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가구에서 시작한 신기하고 고마운 인연
1년 전 이맘때쯤이었나 봅니다. 아내와 함께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주차장 앞 공터에 누군가가 오묘하게 생긴 작은 목가구 하나를 내다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버리는 가구나 재활용품들을 내어놓는 곳이고, 아직 쓸만하다 싶은 것들이 있으면 다른 주민들이 가지고 가서 재사용을 하기도 하는 터였지요.
오래 되고 낡기는 했으나 모양이 독특하고 나무의 느낌도 좋아 보여서 냉큼 주워 왔습니다. 아마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대에 사용하시다가 물려준 것을 방치해 두었다가 이사를 가면서 결국 버리기로 결정하고 내어놓았을 성 싶은 물건입니다.
집에 와서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쁘기는 하지만 많이 틀어지고 부서진데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거나 조각이 비어버린 서랍도 있어서 바로 사용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떻게 손을 보아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번쩍! 학번은 한 학번 선배이지만 같이 졸업한 이00 원장님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고 같이 대학을 다녔으나 졸업 후에 오래 못 보다가 마침 진주 근교에서 개원을 하셔서 다시 인연이 이어진 분입니다.
취미로 목공을 하신 지 한참 되셨고 한 2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소목 공방 모임에 입문하셔서 나무를 다루는 솜씨며 안목이 일취월장(日就月將) 중이시니 여쭤보면 뭔가 방도가 있겠다 싶었지요.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았더니 가구의 모양새와 아이디어가 독특하다고 실물을 한 번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저도 원장님의 병원이며 나무 작업장이 궁금하던 터라 겸사겸사 약속을 잡고 주말에 병원 겸 자택 겸 작업장이 있는 반성을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개원하신 지는 오래 되었는데 병원을 가본 건 처음이입니다. 생각보다 큰 병원과 잘 정리된 자택, 온갖 신기한 공구들이 가득한 작업장을 둘러보고 맛난 저녁도 얻어 먹었습니다. 지내시는 병원 2층 댁에 직접 만들어서 놓아둔 나무 가구들도 어찌나 예쁘던지요.
그리고 그 날 저녁 늦게 톡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상태가 안 좋아서 수리는 어렵겠고 새로 만들어서 주겠다고 하네요. 그리까지 하는 건 죄송스럽지만 저야 감사한 일이라 얼른 그러마고 했네요.
생업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짬짬이 만들어야 하니 몇 개월은 걸릴 거라고 했고, 전혀 급할 일이 아니니 천천히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을 시작했노라고, 생각보다 진행이 더디노라고 연락이 오가다가 얼마 전에 드디어 완성했노라고, 동호회의 전시를 마치면 전해 주겠노라고 완성된 사진과 함께 기별이 왔고, 어제 부활절 주일 오후에 실물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고재(古材) 소나무와 먹감나무, 느티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정교하게 끼워 맞춘 ‘먹감 빗접’입니다. 모양과 색감이 고급스럽고 우아한데 여러 번 옻칠을 입힌 가구에서는 은은한 나무향과 옻향도 올라와서 오감(五感)을 모두 동원해서 감상하기에 좋습니다.
사실은 집안의 여러 일들로 분주하고 힘든 중에 마음을 내어 만들어 준 것이라 더더욱 감사했습니다. 귀하다고 너무 아끼지만 말고 손질해 가면서 잘 사용하는 것이 가구에는 제일 좋은 일이라고 알려 주어서, 어디에 두면 이 귀한 가구를 십분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학장실에 두고 쓰기로 하였습니다. 사전에 따르면 빗접은 머리를 빗는데 쓰는 물건을 넣어두는 도구라 하였으나 서류나 명함, 차도구를 넣어두는 장으로 쓰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니터와 학장 명패 사이에 놓인 빗접은 짙은 색의 책상과 어울려서 사무실의 분위기를 한층 고급스럽게 해줍니다.
빈손으로 나갈 수는 없어서 소박한 와인 한 병을 드리기는 했으나, 가구의 값을 매겨서 사야 한다면 그 가격을 헤아릴 수가 없으니 염치불구하고 그저 받았습니다. 이제 제 학장실 책상 위에서, 학장 임기가 다하면 연구실에서, 그리고 퇴직을 하게 되면 집안에 놓여서 잘 사용되다가 언젠가 아들이나 딸에게 물려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인연 이야기도 같이 전해 주게 되겠지요.
먹감 빗접, 낡고 오래 된 가구에서 시작된 고맙고 재미난 인연 이야기입니다.
빗접: 『민속』 빗, 빗솔, 빗치개와 같이 머리를 빗는 데 쓰는 물건을 넣어 두는 도구. 흔히 창호지 따위를 여러 겹 붙여 기름에 결어서 만든 것과 나무로 짜서 만든 것이 있다. ≒소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