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대지에서 자라온 건 어쩔 수 없는 필연일지도..
부모와의 애착 형성은 한 인간이 사회적, 정서적 발달의 기본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및 상호작용의 토대를 마련할 만큼 그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고 놀랍다.
불안정한 애착 형성이 정체성 혼란, 대인관계 어려움, 자존감, 정신적 장애(불안, 강박, 집착, 회피 등)등의 문제를 줄 수 있다는 글은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빈 노트를 꺼내 나의 20년간의 기억을 적어보았다.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의 부모는 어떤 존재였는지. 내 인간관계는 어떠했는지. 내가 마주한 사회에 대한 나만의 전략이 있었는지. 그리고 나의 명확한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지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노트를 채워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 일을 옮겨 적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만큼 많이 퇴색됐고, 나 자신도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힘들었던 기억도 미화되어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때론 극단적인 기억으로 치우쳐 괴롭기까지 했다.
최대한 글을 쓰는 목적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나의 불안정한 애착 형성의 문제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부모의 잦은 싸움, 부모가 서로를 향한 적개심과 날 선 비방.
비관, 부정적인 분위기, 부모의 과잉보호, 일관성 없는 훈육, 분리불안, 집착과 의존, 사회성 결여.
나는 집착형 불안정 애착유형에 해당됐다.
나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민들이 설명이 되는 순간들이었고, 스스로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법 또한 불안정한 유형의 애착(=회피형 애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짐. 어린아이같이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분리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덜 성숙된 어른임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도 이와 같은 결핍에서 일까?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비관적인 말을 반사적으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굳이 거기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매사 부정적인 인간 티를 낼 필요가 있냐?', '왜 좀 더 긍정적으로 보지 못할까?'
'부정적인 소음들 사이에 긴 시간을 보내왔기에 희망적인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에 익숙하지 않다'는 어느 작가의 글은 가슴을 후볐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엄마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며 열을 올리던 날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고, 공감과 위로를 바랐다.
그때 그 친구가 했던 한 마디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좋겠다. 너는 그런 엄마라도 있어서..."
나의 애착 형성의 문제의 가해자라고 생각하며, 원망 가득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던 나에게 친구의 말은 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부모 역시 부모가 처음이다. 덧없는 경쟁이 서로를 자극하고 서슬 퍼런 유혹이 도처에 깔린 세상에 하루하루 생계 걱정으로 버티며 살아내기도 힘들었을 터, 자식에게 안정적인 애착을 주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우리들이 불안한 대지에서 자라온 건 어쩔 수 없는 필연일지도..
부모가 누구든 그 밑에서 어떠한 상황을 겪어왔든 이에 대한 원망으로 삶을 소진하는 것은 자신을 또 다른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행위고,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쉽지 않겠지만 오롯이 현재를 살며 현재에 대한 노력으로 미래를 밝게 가꾸어나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