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졸업기념 가족여행
1.22. : 국립고궁박물원과 베이터우 스윗 미 온천 리조트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지난 이틀을 복기해 보니 대략 움직였던 장소를 기준으로 근처 지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희가 잡은 숙소는 타이페이메인역에서 가까운데, 첫날 들렀던 중정 기념당과 스린 야시장은 숙소를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뚝 떨어져 있었어요ㅠㅠ(그래서 택시비가 그만큼 많이 나온게야)
오늘의 계획은 오전에 대만국립고궁박물관을 관람하고, 점심 식사 후 베이터우 온천 지역 관광과 온천욕, 그리고 좀 더 북쪽에 있는 단수이 지역으로 가서 노을 구경을 한 다음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복귀하는 것이었느나 계획대로 될 리가 없지요. 급한 일도 없는데 일찍 일어나서 움직일 필요가 뭐 있냐는 딸의 불평에 채비해서 나온 시간이 거의 열시입니다ㅠㅠ
오늘은 이동 거리가 길기도 하고, 한번쯤 지하철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 일일패스는 150대만달러로, 모든 역 안에 있는 카운터에서 판매합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코앞에 있는 중샤오신셍역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계획대로라면중샤오신셩역-타이베이역-스린역-베이터우역-단수이역으로 이동했다가 역으로 돌아오면 되고, 순서대로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경로입니다. 타이베이메인역까지는 호텔에서 두 정거장으로 정말 걸어가도 되겠다 싶은 거리지요. 거기서 환승해서 스린역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타이베이의 지하철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거의 똑같아서 금방 적응이 되고 낮 시간대의 지하철은 붐비지 않아서 쾌적했습니다. 스린역에서 고궁박물관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택시로 이동했는데 버스도 많이 간다고 하네요. 타이베이를 다녀온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권해주는 1순위 관광지이고 둘러보는 데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린다고들 하였으나, 우리 가족은 가볍게 한 시간 반만에 관람을 마쳤습니다. 뭐 2층 서적과 회화 섹션은 ’책이랑 그림인 데 볼 게 뭐 있어‘ 그냥 통과하고, 도자기 섹션에서는 양과 연대에 잠깐 감탄하고, 청동기 섹션은 ‘오 가야 유물과 비슷한데 양이 무척 많구나’ 정도의 느낌으로 지나가니 그 정도면 충분하드라구요. 기획전인 ‘홍루몽’은 뭔가 제목이 친숙한데, 한글 안내문의 문장이 좋아서 좀 더 마음이 가는 섹션이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대표 유물이 취옥백채(옥으로 깎은 배추)와 육형석(동파육 모양으로 조각한 옥)이라는데 안타깝게도 남부분원 순회전시 중이라 저희가 갔을 때는 없었어요ㅠㅠ
아무려나 그 박물관이 그 박물관이지라는 마음으로 짧은 관람을 마쳤으나 저질체력인 저희 식구들은 다들 방전 되어서 택시 승강장 벤치에 널부러졌습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택시호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데 처음 불러 준 택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갔는지 한참을 기다린 후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그랬다는군요. 다시 불러달라고 한 후 눈을 부릅뜨고 택시 번호판을 살펴서 이번에는 무사탑승. 스린역으로 돌아오는 사이 딸이 검색해서 알아 본 비풀(beeful)이라는 우육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바로 옆에 스타벅스 매장도 있어서 잠시 망중한. 그러는 사이 시간은 벌써 세시가 넘었네요.
다음 목적지인 베이터우 온천으로 이동합니다.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둔 수미호텔 대중탕이 목적지입니다. 베이터우역까지는 같은 지하철을 이용하면 되고, 온천이 있는 신베이터우역까지는 관광 모드의 지하철이 베이터우역에서 왕복하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은 온천 박물관을 포함하여 이 일대를 좀 돌아보는 것이었으나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바로 수미호텔로 갑니다. 신베이터우역 출입구로 나오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서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잘 몰라서 숙소의 수건을 한 장씩 챙겨갔는데, 역시 수건이며 샴푸며 모두 욕탕 안에 있고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서 이용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거나 부부끼리 가며 프라이빗 온천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는 장성한 딸이 있으니 그냥 대중탕으로 예약하였습니다. 시설은 한국의 대중탕과 같아서 특별하지는 않고, 유황 온천이라 물이 좋다는데 감동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여행 중에 목욕을 하는 건 언제나 체력충전과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니까요(가격이 1인당 이만칠천원 정도로 싸지 않다는 게 함정이기는 했네요).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여섯시 가까이 된데다 이미 어두워져서 노을을 보기로 한 단수이 일정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기로 하였습니다. 원래 딤딤섬 타이베이역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계획했었는데, 오는 길에 딸이 인턴 수련과 관련하여 중요한 연락을 할 일이 생겼다고 바로 숙소로 들어가자고 하네요. 이런 일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인 딸이 예민해져서, 어쩔 수 없이 편하게 연락하도록 숙소에 데려다 놓고 저희 부부는 주위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미리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근처에 까르푸 수퍼마켓이 있더라구요. 호텔 카운터에 혹시 과일가게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까르푸 바로 앞에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어쨌거나 나들이 삼아 주위를 돌아봅니다. 이런저런 식당이며 맥도날드도 있어서, 첫째날 미리 파악했었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만 지금이라도 늦은 건 아니지요. 그리 크지는 않은 까르푸 마켓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고, 과일가게에서는 만다린과 복숭아를 조금 샀습니다. 원래는 석가를 살까 했으나 너무 달아서 더 먹지는 않아도 되겠다 해서 따로 사지는 않았네요. 지나가는 길에 있던 맥도날드에서 앵구스 비프 버거 세트도 하나 샀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는 없는 메뉴였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딸은 할 일을 마치고 편안해졌더군요. 햄버거와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들로 부실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