 대놓고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계속 전쟁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은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의 유일한 치적은 바로 경제성장입니다. 경제적 성과가 퇴색된다면요? 


이들은 어떤 가정을 할까요? 1920년대 미국의 예를 봅시다.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참화를 직접 겪지 않은 덕분에 호황을 누렸습니다. 순채권국으로 말이지요. 쉽게 말하면 남의 나라 남의 영토에서 일어난 전쟁은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길 수 있어요. 수요 창출 측면에서입니다. 


30년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본, 성장률 하락이 있는 중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최대한 자신들의 영토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 수요 창출과 영역 확장을 노릴 것입니다. 


실제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은 앞서 있던 디플레이션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미국이 가장 큰 수혜를 본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과의 전쟁? 우리 민족의 비극이겠지만, 일본과 같은 인접 나라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최적의 상황이 우리가 바라지 않는 비극적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상 팟캐하는 김기자였습니다.


이전 06화 [경제위기란?-6] 19세기 대불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