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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오58 만년필 이야기

뜻밖의 발견 - 가성비 있는 저렴이 만년필

by 천생훈장

진하오(Jinhao, 金豪)라는 중국 필기구 회사가 있습니다. 만년필을 많이 만들고, 저렴한 가격대에 안정적인 필기감을 제공해서 세계 만년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가성비 펜’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챗지피티가 알려 주네요.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한 국내 필기구 쇼핑몰이 이 진하오 회사의 저가형 만년필인 ‘진하오58 우드배럴’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사용한 소품을 좋아하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습니다. 팔천원 대의 가격이라 별 고민 없이 바로 주문을 해 보았는데 호오, 기대보다 훨씬 좋습니다. 라미의 디자인을 차용한 삼각기둥 모양 그립은 파지감이 편안하고 EF 사이즈의 펜촉은 잉크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글씨의 굵기도 적당해서 성서 묵상을 비롯한 이런저런 기록을 할 때 필기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원래 사용하던 토마스 만년필과 함께 주력 필기구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워낙 무언가를 잘 흘리고 다니는 성격인지라 몇 번씩이나 잃어버리고 되찾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처음 잃어버렸을 때는 찾지 못한 기간이 길어서 포기하고 아예 새로 사기로 했지요. 구입했던 쇼핑몰에 다시 주문을 하려고 하다가, 중국 제품이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직구하면 더욱 저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바로 사이트를 찾아 보았더니 역시나 그렇습니다. 실제 금액 차이는 이삼천 원에 불과하지만 만년필 자체의 가격이 만원을 넘지 않으니 총액으로 치면 무려 30% 정도가 차이 나는 셈입니다. 티도 안 나는 절약이지만 왠지 뿌듯합니다.

해외직구이니 사는 김에 여러 개를 사서 쟁여놓자 싶어서 대량 구매(라고 해봤자 너댓 개이지만)를 질렀습니다. 대개 아시는 대로 이 신박한 중국 쇼핑사이트는 이런 저가에도 무료배송을 해 줍니다.


그렇게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도중에 잃어버렸던 만년필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장소에서 발견했다고 저희 학교 직원 선생님이 알려 주시네요. 제가 평소에 만년필을 들고 다니는 걸 기억하고 제 것인 줄 알아보셨답니다. 사실 진하오58은 저렴이라서 잃어버려도 그만이다 싶지만, 함께 찾은 토마스 만년필은 올리브 나무로 만든 수제 만년필로 사용한 지 거의 10년이 된, 애착이 많은 만년필이었거든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만년필을 찾고 보니 새롭게 주문한 만년필들의 용처가 애매해졌습니다. 보관해 두었다 나중에 쓸 수도 있겠으나,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 들고 있는 것들만으로도 이 생이 다하기 전에 모두 사용하지는 못할 텐데요.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같이 근무하는 분들에게 하나씩 나눠 드리자는 기특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봤자 몇천 원짜리인데 웬 생색인가 싶어 민망하기는 하지만 금액이 전부인 건 아니니까요. 뿌듯한 마음으로 저희 교실 조교와 연구원 선생님,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후임 교수님한테도 하나씩 드렸습니다. 이 별것 아닌 나눔으로 가성비 넘치는 인사도 받았네요.


잘 모르면 비싼 게 좋은 건 언제나 진리인 것 같습니다만, 마음을 붙여서 사용하면 꼭 가격만이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어쩌면 객관적인 금액과 상관 없이 마음을 담아서 누리는 일들이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한 건지도 모르지요. 비싸지 않은 만년필이지만 나눠 드린 분들의 손안에서 행복하게 잘 사용되기를 바래 봅니다.


최근에 추가로 산 검정색 진하오58. 컬러 잉크도 구입해서, 색깔별로 깔맞춤을 하여 사용하고 있답니다^^
연두색 캡의 진하오58. 이 만년필에는 연두색 잉크가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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