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당신의 가장자리에 서 있나이다

2017년에 겪었던 교통사고

by 천생훈장

Prologue

엄청나게 큰 쇳덩이가 부딪히는 듯한 “꽝” 소리가 나고 운전석이 젖혀지면서 갑자기 회색빛 하늘이 앞유리창 가득 보였다. ‘어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잠깐 동안 공간과 시간 감각이 허물어졌다. 이윽고 차가 천천히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게 느껴지면서 발을 뻗었으나, 브레이크 페달에 제대로 발이 닿지 않았다.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모든 게 슬로우 비디오가 되었다가, 창 아래쪽으로 나뭇잎들이 가볍게 흔들리는 게 보였고 가까스로 브레이크에 발이 닿으면서 차가 멈추었다. 아마 5초에서 1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1.

경기도 이천의 재수학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딸을 만나서 격려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던 길이었다. 수능이 예정되었던 전날 포항에서 진도 5.4의 지진이 있었고, 그래서 24년 만에 처음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고, 오로지 이날에 맞추어 컨디션을 조절해 가면서 모든 노력을 경주해 왔던 수험생 아이들은 일순간에 공황 상태가 되었다. 딸을 비롯한 재수학원의 학생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을 테고, 평소에는 방문과 면회를 허용하지 않던 학원에서도 아이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학부모들을 더 이상 막지 않는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금 속도를 내 달려서 학원에 도착했고, 딸과 눈물의 해후(?)를 한 후 점심을 먹으러 나선 참이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딸이 오랜만에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급하게 이천 맛집을 검색해 흑돼지가 맛있다는, ‘오동추야’라는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이름의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트럭이며 승합차들이 부지런히 달리는 4차선 국도였고 오른쪽으로 금풍농원이라는 간판을 단, 허술하게 지어진 딸기 판매점이 하나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건물도 별로 없이 논밭이 펼쳐진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교통량이 많지도 않아 별 생각 없이 운행하다가 횡단보도의 정지 신호를 보고는 멈추어 섰다. 잠시 후에 있을 사고의 어떤 낌새도 느끼지 못했고, 추돌한 차 또한 추돌 후 차에서 내려서 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였다.

2.

그리고 꽝 소리가 났고 앞서의 상황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차에서 내려 보니 2차선에 서 있던 차는 4차선 차로를 완전히 가로질러 가드 레일도 없이 작은 나무들 몇 그루만이 차로와 논을 구분하고 있는 반대편 갓길 끝에서 아슬아슬하니 멈춘 거였고, 식구들의 안경이 모두 날아가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차 안은 짐이며 소지품들이 뒤엉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운전석과 조수석은 충돌의 여파로 뒤쪽으로 밀린 데다 등받이가 거의 수평이 되도록 젖혀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딸의 상태가 어떨지 두려움이 확 몰려왔고, 겨우 정신을 차려서 가족들을 챙기고 보니 다행히 모두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반대편 2차로의 반 정도를 가로막은 채 차가 멈춘 상황이라 서둘러서 식구들을 갓길로 대피시키고 다시 한 번 식구들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말할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안을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건너편을 보니 카렌스 한 대가 앞부분이 크게 찌그러진 채 서 있었고, 운전자로 보이는 남자가 가슴을 움켜잡고 길 가에 앉은 채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느 샌가 렉커차 두어 대가 달려와 도착하고 있었다.

정지 신호를 받아 달리는 차들이 멈추는 틈을 타 길을 건너가 보니 운전자 옆에서는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들이 검은 짚업 후드에 반바지 차림으로, 역시 놀라고 아파 보이는 얼굴로 서서는 죄송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운전석의 에어백이 터져 있는 걸로 보아 운전자와 아들도 꽤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괜찮으냐는 경황없는 인사를 건성으로 건네고 보험 회사에 연락을 하라 하고는 나도 내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고 연이어 경찰차와 앰뷸란스도 도착했다. 경찰이 양쪽 모두의 음주 측정을 했고, 곧 보험 회사 직원이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던 운전자와 아들은 결국 앰뷸란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3.

무엇보다 수능을 며칠 남겨 두지도 않은 딸의 상태를 추스르는 게 급했고 워낙 상대방의 과실이 분명한 사고였으므로 다른 것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날씨가 추웠으므로 길가에 있던 딸기 판매점 안으로 식구들은 들어가 있도록 한 후, 보험회사 직원이며 경찰의 이야기를 반쯤은 건성으로 들으면서 사인하라면 하고 전화번호를 적으라면 적어 주었다. 그래도 비교적 빨리 현장 상황이 수습되었고, 상대방 보험회사의 직원으로부터 보험 접수번호를 받고 나니 누군가가 불러 준 렌트카도 금방 현장으로 와 주어서 부서진 차에 있는 짐들을 옮겨 싣고는 초동 진료를 위해 경기 의료원 이천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계속 딸과 아내의 상태를 점검해 보아도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으므로 병원에 도착할 때쯤에는 모두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고, 병원 응급실에서 받은 엑스선 검사 결과도 예상대로 골절이나 다른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 아마 공보의일테인, 응급의학과 명찰을 달고 있는 젊고 싹싹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처방된 약을 받아서 나오니 이제 딸도 시험까지 남은 며칠을 견딜 수는 있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4.

하필 토요일이라 물리치료를 받을만한 병원이 없었으므로 아쉬운 대로 가까운 데 있는 이천미란다 호텔의 스파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목욕과 마사지라도 받기로 했고 그 전에 늦은 점심도 먹기로 했다. 원래 계획했던 고기는 포기하고, 육개장이며 설렁탕, 그리고 떡만두국을 내는 이천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주문하였다. 힘든 일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으니 여러 사람에게 알려서 기도를 부탁하기로 하고 음식이 준비되는 사이에 페이스북이며 네이버 밴드에 간략하게 소식과 사진을 올렸고, 많은 분들이 염려와 위로를 전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힘들 때 누군가가 위로를 건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는 지를 새삼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그렇게 이천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딸을 학원에 내려 준 다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이천을 출발한 것이 오후 8시를 넘어서였고, 진주에 도착하니 거지 반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놀랍고 두렵고 감사했던, 길고 긴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Epilogue

차는 폐차되었고, 나도 아내도 근골격계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은’ 사고였다.

그토록 힘껏 추돌을 당해서 차는 심하게 부서져 폐차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가족들은 심각한 부상 없이 무사했고, 반대편 차로를 완전히 가로질러서 차가 멈추었지만 그 사이에 다른 차가 오지 않아서 2차 충돌이 없었으며 갓길 끝 논두렁에 떨어지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서 차를 멈출 수 있었다.


추돌 직후 차가 밀려서 움직이던 5초에서 10초-그보다 좀 더 길거나 짧았을 수도 있겠지만-의 시간은, 완벽하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대적 순간(Critical Moment)’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서 설계하고 계획해도 그렇게 순식간에 펼쳐져 버리는, 절대로 통제될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 있고 그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하니 “우리는 모두 당신의 가장자리 끝에 서 있나이다!”

1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평생 두 번 겪기도 어려운 지진과 교통사고를 모두 겪어낸 우리 딸에게 이제 대박의 운만 남았다고 말해 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나 격려가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댓글로, 전화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도1.jpg 교통사고가 있었던 이천 지역의 지도와 도로 사진. 네이버 지도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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