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페이지에서 팟캐스트로 그리고 유튜브로
오늘 드릴 얘기는 대선과 플랫폼입니다. 방송과 신문의 힘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는데, 대선과 같은 큰 선거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번 대선을 지난 2002년과 2012년과 각각 비교하고 싶습니다. 각 10년마다 선거 유세 활동의 형태가 너무나 극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만든 대통령 노무현
2002년 대선은 정치 아웃사이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했던 선거입니다. 불과 2001년만 해도 이인제 대세론 속에 민주당 군소 후보 중 하나였습니다.
이때까지의 선거는 어떤 방향이었나. 전통 매체들이 선택하고 집중해서 지원해준 이들의 선거였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 유권자들은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는 선거였습니다. 신문과 방송의 위력이 대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3김 정치가 1990년대 후반까지 20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정치 거물이기도 했지만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주 나온, 친숙한 정치인들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3김 정치 청산을 외치면서 나왔던 인물이 이회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회창이란 인물도 신문과 방송을 통해 나온 보도를 통해 국민들은 알게 됐죠. 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고, 신문들도 이회창에 대해서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대쪽 이미지도 언론미디어가 가져다 붙인 것이었죠.
다시 말하면 정치인에게 있어 방송과 신문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자신들의 재량껏 정치인들을 재단하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방송은 한정된 시간, 신문은 한정된 지면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발굴돼 나올 만한 기회가 적었습니다. 신문 편집자 입장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을 우선적으로 넣을 수 밖에 없었겠죠.
이는 2000년대 들어와 바뀝니다. 우리가 보는 텍스트가 실리는 대상에 신문과 잡지, 책 외에 모니터 상에 나타나는 인터넷 웹페이지까지 포함된 것이죠.
초고속인터넷망이 퍼지고 거기에 접속된 PC들이 늘어나고, PC통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고 동조하게 됩니다. 이때 인터넷전문뉴스통신사들이 나옵니다.
인터넷뉴스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지면의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무한대의 정보를 텍스트로 만들어 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양도 많이 늘릴 수 있죠. 신문이 갖고 있던 단점, '지면의 제한성'을 넘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이 알려지고 적극적으로 호응을 받게 된 것도, 그가 이른바 험지로 가 지역주의, 지역감정을 타파하려고 했던 노력이 인터넷 웹사이트와 팬클럽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그의 활동이 인터넷 사용자들에 의해 가공돼 게시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죠.
한정된 지면을 갖고, 기득권 정권과 유착돼 있던 신문 매체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이죠. 신문과 방송 외에 새로운 정보 매체가 대중화됐고, 이를 통해 나온 첫 대통령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도 그의 팬들이 인터넷 상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신문들이 만든 ‘대쪽 이회창’과는 다른 맥락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신문과 방송 당시 기득권 언론매체와 무관하게 나온 대통령이기에 조선일보 등 기존 매체들과 사이가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 기간에 여러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임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명해진 계기는 1990~1991년 나왔던 드라마 '야망의세월'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대한건설'이라는 회사가 나오는데 거기에 나왔던 전도유망한 젊은 사장이 바로 이명박이었습니다. 이 역할을 MB정권 시절에 문화부 장관을 했던 유인촌이 했습니다.
이 드라마로 인해 이명박이란 사람이 재평가 받았습니다. 이후 보수정당에 입당해서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등을 합니다. 그의 업적이 언론미디어를 통해 장식됩니다. 2007년 대선에서도 승리해서 대통령이 됩니다.
2012년 대선 팟캐스트가 흔들다
2012년 대선을 흔든 게 있으니 바로 팟캐스트입니다. 당시 보수정당 유력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를 문재인 후보가 턱밑까지 쫓아 올라갈 수 있게 한 게 바로 팟캐스트입니다. 2011년부터 나온 정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였던 것입니다.
BBK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혹 사실을 희화화하면서 그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조롱하는 팟캐스트가 대박을 칩니다. 이것도 기존 미디어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한 회당 10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2002년 웹 게시판을 통해 진보 지지층이 결집됐다면 2012년에는 팟캐스트라는 콘텐츠를 통해 정치적 유대감을 갖게 됩니다. 완고한 보수층을 겨냥한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꼼수다의 역할 중 하나를 보면, 이것 덕분에 지리멸렬했던 민주당이 회복하는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이른바 반이명박의 결집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2012년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에서 떠올랐던 인물이 바로 문재인입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지목했던 진보의 기수가 바로 문재인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주목받는 정치인이었지만, 나는 꼼수다를 통해 더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2012년 대선 때 핫했던 인물이 또 안철수입니다. 안철수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2009년 나왔던 무릎팍도사가 크게 한몫했습니다. 의사에서 벤처 CEO로 그러다 카이스트 교수로 살아온 그의 여정이 방송에 나가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를 됐던 것이죠.
저는 이때부터 전통 미디어, 소위 말하는 보수 신문들이 만드는 대선 아젠다가 무너졌다고 봅니다. 한정된 지면과, 이들이 생각해서 만드는 편집, 그리고 이를 보는 독자층. 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지면을 보고 공통된 생각을 했다면 2000년대 이후 2012년을 기점으로 '언론이 만드는 유력 정치인의 전형'은 무너졌다고 봐요.
이런 부분은 일본내 정치 현실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독특한 정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아들이 물려받고, 자민당이 계속해서 집권하고. 국민 여론도 이를 당연시 여기고. 저는 일본내 대중매체 즉 요미우리나 아사히 등 신문과 잡지를 보는 비율이 높은데, 이것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기존 대중 매체의 힘이 워낙 강력하다보니 참신한 정치 스타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튜브가 주도하는 2022년 대선
2022년 대선은 또 많은 부분 달라졌다고 봅니다. 코로나19가 이를 더 부추겼습니다. 뭐냐, 2002년에는 인터넷 웹사이트 게시판, 2012년에는 팟캐스트가 대선 정국을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떠올랐다면, 2022년에는 유튜브가 이런 역할을 하게 됐다고 봅니다. 이젠 방송마저 그들의 기득권을 잃게 된 것이죠. 다원화된 유튜브 채널이 무수히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10년전 팟캐스트와 다르게 유튜브는 전 세대가 아우르면서 보게 됐습니다. 오히려 보수 색체를 띄는 사용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 취재현장에 가보면 실시간 라이브를 하는 유튜버들이 정말 많이 몰려옵니다. 예전에는 방송을 통해서, 방송사에서 짜준 각본대로 보던 대선 후보들의 모습을, 각자 휴대폰으로 각자 보고 싶은데로 본다는 점입니다.
한 예로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7만 가량 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채널 구독자 수는 16만 정도 되고요. 보수 유튜버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데 진보 쪽 유튜버는 비교적 많지가 않아요.
불과 몇년전까지 종편을 보면서 '빨갱이 쉐키들' 했던 분들이 이제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빨갱이 쉐키들' 그러고 있습니다. 정보 유통의 기득권을 방송조차도 잃게 됐다는 뜻이죠.
취재 형태도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 영향이 큰데요, 이젠 각 정당에서 기자회견을 하든 후보의 정견 발표를 하든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로 합니다. 각 정당이 방송사 TV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구독자에게 자신들의 정견을 실시간으로 바로 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가지 못하는 기자들도 이런 실시간 라이브를 보고 텍스트 기사로 옮기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기자들, 즉 전통 미디어 관계자들에 의해 독점됐던 그들 정치 공간이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서 온갖 사람들한테 다 공개되게 된 것이죠. 기자가 기사를 쓰기 위해 보는 장면과 기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보는 장면이 동일 시간에 동시에 공유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윤석열이란 사람이 뜨게 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영상을 보는 시대잖아요.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사람의 발굴을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도 할 수 있게 됐고. 그 사람이 바로 윤석열이란 사람이 되는 것이죠.
현 정부에 불만을 가진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짧게 편집된 윤석열의 영상과 보수 성향 진행자들의 해설을 들으면서 그에 대한 맹신을 하게된 것이죠. 이 영상은 또 보수 지지자들 사이에서 링크 형태로 해서 카카오톡으로 빠르게 퍼집니다.
전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더 강해질 것이라고 봐요. 정치인들도 이전에는 유튜브 매체 출연보다는 방송사나 신문 인터뷰를 더 중요시했는데, 지금은 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유튜브 방송은 이번 대선을 통해서 더 많이 이름을 알렸습니다. 방송사나 신문사들도 유튜브 채널을 따로 파서 이들 정치인들을 만나러 가기도 합니다.
각 정치인들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여기에 자신의 활동상을 올리고 있죠. 낙선된 의원도, 기존 방송 매체에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유튜브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됐어요.
저는 여기서 어떤 것을 느끼는가. 이제 대통령을 뽑는 것도, 혹은 국가 정책 아젠다의 중요성도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튜브는 개인화된 추천 알고리즘으로 내가 가장 잘 볼 것 같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하고, 다른 이들이 또 많이 보는 콘텐츠도 추천합니다.
만약에 유튜브 알고리즘 변수 상에 어떤 외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서 특정 후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의적인 내용만 반복되거나, 혹은 부정적인 것만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보면 내가 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에 유튜브 알고리즘, 다시 말하면 구글이 만들어놓은 세계관이 그대로 이식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확증편향도 문제입니다. 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죠. 내가 가진 생각 외 다른 의견도 봐야하는데, 이를 배제한 채로 가는 것이죠.
신문과 잡지 등 전통매체의 장점은 이런 데 있습니다. 비록 한정된 분량이고, 기계적인 중립이라고 해도 다른 부분의 의견이나 반론을 갖고 균형감 있게 판단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유튜브 채널은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과 같은 혐의로 고발이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정보가 생생하게 들어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판단 기준을 갖고 이번 대선에 임하실 것입니까? 또 앞으로 투표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