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갑자기

<밤비탄생기>

by Bamnoon

어릴 적 부터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내게 속한 말들이 아니었다. 타인에게는 일어날 수 있지만 내게는 여전히 모호한 것. 꿈꾸는 것 조차 어색한 일. 연애만 하고 혼자살거라고, 결혼은 해도 아이는 안낳고 싶다고, 그게 멋있는 삶인 듯(정말 내 생각이 그렇기도 했다)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결혼한 상대만 빼고 나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의아해할만큼 갑자기 결혼을 했고 달콤쌉싸름한 신혼이 일년이 되어가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몸살기운과 비슷한 나른함이 1-2주간 지속되었고, 뭔지 모를 피곤함 때문에 컨디션이 좋질 않았다.


원기회복을 위해 으랏차차 한의원에서 지어 먹던 보약

아, 물론 피곤함은 두 가지 일을 시작한 이후로 지속되고 있어서 한 달 전부터 체력을 보강하는 한약을 먹고 있긴 했다. 아니, 그러니까. 한약까지 먹는데 이렇게 기운이 딸릴 일이냐며 매일 궁시렁 거렸고, 한 날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겠어서 아침에 회사에 못나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내 삶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컨디션은 그렇게 별로인데 한 몇주간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 내 혈색이 뭔가 다른. 뭔가 복숭아처럼 상큼하고 반질반질한 것 같은 ㅎㅎ 그런 기분이 드는거다. 아무튼, 이런 이상한 일상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여러 생각을 해보다가 비오는 3월의 어느 날 오후, 집에 함께 있던 남편에게 약국에 가자고 했다. 그 날, 그토록 먹고 싶던 순두부찌개를 한 그릇 사먹은 후 손 잡고 약국에 들어가 가장 저렴한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오도방정...화장실로 향했고 그걸 바라보는 남편은 '아니라고', '이상하다'며 한심한 웃음을 보냈다.


'설마와 혹시', '정말일까 아닐꺼야'.. 그 중간 어드메에 있는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테스트를 했다. 5초간 내 소변에 담궈진 테스트기는 별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에이 그치. 아니겠지. 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테스트기의 반응선이 약하게.. 아주 약하게 분홍빛을 띄는 것 아닌가!!!!!


당시, 실제 테스트기 ㅎㅎㅎ

화장실 밖을 뛰쳐나가 소리쳤다.

"오빠!!!!! 오빠 나 진짠가봐!!!!"

소파에서 농구를 보고 있던 남편은 거짓말치지 말라며 또 나를 향해 (비)웃었고, 나는 진짜라며 얼른 와서 보라고 했다. 테스트기 상자에 설명된 임신일 때의 테스트기 반응과 내 것을 비교해보며 진짠가? 진짤까? 를 수십번 되냈다. 전문가에게 확인을 해야겠다 싶었다. 아이를 둘 낳은 내 친구 고운이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운: "축하드려여 네네~~~ 맞아열ㅋㅋㅋㅋ"
나: 진짜? ㅠㅠㅠㅠㅠㅠ
고운: 엌ㅋㅋㅋ 근데 저걸로 저정도면 한 4주초기? 한 일주일 더 있다가 일반 임테기로 두 줄 진하게 보이면 가봐 ㅋㅋㅋ 근데 너는 임신초기에 좀 조심해.. 너 속 뒤집어질 듯. 평소에도 별로 안좋자너 너.. 컨디션 조절 잘해 ㅠㅠ 웰컴투더육아월드!!


전문가의 소견에 따라 나는 이 사실을 엄마에게만 살짝 말하고 친구가 말한 과정을 거쳤다. 무언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 생명체에게 집착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 무언가가 있다가 없어질까봐 매일매일 테스트기를 해봤다. 계획하고 생긴 생명이 아니었고, 너무 갑작스러웠는데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맘이 있었다.


테스트기는 매일 더 붉은 색을 띄며 내 맘을 안심시켜 주었다. 안심이 안심이 아니었다. 없어졌으면 어쩌지? 하는 긴장이 유튜브를 찾게 했고, 맘까페를 가입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매체들을 통해 가중된 불안도 있었지만 이 매체들 덕분에 내 상태를 짐작하며 버티기가 가능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임신을 준비하던 친구들, 쉽지 않은 임신 과정으로 힘들어하던 동료들, 임신사실을 알리던 언니들, 임신기간을 버텨온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진심이었을까? 나는 이 일이 아주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일은 나에게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한 먼 일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했었던 것 같다. 후회했다. 생명을 맞이하고, 품어내고,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긴장되는 일인지 불안을 동반하는 일인지를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싶었다.


대조선을 추월한 반응선 (첫 테스트후 12일 뒤)

그토록 정확한 생리일을 건너뛰고, 테스트기의 반응선이 대조선의 붉기를 추월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테스트기가 반응했고 2주간 더 진해져서 병원에 왔어요"

"치마만 입고 여기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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